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숲’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영결식에다녀오다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2016년 1월 15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향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식은 18일 오전 11시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졌다. 시신은 화장하고 유해는 성공회대 교정에 수목장을 할 예정이다.
“선생님! 당신은 억압과 고통의 시대에 유연한 인품, 유려한 문체, 유일한 필체로 민중과 함께 하셨습니다. 영면하소서.” 조문객이 고인에게 쓴 엽서 편지이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의 삶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듯했다.
신영복(申榮福)교수의 호(號)는 위경(葦經), 소당(紹堂), 우이(牛耳), 쇠귀이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여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했다.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 나무야 나무야 (1996년),더불어 숲 1권 (199년), 처음처럼(2007) 신영복 서화 에세이 등이 있다.제3회 임창순상(2008년), 제19회 만해문예대상(2015년)을 받았다.
신영복 석좌교수가 감옥에 있을 때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은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 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고 했다.
시대의 지성이 떠났다. 2016년 1월 17일 밤에 신영복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성공회대 대학성당을 다녀왔다. 성공회대학 건물 벽에는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라는 고인이 쓴 글이 걸려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조문객들이 남긴 방명록 엽서였다. 각자의 마음을 담은 글과 글씨들은 다른 장례식장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얼치기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저의 식량이고 오아시스 물이었습니다. 마음 속 깊이 존경하였고 따르고 싶습니다.”, “평화의 우주에서 큰 삶을 누리소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이 세상의 작은 나무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 그리고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풍성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삼의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살아오신 선생님의 뜻, 기억하고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선생님, 하얀 눈이 내려요. 우리 곁에 와 주셔서 진심 감사해요. 늘 주시기만 하셨는데 우리는 드리지도 못하고 우네요.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나누고 따르겠습니다.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의 선생님.”등의 글과 함께 “깊은 뜻 하늘마음 산이 되고 강으로 흘러 더불어 사는 세상 될 겁니다.” 등 편지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적어 고인을 추모했다. 그 글들의 진솔함과 더불어 다양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저자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서체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어깨동무체’로 명명된 그의 글씨는 ‘처음처럼’(소주) 등 여러 브랜드에 사용되기도 했다. ‘처음처럼’을 소주에 쓰게 하면서 1억원을 받아 장학금으로 쓰게 했다.
1995년 서예작품집『손잡고더불어』에서 신영복 고인은 서예를 쓴 것에 대해 “내가 붓글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린 시절 할아버님의 문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할아버님의 사랑방에 불려가서 유지(油紙)에다 습자하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친구분들이 방문하시기만 하면 나를 불러 글씨를 쓰게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님의 친구분들은 푸짐한 칭찬과 함께 자상한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30여 년 후 내가 옥중에서 할어버님의 묘비명을 쓰게 되었을 때, 나의 정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당시의 기억을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한글 서예를 한 것에 대해서 “작은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어머님의 모필체의 서한이었다. 당시 칠순의 할머니였던 어머님의 붓글씨는 물론 궁체가 아니다. 칠순의 노모가 옥중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한은 설령 그 사연의 절절함이 아니더라도 유다른 감개가 없을 수 없지만, 나는 그 내용의 절절함이 아닌 그것의 형식, 즉 글씨의 모양에서 매우 중요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머님의 서한을 임서하면서 나는 고아하고 품위 있는 귀족적 형식이 아닌 서민들의 정서가 담긴 소박하고 어수룩한 글씨체에 주목하게 되고 그런 형식을 지향하게 된다.
한글은 한문과는 달리 그림이 아니다. 기호일 뿐이다. 극도로 추상화된 기호로서의 각박한 한글체를 궁체가 그 고아한 형식으로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주는 면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궁체는 노봉· 편필이라는 단순한 필법, 그리고 정형화된 결구로 말미암아 글의 내용에 상응하는 변화를 담기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어머님의 모필 서한은 나에게 어떤 방향을 예시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어머님의 글씨에서 느껴지는 서민들의 체취와 정서는 궁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미학으로 이해되었다." 고 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생전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관을 덮을 명정표에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之棺(지관)'이라는 명정표를 썼다. 또한 김근태 고문에게도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라는 명정표와 묘비명을 을 남겼다. 명정표에 적힌 글들은 이소선 여사와 김근태 고문의 한 생을 관통하는 말들이었다.
2011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에 그의 인터뷰를 실렸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진정한 소통이란 ‘너는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겠다. 그냥 공존하자’가 아니에요. 차이나 다양성을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반가운 만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근대의 패러다임은 개인·기업·국가 모두 자기 존재를 강화하는 것이었죠. 게다가 우리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했어요. 60대 이상의 세대로선 ‘소통’이 아니라 ‘소탕’을 해온 거죠. 그들에게 공존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잖아요. 이런 문화가 우리 사회 일각에 아직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요. 또 보수 구조가 아주 완고하기 때문에 좌우의 바람직한 균형, 대칭적 균형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진보 쪽에서도 자신과 관점이 다른 사람과는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후배 중 일부는 저더러 ‘왜 중앙일보하고 (인터뷰) 하느냐, 한겨레하고 해야지’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겨레 독자들은 선생님 글 안 읽어도 돼. 중앙일보 독자들하고 만나는 게 필요하다’고 해요. 제도권 언론 중에선 중앙일보가 가능성 있는 신문이니까…. 나는 그런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자기 보신을 한다거나, 자기 이미지 관리 때문에 좁은 범위에서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작으나마 빗장이 열리지 않는가 싶었다. 더불어숲이라는 커다란 글이 적힌 걸개가 빈소로 들어가는 건물 앞에 걸려 있었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보였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고인의 글처럼 커다란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이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동요 ‘시냇물’은 영결식장에서도 불려졌다.‘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미 저 너른 바다에 이르렀을 듯하다.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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