2004년 12월에 처음 만난 '44호 수렁 소금창고'는 무너져 있었다. 이곳은 방산대교를 건너기 전의 창고가 있던 곳으로 시선에서 빗겨난 곳이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의 묻혀진 모습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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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파괴되고 예전에 있었던 소금창고들의 위치를 다시 찾아보았다. 예전에 분명히 무너진 창고가 길 위에서도 보였는데 보이질 않았다. 이 창고를 찾기가 힘들었던 이유를 이곳에 내려와서야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매립되어 가는 중이어서 길 위에서는 평평하게 보여서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가까이 몇 번을 다니고서야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 수렁에 잠긴 44번째 '수렁' 소금창고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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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이 되면서 주위가 높아졌다. 비가 오자 배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금창고는 깊은 수렁 속에 잠기게 되었다. 창고의 이름은 ‘수렁’ 소금창고가 되었다.
소금창고 사진을 5년 넘게 담으면서 소금창고의 쓸쓸한 마지막을 많이 보았다. 세월의 무게에 무너진 소금창고, 화재로 소실된 소금창고, 처참히 파괴되어 사라진 소금창고까지 사라지는 창고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월의 무게에 쓰러지는 소금창고를 바라보는 무상함보다 사람들의 손길에 파괴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깊은 상처로 남겨졌다.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서 생매장 당하듯이 갯벌 속에 묻혀가는 창고를 만났던 것이다. 참으로 사람들의 손길이 매섭다는 생각을 했다. 서서히 수렁에 잠겨드는 소금창고를 바라보는데 마음까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매립된 흙들이 비가 내리자 흘러내렸다. 소금창고가 점점 깊이 잠겨들고 있었다. 바라보기 참담한 풍경이었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에 거미줄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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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어떻든 이곳의 생명들은 그들의 삶을 이루고 있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무너진 창고의 그늘에서는 거미들이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간간 거미줄이 출렁이고 작은 벌레들이 걸려들었다. 거미들에게 이 창고는 훌륭한 보금자리와 사냥터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렇듯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모습을 하고 묻혀가는 ‘수렁’ 소금창고를 보면서 차라리 불에 활활 타서 산화하거나 한 번에 파괴되는 것만도 못하다는 모진 생각이 잠시 들었다.
2009년도 3월에 다시 찾았을 때 이곳의 풍경은 다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수렁 속에 있던 소금창고는 기둥 몇 개만 남겨두고 매립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생매장하듯이 묻어 버린 것이다. 이곳에 살림을 차렸던 거미나 이곳을 삶의 근거지로 삼았던 이곳의 작은 생태계도 함께 파괴되었다.
이곳에 소금창고가 있었다는 것은 남겨진 저 작은 잔해들로만 알 수 있었다. 밀려드는 흙들에 묻혀가는 소금창고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44호 '수렁'소금창고'까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3동 만을 남겨둔 채 모두 파괴되었던 소금창고들,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졌던 44호 '수렁' 소금창고의 끝은 이렇게 무참했다.
▲ 매립된 44번째'수렁' 소금창고 위로 자전거 타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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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에 다시 찾은 이곳은 보기에 평화로웠다. 이곳에 소금창고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에 소금창고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은 그저 사진에 담긴 기록뿐이었다.
이곳이 '44호 수렁 소금창고' 무덤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그저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벽면이나 지붕의 잔해들만이 이곳의 예전을 잠시 보여줄 뿐이었다. 저 복토된 흙들마저 평평하게 펴지면 이곳은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서 있을 것이다.
70여 년을 지내온 소금창고는 땅속에 묻히고 그 땅 위의 이곳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립된 '44호 수렁 소금창고'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위험에 처한 것은 또 있었다. 이곳에 남겨진 근대문화유산들은 지금도 땅속에 매립되고 있었다. 염도가 높은 간수들을 모아서 화약의 원료로 모았던 함수통도 점점 매립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번쩍 들 수 있었으면 저 귀한 근대문화유산을 마당가에라도 가져다 놓고 싶었다.
이곳에서 매립되고 있는 함수통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시흥갯골생태공원이나 적합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함수통이 땅속에 영영 묻히면 묻힌 장소를 찾는 것부터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속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구염전 자리들을 매립하기 위해 들어서는 트럭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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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염전 자리들을 매립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네델란드에서는 매립했던 갯벌들도 다시 바닷물을 끌어들여 생태계를 복원하고 더욱 큰 부가가치들을 창출하는데 우리는 생태계가 죽든 살든 아직도 매립에 급급하다. 후대들에게 좀 덜 무안하려면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 사례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생태계를 살리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44번째 '수렁'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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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져 있던 44호 '수렁' 소금창고도 이제는 저 흙 속에 사라졌다.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사람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수렁에서 건지지도 못했고 비록 무너져 있었지만 근대문화유산이었던 소금창고는 그렇게 저 땅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들의 근대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소금창고를 삼킨 저 벌판 위로 오늘도 바람이 분다.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던 사람은 그 벌판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가벼운 미풍도 날카롭게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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