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월곶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9/11/08 [12:18]

'42호 월곶 소금창고'

<연재> 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9/11/08 [12:18]

 

▲ '월곶' 소금창고를 사진에 담는 사람들     © 최영숙


'42호 월곶 소금창고'는 방산대교를 건너면 오른쪽 방향에 홀로 서 있었다.  어두워지면 네온사인 화려한 월곶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창고의 이름을 ‘월곶’ 소금창고라고 부르게 되었다. 

눈이 내리면  습관처럼 소금창고로 향했다. 월곶 소금창고로 가면 사진을 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너른 벌판에 산재해 있던 그 많던 소금창고들은 모두 파괴되고 난 후 소금창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원형 그대로  유일하게 남겨진  월곶 소금창고로  주섬주섬 모여들었던 것이다.  

 

▲ '월곶' 소금창고로 소풍 나온 사람들     © 최영숙

 
월곶 소금창고 앞 저수지에 물이 들면 사람들은 그물을 들고 물고기들을 잡곤 했다. 고기들은 그물 속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은 파라솔을 펴고 서로에게 술잔을 건네고 있었다. 

▲ '월곶' 소금창고의 석양과 구름     © 최영숙


 
서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날렵한 지붕의 선이 구름과  맞닿아 있었다. 이곳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 창고 안에서 밖을 보다     © 최영숙


멀리서 보면 당당히 서있는 모습의 창고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곳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걱정이 되었다. 소금창고 파괴  1주년의 글에 이곳의 소금창고가 보존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창고를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 생명력이 넘치는 갈대에 쌓인 '월곶' 소금창고     ©최영숙


여름이 되면 짙은 녹음 속에 슬쩍 제 몸을 감추고 있는 소금창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길이 시원해졌다. 

▲ '월곶' 소금창고 앞에 핀 사데풀   © 최영숙


이곳은 갈대와 더불어 민들레 꽃과 비슷한 사데풀과 강아지풀  등 눈에 익숙한 우리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이 꽃들이 월곶 소금창고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소금창고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어린아이같이 자잘한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 월곶 소금창고 입구의 야생화 꽃밭     © 최영숙

 
가을이 되면 이곳으로 들어서는 길은 꽃길이 됐다. 자잘한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눈이 환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이곳에서는 늘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  야생화가 그득하다     © 최영숙


월곶 소금창고에 가면 지천으로 피어 있던 이 자잘한 야생화의 이름을 찾기 위해 지인에게 메일로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 ‘한국의 자원식물’과 ‘한국의 야생화’를 찾봤지만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눈에 익숙하건만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은 비단 이 꽃뿐이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피어 있는 꽃들에게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이름을 알 수 없자 그냥 야생화라고 통칭되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꽃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바라본 '월곶' 소금창고의 모습     © 최영숙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바라본 '42호 월곶 소금창고'의 모습은 먼바다로 떠날 저 배들과 함께 흘러가는 듯 보였다.
 

▲ 작은배, 월곶 소금창고, 소래산이 일직선에 서다     © 최영숙


2008년 6월 3일 소금창고 파괴 1주년을 하루 남겨 놓고 남겨진 월곶 소금창고를 찾았다.  멀리 소래산이 보이고 월곶 소금창고와 이제는 풀들만이 듬성듬성 나고 있는 작은 배를 함께 만났다. 버려진 작은 배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나 언제 주저앉을지 모를 한 동의 소금창고는 보는 시선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그저 묵묵히 지난 시절과 다가올 시절을 보고 있을 저 소래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들어서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었다.   

▲ 가뭄으로 갈라진 저수지와 월곶 소금창고     © 최영숙


거북등처럼 또는 물고기들의 모습처럼 보이는 바닥을 만났다. 가뭄으로 제 살을 툭툭 터트려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바닥과 저렇듯 홀로  위태하게 서 있는 월곶 소금창고의 모습은 일면 같은 모습을 보이는 듯해도  달랐다. 이 갈라진 바닥은 물이 차면 시침 뚝 떼고 헤엄치고 노니는 물고기들을 받아들이겠지만 저 소금창고는 한 번 무너지면 영영 이별이기 때문이었다. 

▲ '월곶' 소금창고의 겨울 풍경     © 최영숙

 
장군들은 긴 칼을 옆에 차고 이곳의 소금창고들은 구불구불한  갯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42호 ‘월곶’ 소금창고는  겨울을 이겨내고  지나왔다. 


▲ '월곶' 소금창고에 52년만에 가장 큰 정월 대보름달 뜨다     ©최영숙

 
2009년 2월 9일은 52년 만에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42호 ‘월곶’ 소금창고로 향했다. 

