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진 시인 우리 곁을 떠나다

소래문학회 회원, 시흥문협, 문도진 향토예비군 시흥시지역대 초대 대장 소천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5/06/23 [12:41]

문도진 시인 우리 곁을 떠나다

소래문학회 회원, 시흥문협, 문도진 향토예비군 시흥시지역대 초대 대장 소천하다

최영숙 | 입력 : 2015/06/23 [12:41]
▲ 문도진 시인 2008년 경기도문학상 을 수상했다     © 최영숙

 

소래문학회와 시흥문인협회에서 활동했던 문도진 시인이 6월 22일 소천했다.

 

▲ YMCA아버지 합창단 창립 10주년 공연모습     © 최영숙

 

고 문도진 시인은 1957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하여 1990년 신천동대장으로 발령받아 시흥과 인연을 맺었다. 고인은 시흥YMCA 아버지 합창단, 소래문학회 회장, 시흥문인협회 부지부장, 시흥 라르고 색스폰 동호회 회장, 여성줄다리기 감독 등을 맡으면서 지역사회에서 봉사했다.

 

▲ 2008년 색스폰을 연주하는 모습     © 최영숙

 

 또한, 문도진 시인은 1997년 소래문학회에 가입해 소래문학 5집에 시 '하늘문이 열리던 날' 외 4편을 실으며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문학세계(2005년), 신인문학상 시부분 수상, 한국문인협괴 경기도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2010년 故 문도진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나왔다.

 

 

▲ 2010년 문도진 시집 [소리 가게]     © 최영숙

 

소리 가게

 

-문도진

 

사라져 가는 뱃고동 소리
기관차가 내뿜는 치이익 소리
이런 소리 파시는가요

개구리 풀벌레 맹꽁이 
재잘거리는 소리
한여름 무더위 날려 버리려
시끌벅적하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
이런 소리 파시는가요

봄을 부르는 뻐꾸기 소리
졸졸졸 흐르는 개여울 소리
이런 소리 파시는가요

아스라이 멀어진 기억을 더듬어도
들릴 듯 말 듯한 
그런 소리를 파시는가요

이런 소리 저런 소리
저런 소리 이런 소리
이 가게에서는 파시는가요

아니 
사랑하는 이의 마음 깊은 곳
사랑한다 했던 그 소리
당신을 사랑하였다고 고백했던
그 소리 파시는가요

아니 
어디에서 그런 소리 살 수 있는 가요

 

유종인 시인은  "문도진의 시는 요즘 시들의 경향이나 먹물이 든 소위 엘리트 시인 군상들의 시풍과는 상당히 거리에 있다. 문도진의 시가 가지는 진정한 힘은 그의 범박한 진솔함과 생명에 대한 진정성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시는 결국,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 느낌의 공유는 진솔함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겨진다. 부연하자면, 삿됨이 없는 마음의 눈길로 늠연히 세상사와 주변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지극한 사랑의 평범함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따스하고 때로는 아프게 그가 통섭해야 할 누리에 벌려있는 모든 생명들, 그 숨탄것들에 가닿는 정직한 눈길, 그것은 그가 마음의 씨줄과 날줄로 엮은 생기의 누리그물일 터, 거기에 그는 그의 반평생 넘게 숨결을 불어넣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시집은 늦되나 오히려 더 알곡의 알심으로 투박하나 진정성의 맛으로 먹음직스럽다."고 평했다.

 

▲ 2010년 1월 1일 소래문학회 회원들과 갯골에서 첫 해를 만나다     ©최영숙

 

시흥을 사랑했던 문도진 시인은 2012년 발간된 동인지 [달빛 그늘에 앉아]에서 시흥(始興)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시흥(始興)

 

문도진

 

소래산 봉우리들 빨갛게 물들 때면

포구의 철새들도 제 고향 찾아가네

힘차게 날개짓하는 소리조차 흥겨우리

 

군자봉 험한 기상 학미산 바라보고

소래뜰 황금물결 농부들 어얼씨구

풍년가 불러볼손가 어화둥둥 내 사랑

 

옥구도 저 너머로 하루 해 저무는고

뱃고동 소리 따라 갈매기 넘나들 때

저녁놀 단풍 든 태양 스산히 넘어가네

 

▲ 문도진 시인 시흥시민대상 시상식에서     © 최영숙

 

 투병 생활을 하던 고인이 2015년 3월 19일 소래문학에 마지막 글을 올렸다.

 

그대 곁을 떠나며

문 도 진

아무 말 없이 떠나려 했지만
국방색,얼룩무늬,디지털 제복까지
벗어 놓으려 했지만

40년의 덧께를 입은 시간의 두께가
아주 무겁고 장엄한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그 무게와 두께에 비척이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오늘을 잉태하였나 봅니다

두꺼비 둥에 엉기성기 달라 붙어
뜨겁고 무거웠던 지난한 세월을 등에 지고
한걸음씩 뚜벅 뚜벅 걸어 온 발자국 마다
정이 깃들지 않은 자국이 아닌 것이 없나 봅니다

90년 2월 1일
시흥에 디딘 발이 스무여섯해가 되었나 봅니다
힘겨운 날갯짓 하며 날아 가기도 했건만
무던히도 시흥땅에 날개 꺽인 갈매기 마냥
퍼덕였습니다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머리를 쥐어 짜기도
주먹을 불끈 쥐어 가며 달려 온 시간이 25년이다
그 누가 휘청거리는 양무릎에 힘을 실었던가

축구,배구,족구,계주
부대의 명예를 짊어 지고 내 달리던 시간의 숨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반백이 휑한 바람을 맞는다

스치고 지나 간 주마등의 간산이
엉키고 성켜 온통 뒤죽박죽이다
조직된 실타래를 무엇부터 풀어 내야
편안함이 찾아 올 지 모를 일이다

위치의 문제로 만인에게 회자되던 반월훈련장은
지금도그 곳이다
광명과 시흥예비군에겐 향토방위의 요람이었다

육십년의 삶에 사십년을 군화와 함께 하였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긴장의
그네를 탈 때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와 두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내려 놓아야 할 시간이다
내려 놓아야만 한다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대대장님
시광회장님과 회원,지역대장님
저와 함께 군문을 떠나는 존경하는 창수선배님
사랑합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계셨기에 내가 있었고
또한 내가 있었기에 나의 당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뒤태를 보이며 손을 흔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이 엄동설한에 뼈를 에이는 쓰림으로
다가 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나 갑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곁에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15.3.31일부 명예퇴직을 맞아 직장동료가
마련해 준 송별식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40여년의 행간을 후배에게 대독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글입니다.
만감이 교차하네요.

 

고인의 마음이 절절해 가슴이 아파왔었다.

 

▲ 2007년 문학회 모임에서     ©최영숙

 

훌훌 털고 일어서길 모두 기원했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고인을 아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다정했던 남편과 아버지로, 어떤 이는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노인정을 찾아 색스폰 봉사를 하던 다정한 모습, 또는 시를 논하는 치열한 모습과 아버지 합창단을 하던 모습, 신심 깊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던 장로의 모습 등 을 기억할 것이다. 

 

늘 간결하고 단정했으며 엄격했던 모습들 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회원들과 족구를 할 때는 마냥 소년 같았던 모습이었다.  

 

한 사람의 모습이 크다.

 

빈소를 다녀오면서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빈소는 시흥장례원 301호(031-434-4114, 경기도 시흥시 서해안로 586)이며 발인은 24일, 장지는 이천 호국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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