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갯벌습지보호지역지정', 근대문화유산 '수문'은?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2/18 [23:21]

'시흥갯벌습지보호지역지정', 근대문화유산 '수문'은?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2/02/18 [23:21]
▲ 하늘에서 본 시흥갯벌     © 최영숙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724-10번지 일원 약 0.71 km2(약 21만평)가 2012년 2월 17일자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 늘어선 소금창고들     © 최영숙


 2004년부터 이곳 사진 담았던  9년간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소금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던 2004년도의 창고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았던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의 소금창고들과 광활한 포동 벌판의 바람소리를 잊지 못한다.  이곳 구염전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었다. 
 

▲ 2007년 6월 4일 파괴되다     © 최영숙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는 3동만 남겨지고 모두 파괴되었다. 근대문화유산 지정 심사를 얼마 앞두고 (주)성담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 후 소금창고 복원을 위해 여러 단체에서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요원한 상태였다.
 

▲ 시흥갯벌의 특징인 사행성 갯벌     © 최영숙


시흥갯벌은 경기도에서 유일한 내만 갯벌이다.  많은 어려움 끝에 '시흥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흥갯벌로 출발했다.
 

▲ 근대문화유산 수문이 파괴되다     © 최영숙


 방산대교 방향으로 갔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공사 중이었다. 굴삭기가 수문을 철거하고 있었다.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 들이던 수문이 부숴 지고 있었다.  4 개의 수문을 모두 파괴하고 다시 설치한다고 했다.
 
 

▲ 새로 만들 수문     © 최영숙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천개의 시선'을 지나서 있는 수문도 이미 모두 파괴되었다. 공사에 쓸 자재들이 앞에 놓여 있었다.
 

▲ 앞모습만 남은 수문의 모습     © 최영숙


 다시 되돌아 나왔다. 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수문'의 앞모습만 남아 있었다.
 

▲ 파괴된 '수문'의 모습     © 최영숙
 
소금창고들이 파괴되었을 때처럼 가슴이 서늘해졌다.
 
▲ 수문 공사 안내     © 최영숙

 들어갈 때 급한 마음에 못 보았던 공사 안내판이 보였다.
 
공사명 : 시흥 장곡, 월곶동 수문 재설치 공사 
공사내용 : 염전재 수문재설치
공사개요 : 배수통문 4 개소,  수문(자동문비) 4 개소,  수문 (인양식)4 개소
공사기간 : 2012년 2월 1일 ~ 2012년 3월 31일
 

 

▲ 2007년 19번째 '수문'창고   모습  ©최영숙


2동 남겨진 소금창고 방향에 있는 19번째 '수문'창고 는 안전한지 그쪽 방향으로 갔다.
 

▲ 19번째 '수문'창고 자리에 있던 수문이 파괴 되고 다시 만든 수문     © 최영숙


그동안 어둠이 내렸다.  2007년도에 있던 멀쩡한 수문도 사라지고 이곳도 콘크리트로 새로 만들고 있었다. 공사를 발주한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대문화유산을 대하는 방식에 분노가 일었다.
 
80여년이 넘은 '수문'이 노후 되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이해한다.  그래서  염전재 수문 재설치를 할 수 있다.  재설치를 할 것이면 현재의 수문은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수문'은 보존하고 따로 설치하면 되었을 것이다. 굳이 저토록 철저히 파괴하고 다시 재설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행성 갯벌     © 최영숙


 2007년 6월 4일 근대문화유산인 소금창고들이 모두 파괴된 곳이 이곳이었다.  이곳이 염전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하기에 '수문'은 더욱 중요하고 귀한 유산이었다.  한 번 파괴된 것은 되살릴 수 없다. 또 되살린다 해도 옛 모습을 완전히 잃은 것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시흥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이곳은 또 다른 순천만이 될 것이다.
 
그때 이곳의 역사를 설명할 때 '수문'은 중요한 역활을 했을 것이다.  소금창고들이 파괴 되었을 때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싶었다. 공사 안내판에는 공사 발주처가 표시되지 않았다. 공사  발주처가 없는 공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곳이 발주처인지 궁금했다. 수문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금창고 파괴에 이은 또 다른 파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함수통     © 최영숙


이로써 이제 이곳이 염전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설물들이 거의 없어졌다.  흔하게 보았던 함수통이 보였다. 소금창고가 사라지고 매립이 되면서 함수통들도 함께 매립되었다. 벌판에 있는 함수통들을 현재 남겨진 소금창고 앞으로라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머뭇거리다간 매립되던지 또는 파괴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파괴하는 속도가 보존하는 속도보다 한 발짝 앞서는 듯해서 조급해졌다. 

▲ 파괴되는 수문과 굴삭기    © 최영숙


내일이면  저 굴삭기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 답답한 심정으로, 어찌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하는 무력감이 들었다.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들이 모두 파괴되었던 그날의 그 암담했던 심정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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