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여사 1주기 추모행사 열려

어머니에게 빚진 사람들...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모여 추모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9/05 [06:52]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모행사 열려

어머니에게 빚진 사람들...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모여 추모

최영숙 | 입력 : 2012/09/05 [06:52]
▲ 이소선 여사 1주기에 모인 사람들     © 최영숙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한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아들 전태일 열사의 곁으로 돌아간지 1년을 맞은 지난 9월 3일.
 

▲ 이소선 여사 묘소 벌초하다     © 최영숙

 

오전 10시 고 이소선 여사가 잠든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도착했다. 한가위를 맞아 공원관계자들이 이소선 여사와 전태일 열사의 묘역을 벌초하고 있었다.
 
▲ 각계각층에서 500여명의 추모객들이 이소선 여사 묘에 모이다     © 최영숙
 
11시에 엄수된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비롯한 유가협 회원, 양대 노총 관계자, 민주화운동 원로 백기완 선생,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전 통합진보당 대표, 이용득 민주통합당 최고의원,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소선 여사의 걸어온 길이 소개됐다.
 
▲ 2010년 전태일 41주기에 참석한 이소선 여사의 생전 모습     ©최영숙
 
 
▲ 2011년 이소선 여사 장례식 날 마로니에 광장으로 들어서다     ©최영숙

“이소선 어머니는 1929년 12월 30일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1947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자영업자 전상수와 결혼했고 1948년 전태일을 낳았다.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출산했다.
 
1954년 서울로 이사했다. 염천교 밑, 해방촌 남산동을 전전하며 팥죽, 비빔밥, 찹쌀떡 장사 등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러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맞았다.
 
그날 “엄마,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내가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한다고 크게, 크게 대답해 주세요.” 라는 아들의 절규에 "이 몸이 가루가 돼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거다.“ 라고 한 약속을 이후 노동운동가 노동자 어머니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 11월 18일 아들 태일을 모란공원에 묻고, 11얼 27일 청계피복 노동조합을 결성에 참여했다. 이후 1977년 7월, 1980년 10월, 1981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과 관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85년 민가협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1986년 8월 12일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사는 어머니, 아버지를 규합하여 유가협을 만들고 초대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1988년 11월 4일부터 국회 앞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특별법 제정을 위한 422일간의 천막농성을 했다.
 
그처럼 전태일 사후 41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소외받는 자, 고통당하는 자, 투쟁하는 자들의 곁에 있던 어머니는 2011년 9월 3일 영면했다.”
 
▲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추도사를 하다     © 최영숙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추도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빠르다 하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1년이 이렇게 길다”며 “난관이 생기면 어머니는 생전에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서 합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들과 같이 이곳에 있음을 믿는다”면서 “어머니 편히 계십시오”라고 그리워했다.
 
▲ 2012년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도사를 하고 부축을 받으며 앉는 백기완 선생     © 최영숙
▲ 2012 백기완 선생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도사를 하다     © 최영숙

이어서 백기완 선생이 추도사를 했다.

“오늘 자잘한 일이 있어서 여기 못 올 뻔했습니다. 새벽꿈에 어쩌자고 어머니가 나타나셔 서 ‘이봐요. 백 양반 왜 이렇게 늦잠을 자’ 해서 깨보니 오늘이 어머니 떠나신지 한 해가 된 해라는 기사를 보았다”며 “지금 이 땅의 노동자를 다 죽이려고 하는데 늦잠을 자고 있다고 야단치려고 깨워주신 것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조헌정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추도시 ‘어머니 이소선’에서 “이 땅에 살 때는 저 생의 사람처럼, 저 땅에서 살 때의 이 생의 사람처럼, 어머님은 참 묘한 분이셨지요. 훗날 다시 뵈올 때에 얼굴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어머님 손잡고 ‘어머님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그간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하는 당신의 딸, 당신의 아들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라고 했다.
 
▲ 노동자들 절하다     ©최영숙

전태일의 친구이며 바보회 회원이었던 최종인 씨는 “어머니는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지독히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저희가 배를 곯으며 노동조합 일을 할까봐 늘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병원 영안실에서 얻어온 헌옷들을 개천 물로 깨끗이 빨아 서울 시내를 고무신 닳도록 돌아다니며 파셨지요”라고 옛일을 회고했다.
 
