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을 거닐다

장례식 후 두달만에 찾은 故 최헌의 무덤

최영숙 | 기사입력 2012/11/12 [18:02]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을 거닐다

장례식 후 두달만에 찾은 故 최헌의 무덤

최영숙 | 입력 : 2012/11/12 [18:02]
▲ 비둘기 공원 가을비 내리다     ©최영숙


 
유행가가 마음속으로 스며들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했던가! 가을비가 내렸다. 가을비가 내리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 이다.
 
거리로 나섰다. 시흥시 은행동 비둘기공원을 들렀다. 가을이 깊었다.
 

▲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 노래비가 새겨진 묘비명     ©최영숙

 


뭔가 아쉬웠다. 입안에서 가수 최헌의 ‘오동잎’과 ‘가을비 우산속’ 노래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가수 최헌이 잠들어 있는 분당메모리얼파크로 이동했다.
 
공원 묘원으로 가는 동안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故 최헌의 무덤을 찾은 것은 2012년 9월 12일 장례식 이후 두 달 만이었다. 

빈 공간으로 남아있던 묘비석에는 대표곡인 '가을비 우산속’  가사가 적혀 있었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 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 2012년 9월 12일 최헌 빈소에 있는 영정사진     ©최영숙

 


최헌은 1949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했다. 1960년대 미8군 무대에 오르며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룹 '히식스(He6)'로 활동하며 <초원의 사랑〉과 〈초원의 빛〉으로 명성을 얻었다.

1974년 '검은나비'를 결성했다. 최헌은 허스키하면서도 구수한 목소리로〈당신은 몰라〉라는 곡을 발표해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1976년에 그룹 '호랑나비'를 새로 결성한 뒤 〈오동잎〉으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최헌을 각인시키며 국민가수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1978년에 <앵두〉라는 곡과 1979년 〈가을비 우산속〉이라는 곡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 인기에 힘입어 서울 종로 단성사 극장에서 최초로 리사이틀을 한 가수가 됐다.

그 뒤 활동을 접었다가 1984년에 다시 '불나비'를 결성했고 미국 팝가수인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를 번안해 재기했다. 2000년대에는 <돈아돈아>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11년 5월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2012년 9월 10일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장례식장을 찾은 것은 지난 9월 12일이었다. 그날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 슬픔을 안고 가족들 떠나 보내다     ©최영숙

 
 
깊은 슬픔을 표했던 가족과 지인들.


▲ 서울추모공원으로 들어서다     ©최영숙

 

서울추모공원으로 들어섰다.

故 최헌 씨의 친구 김용철(65) 씨는 “대학 1학년 입학식 때 만나서 친해졌다.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 용돈과 차비를 챙겨주는 등 배려심이 남달랐다. 모든 친구들에게 그렇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멋진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최헌이 떠나기 3일 전 아내에게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나와 다시 살아줄래? 당신이 나를 가장 잘 아니까 다시 살아줬음 좋겠다”고 묻자 아내가 좋다고 했다는 것. 부부금슬이 좋고 자녀들에게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고 전했다.

 

▲ 고인의 지인들 고인을 회고하다     ©최영숙

 


연예인장례위원장 염덕광(67) 씨는 “10년 넘게 장례위원장을 맡으면서 고운봉, 계수남, 현인, 김창남, 김형곤, 황해, 백설희, 반야월 선생 등 많은 분들을 모셨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서운한데 이렇게 젊은 분이 떠나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다.
 
그는 이어 “10대 가수상을 받은 국민가수가 좀 더 오래 좋은 노래 불러주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안타깝다. 아픈 거 다 내려놓고 근심걱정도 내려놓고 편안한 곳에서 쉬기를 바란다"라며 "가을이면 오동잎이 떨어지는데 비가 오면 참 많이 생각날 거 같다”며 최헌을 추모했다.
 

▲ 고 최헌 화장으로 모셔지다     ©최영숙

 


홍영주(64) 씨는 “최헌이 가수왕이 되기 전에도 인기가 많았다. 시민회관에서 노래를 부르면 여성들이 환호성을 질러서 크리프 리차드가 왔을 때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허스키하면서도 깊어서 누가 모창을 할 수가 없다. 젊은이들의 우상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아쉽다”며 떠난 친구를 그리워했다.

 
고인과 같은 프로덕션에서 편곡을 했던 김기표 씨는 “많은 사람들이 성인가요를 통해 그를 알았겠지만 그전에 미 8군에서 흑인음악을 많이 했고 노래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다”고 전했다.
 
“고인은 정말 남자다웠다. 주위를 잘 챙겼고 건강해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오랜 음악동료이자 친구로서 깊은 슬픔을 표했다.


▲ 고인의 사위 담배를 고인에게 바치다     ©최영숙
 
 

故 최헌은 가족들의 깊은 애도 속에 분당의 메모리얼파크 묘원에 묻혔다.

 

▲ 2012년 11월 11일 최헌 무덤에서 바라보다     ©최영숙
 

 

▲ 꽃그늘 속에서 장례를 치루다     ©최영숙


 
11월 11일 가을비가 내리는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다시 갔을 때 무덤 건너편에서는 또 다른 사람의 장례식이 있었다. 세상은 끝없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간다는 생각을 했다.
 

▲ 꽃무덤을 만나다     ©최영숙


 
건너편 무덤은 단풍잎이 떨어져 꽃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 바람 불다     ©최영숙

 

위로 올라가 보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 꽃비를 맞고 있는 무덤     © 최영숙


 
그러나 아래로 내려서면 바람이 잦고 그윽해졌다. 단풍 이불을 덮고 있는 무덤들이 아름다웠다. 사람이 살다 떠나는 것, 그저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마주쳐도 가만히 손 내밀고 미련 없이 털고 일어설 수 있도록 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꽃비가 내리는 무덤     ©최영숙


 
이 꽃그늘 밑에  있는 주인도 편안하기를 빌었다.
 

▲ 가을비 내리다     ©최영숙

 

노래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그 당시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한순간에 그 시대, 그 장소, 누군가와 나눴던 그 공간으로 이미 들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구에 사는 친구는 노래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최헌의 오동잎과 가을비 우산속 등 그의 노래들을 부르면서 추모했다고 한다. 한 시대를 그의 노래를 듣고 각자 다른 추억들을 담았기에 노래 교실 선생님과 학생들은 최헌의 노래를 부르면서 목이 메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사진을 담고, 그를 추억하는 다른 이들은 그의 노래로 그가 세상 떠나는 순간을 아쉬워했다.
 
가수 최헌은 너무 일찍 떠나서 아쉽지만 그러함에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누군가 그렇게 끝없이 기억해준다는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와 추억들을 주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의 노래를 가만히 따라 불렀다.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 흐름 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 봐야지
슬픔도 그리움도 나 혼자서 잊어야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잊어지겠지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故 최헌의 영면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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