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째 '달빛'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8/11/19 [22:45]

35번째 '달빛'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8/11/19 [22:45]
▲ '달빛' 소금창고의 밤     ©최영숙


  
2005년 10월 소금창고로 들어섰다.  그러나 20분 정도 찍었는데 구름이 온통 끼어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 살던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식사 전이어서 함께 식사를 하고 하늘을 보니 말끔히 개여 있었다. 
 
“소금창고로 사진 찍으러 갑니다.”  일방적으로 소금창고로 향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던 지인은 이 한밤중에 컴컴하고 으슥한 곳으로 이끄는 사람을 영 불안스러워 하고 있었다. 

달빛 소금창고에 도착해서 보니 덩그러니 버려진 의자가 창고 앞에 있었다. 자동차 불빛을 받고 있는 의자의 모습은 연극무대의 세트 같았다.

그렇게 연극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나눠지지 않았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있던 모든 사물들이 관객이 되었고 배우가 되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면 하면 되었다. 나는 배역에 맞게 사진을 담았다. 차안에 있는 이는 관객이며 주인공이었고 오랜 세월을 한곳에 붙박이로 서 있는 이 소금창고는 당당한 주연이었다.  소금창고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시 저 버려진 의자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싶었다. 얼마나 많은 대화와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이 의자는 받아내고 있었을까?  궁금할 필요가 없었다. 의자는 어느 한 순간 이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버려지기까지의 이야기기를 주섬주섬하고 있는 듯했다.


▲ '달빛' 소금창고의 하늘     ©최영숙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세월의 흐름은 지붕이 하늘과 맞닿게 하고 있었다. 지붕이 비워진 자리에는 달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소금창고는 '달빛'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창고 안의 모습은  마치 바이올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바이올린의 가녀린 선율이 들리는 듯했다. 

밖에서 만나던 풍경과 소금창고 안에서 만나는 달 풍경은 느낌이 좀 달랐다. 좀 더 부드럽고 뭔가 다정하고 간결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동양화 여백처럼 자신을 비워낸 자리만큼의 여유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 여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세상사 시비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달빛' 소금창고와 의자     ©최영숙


  
2005년 11월  달빛 창고에 왔을 때 이곳은 뭔가 변해 있었다. 소금창고 앞에 버려졌던 의자가 창고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 버려진 물건들은 다음에 오면 위치가 변했다. 18번째 ‘게’창고가 그랬고 이곳의 달빛창고 앞의 의자가 그러했다. 

 

▲ 소금창고 안에 놓여진 의자     ©최영숙


2006년 3월  다음에 갔을 때 다시 밖에 있던 의자가 이제는 버젓이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의자가 옮겨지는 방향대로 사진을 담는 일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갔다. 

 

▲ '달빛' 소금창고와 의자     ©최영숙


사물은 제자리에 있고 그것을 옮기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이 창고의 특징은 들어서는 입구가 넓었고 바로 염전으로 연결되었다. 예전에는 저 타일에서 소금들을 거둬들였을 것이다. 버려진 타일들이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던 습성을 잊지 않은 듯했다. 이곳의 바닥은 세월이 지나도 허연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 '달빛' 창고와 자동차     ©최영숙

 
가는 눈발이 흩날렸다.

이곳 소금창고를 찍으면서부터 계속 나와 함께 했던 차도 예전 사진을 보면 새댁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19만 킬로를 달려서 차도 이제는 힘이 부치는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 세월동안 이 차에 많은 정이 들었다. 거의 혼자서 작업을 했기에 늘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켜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을 때 차의 방향은 바로 출발할 수 있는 방향이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럴 수 있다면 그럼 한세상 제대로 놀다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삶의 방식에서도 그러하기를 바랬다.

 

▲ '달빛' 소금창고에 비 내리다     ©최영숙


  
비단 변하는 것이 이곳 의자와 자동차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풍경은 변해갔다. 

  

▲ '달빛' 소금창고와 코스모스     ©최영숙


  
가을이 되자 이곳 창고 앞에는 한 포기에서 코스모스가 피었다. 무너질 듯 서 있는 소금창고와 한 포기의 코스모스를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날 약간 정신을 놓은 여인이 머리에 꽃을 달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고 있는 듯했다. 

진달래꽃을 생각하면 소월의진달래꽃, 총각의 지게에 걸려있는 진달래 꽃,  미친 여인의 머리에 달린 진달래꽃 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디선가 각인되게 보았던 풍경이 무엇을 생각하면 바로 앞으로 달려온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된 이미지가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35번째 '달빛'창고와 36번째 '거인' 창고     ©최영숙


  
갈대에 쌓인 ‘달빛’창고에서 36번째 ‘거인’ 창고를 바라보았다. 

한 시절이 지나고 나야 그 시절을 말 할 수 있다. 이곳의 이렇듯 무심한 풍경들이 이곳을 진정 아름답게 하는 힘이었다는 것을 이 소금창고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소금창고들은 일깨워주었다.  


 

▲ '달빛' 창고에 갈대 나부끼다     ©최영숙


  
멀리 새우개 마을이 보였다. 바라보면 위안을 받는 장소가 있다. 주찬양교회가 그랬고 새우개마을 당집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그러했다. 그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었다.

 

▲ 눈 내리는 풍경     ©최영숙


 
35번째 달빛 창고에서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가 보였다. 벌판은 눈발을 날리고 이렇게 혼자 서 있으면 가슴속에서는  바람이 한마당 휘젖고 나왔다. 

결국 제 팔 흔들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세상 풍경을 오롯이 즐길 일이었다. 



▲ '달빛' 소금창고에 눈 내리다     ©최영숙


 
달빛 소금창고를 선두로 늘어선 소금창고들 이곳에서 바라보던 풍경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 '달빛' 소금창고 사라지다     ©최영숙


  
모두 철저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지 두 개의 기둥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던 의자도, 달빛을 쏟아내던 소금창고 안의 여백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그저 저 두 개의 기둥으로 예전의 모습을 그려볼 뿐이었다.

저 두 개의 기둥 또한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소금창고와의 헤어짐에도 제법 익숙해졌을 법한데 사진 속에 남겨진 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다시 처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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