그는 이어 “그리 번 돈을 들고 어머니가 조합 사무실에 들어서면, 저희는 인사 대신 ‘어머니, 배고파요!’를 먼저 외쳤지요, 그리고는 라면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서 조합 사무실을 나섰지요. 저희가 어머니의 헌옷 보따리를 짊어지고 어머니가 사시는 쌍문동 208번지로 함께 갔습니다. 그 시절, 그 배 고프고 만날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던 그 시절이 왜 이리 사무치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라며 고난의 세월 속에서 핍박받던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여사를 떠올렸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어머니는 희생이고 사랑이며 그리움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해가신지도 어느덧 43년, 그 긴 세월동안 전태일 열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따를 수 있었던 건 ‘어머니 이소선’ 당신의 가슴에 전태일 열사가 살아있었기 때문이었고,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따뜻한 손길은 늘 노동자를 행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추모했다.
 
▲ 이소선 여사 1주기에 참석한 해고노동자의 뒷모습이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무언가 외치고 있는 듯 씁쓸하다,     © 최영숙

한국노총 위원장 권한대행 김동만 씨도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의 곁을 지켜주시던 따뜻한 어머니, 단결해야 승리한다고 호소하시던 당신이 계셨기에, 숱한 난관과 좌절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진정 당신은 헌신적이며 강인한,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입니다”고 추모했다.
 
▲ 오빠 전태일 곁으로 떠난 어머니를 추모하고 있는 이소선 여사의 딸 전순옥 의원     © 최영숙

이소선 여사의 딸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은

“어머니가 항상 보고 싶어 하셨던 노동자가 대우받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이 땅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큰오빠의 편지,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그 정신, 함께 웃고 울던 그 마음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안아주던 그 가슴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 이소선 여사 1주기에 참석한 금속노조 노동자들     © 최영숙

이소선 여사가 생전에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는 유지를 받들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함께한 ‘이소선 합창단’ 과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어 헌화 및 절의 순서로 이어졌다.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김덩우 쌍용차 노조위원장(왼쪽)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최영숙

“야, 네가 어떻게 이곳을 와, 어서 나가”하면서 김정우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분향하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소리쳤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의원이 만류해서 겨우 진정되었다.
 
▲ 이소선 여사 묘     © 최영숙

이소선 여사가 생전에 어떤 분이셨는지 추모객들에게 물었다.

신금순(75) 씨는 “어머니는 좋은 분이다, 만날 만나면 병 없이 살라며 아프지 말라고 하셨다.” 며 “이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다. 너무 슬프고 그립다”고 했다.

금속노조 문화국장 이장주(47) 씨는 “편안해요. 우리의 투쟁의지를 어머님이 지켜보실 것 같으니까”라고 말한 그는 “어머니는 늘 고맙다!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고맙다고 보는 사람마다 말씀해서 우리가 투쟁하는 것이 당당하고 정당함을 느끼게 해주셨다”면서 “어머니의 유지인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서 나쁜 세력들을 제대로 혼내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이소선 여사 아들 전태삼씨가 어머니에게 향을 피워 올리고 있다.     © 최영숙

전태삼(62) 씨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형 전태일 열사와의 추억을 이야기 했다.

“나는 18살, 형은 21살 때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 가면서 형과 손잡고 이야기 하던 말소리나 손의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화전민촌으로 올라오면 어머니가 달빛에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돈이 없어서 걸어왔지만 밤일을 하고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천막 문을 열고 들어서면 19공탄 위에 맑은 물이 끓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오면 바로 수제비를 끓여 주시려고 달빛 언덕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인데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수제비를 잊지 못한다”며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애틋했던 모정을 말했다.

또한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아픔을 가슴에 품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굳건하게 형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어느 자리, 어느 곳, 어느 글속에서도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 이소선 여사 묘비에 쓰인 글과 분향하는 사람들     © 최영숙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이 꼭 이루어주세요.”

‘태일이 엄마’ 이소선 여사의 간절한 부탁은 누가 들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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