소금창고들이 즐비했던 예전에는 그저 차를 몰고 어느 방향이나 들어가면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세 동만이 존재했기에 월곶 소금창고로 방향을 정했던 것이다. 

스산한 바람에 갈대들이 흔들렸다.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는  혼자 이곳에 있다는 생각에 주위를 자주 돌아보게 했다. 

드디어 보름달이 떠올랐다. 바람 부는 갈대와 함께 떠오르는 달을 보는 것은 새로움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바람이 지날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금창고와 갈대 숲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진을 담으면서도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방산대교의 불빛들이 보름달과 빛을 견주고 있었다. 그러나 10분 정도만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서성거렸지만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 나왔다. 


▲ 별 뜨다     © 최영숙

 
돌아 나오면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떠 있었다. 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는 논현지구의 아파트 불빛들이 별빛을 압도하고 있었다. 세상 불빛이 하늘빛을 흐리게 하는 시절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방산대교 가로등 불빛에 일렁이다     © 최영숙


 
방산대교 아래 내만 갯골로 바닷물이 그득하게 차올랐다. 방산대교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교각 아래를 비추며 물결 따라 요요하게  흔들렸다. 붉게 흔들리는 바닷물은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 월곶 소금창고를 바라보다     © 최영숙


방산대교를 건너기 전에 바라본 월곶 소금창고의 풍경은 종전의 익숙한 모습과는 또 사뭇 달랐다. 칠면초들이 바닷속 해파리들이 유영하듯 드문드문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 월곶소금창고에 석양지다     © 최영숙

 

소금창고들이 파괴되고 2주년이 되었다. 파괴된 소금창고 잔해들이 그냥 흩어진 채 2년이란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2009년 6월 4일 월곶 소금창고는 어둠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 월곶 소금창고 앞에 백로 날아들다     © 최영숙


'42호 월곶 소금창고' 앞 저수지에는 백로들이 무리 지어 날아들었다. 

물고기와 게 등 그곳의 생명들은 물을 만나고, 아파트는 물속에 들어앉고, 사람들은 통발을 치고, 백로들은 찾아 들었다. 삶의 한 부분이 충족되면 그것을 따라 위험도 함께 따라 들어온다는 것을 이곳에 있으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살려주는 상생이었다. 


▲ 소금창고 무너지다     © 최영숙

 
방산대교를 지나면서 습관적으로 월곶 소금창고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소금창고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했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 풍경은 처참했다. 시흥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했던 42호 ‘월곶’ 소금창고도 결국은 이렇게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멀리 소래산만이 이곳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 꽃은 다시 피어나고 소금창고는 무너졌다.     © 최영숙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모두 파괴될 때도 단지 포클레인이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로 살아남았던 '42호 월곶 소금창고'는 무참한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허탈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시흥에서 유일하게 옛 소금창고의 모습을 지녔던 바람이 숭숭 뚫린 폐염전의 그 허허로움을 가장 잘 보여 주었던 마지막 창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곳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많이 보고 사진에 남겼으면서도 이곳이 이렇게 무너지도록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자책감은 소금창고에게 깊은 미안함으로 다가섰다. 

사물들과도 오래도록 눈을 맞추면 마음이 스며든다는 것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 '월곶' 소금창고의 오래된 풍경같은 사람들     © 최영숙

 
이제는 추억이 된 이곳 풍경들이 밀려들었다.  이곳에 오면 오래된 풍경들을 만났었다. 소금창고 앞에서 고기를 잡고 연인들은 다정한 밀어를 나누었다. 

풀밭에서 등을 기대고 가위바위보를 하던 제법 나이가 든 연인들이며 게와 망둥이를 잡는 사람들이며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에 보기 드물게 느리게 가는 시간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 이곳이었다. 

이곳 풍경은 마치 소금창고의 세월을 따라가듯이 한결 눈길 편해지고 마음 놓이는 풍경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 작은배 떠 있다     © 최영숙


42번째 '월곶' 소금창고가 무너진 저수지 앞에 여전히 작은 배가 떠 있었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작은 배는 이제는 이곳을 찾아드는 새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간이역이 되었다.

월곶 소금창고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던 그 시절은 이제 이곳에 없다.

사라지는 풍경을 사진에 담는 사람은 상실감이 늘 곁에 있는 친구였다.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하건만 그 친구가 가까이 다가서면 우울함도 깊어졌다.


▲ '월곶' 소금창고의 보름달     © 최영숙

 
2009년  정월대보름달이 아름다웠던 창고로 기억되는 42번째 ‘월곶’ 소금창고도 무너져 내렸다. 내년 정월대보름 달이 뜨면 월곶 소금창고가 떠오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대로 살아 있다면 내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달은 뜨겠지만 함께 어우러져 있던 소금창고가 사라진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벌써부터 다가서지 않은 쓸쓸함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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