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뱅이굿의 대가 이은관 옹, 꽃상여 타고 하늘로 떠나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4/03/18 [21:11]

배뱅이굿의 대가 이은관 옹, 꽃상여 타고 하늘로 떠나다

최영숙의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4/03/18 [21:11]


▲ 배뱅이굿을 부른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은관 옹의 꽃상여가 제자들에 의해 운구 되다     ⓒ최영숙


 지난 3월 12일 배뱅이굿을 부른 이은관 옹이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산낙조(西山落照) 떨어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돋건마는 황천(黃泉)길이 얼마나 먼지 한 번 가면은 못 오누나.” 배뱅이굿의 첫 대목이다.

배뱅이굿의 창조(唱調)는 관서지방 무당들의 노랫 소리이다. 이 배뱅이굿은 최근세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전승되는 것은 평안도 김관준 계통을 이은 이은관(李殷官) <배뱅이굿>과 황해도 문창규(文昌圭) 계통을 이은 양소운(楊蘇云) <배뱅이굿>이 있으며, 이은관 배뱅이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로 지정되었다. 반주는 장구 하나를 쓰는 것이나, 바라 · 피리 · 젓대 · 해금을 쓰기도 한다. 장단은 굿거리 · 볶는타령 · 막장단 · 중모리(산염불장단) 등으로 되어 있다.

▲ 이은관 선생 꽃상여를 타고 떠나다     ⓒ최영숙


이은관 옹의 부음 소식에 가슴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배뱅이굿을 부른 서도소리 무형문화제인 이은관 옹을 생각하면 내 유년의 기억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배뱅이굿을 처음 들은 것은 여닯살 정도였다. 어느 날 이웃 할머니 집에서 배뱅이굿이 들려왔다. 전축에서 나오는 그 소리는 다른 세상이 열리는 충격이었다. 온 마을에 다 들릴 정도로 크게 튼 음악들은 배뱅이굿과 회심곡이 주로 나왔다. 계집 아이는 마당에서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나 사방치기 놀이를 하다가도 이웃집에서 배뱅이굿이 들려오면 슬그머니 놀이에서 빠져 나와 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뒤란 담벼락에 기대 앉아 한없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가끔 어른들에게 들키면 어린 게 청승이라는 지청구를 듣곤 했다.
 

▲ 이은관의 배뱅이굿 LP 판     ⓒ 최영숙


배뱅이굿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해도 최 정승의 딸 배뱅이가 18살에 상사병으로 죽자 부모는 딸 배뱅이의 넋이라도 불러보고 싶어 딸의 넋을 불러오는 사람에게 재산의 절반을 나눠 주겠다고 했다. 팔도의 무당이 오나 배뱅이의 넋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이 마을을 지나던 평양의 건달이 마을 할머니에게 배뱅이가 죽은 사연을 듣고 최 정승의 집으로 와서 가짜 무당행세로 배뱅이 넋을 부른 듯 속여서 최 정승의 재산을 받아가는 내용이었다.

 

▲ 상여가 잠시 쉬었다 가다     ⓒ최영숙


 배뱅이굿을 들으면 그 속에는 구슬픔과 흥겨움이 함께 있다. 부모은공을 생각하게 했고, 저승에 가서 권선징악을 하는 장면들에서는 어린 마음에 죽음을 무서워하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배뱅이굿을 해석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가짜 무당에게 속는 마을사람들과 배뱅이 부모가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엉터리 박수무당이 배뱅이 부모를 위로하고 떠났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그 부모에게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가짜 배뱅이 넋이 와서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것을 보고 부모가 울고 나오면서 기둥뿌리라도 다 뽑아가거라!고 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바탕 울고, 웃고 세상사를 너그럽게 볼 수 있던 한 판 굿이었던 배뱅이 굿은 언제 들어도 깊은 해학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 이은관 선생 제자들이 상여를 메고 모시다     ⓒ최영숙


 
배뱅이굿을 듣고 자란 계집아이는 이제는 중년에 이르렀다.

 이은관 옹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면서 유년이 사라지는 듯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껏 울고 싶을 때 배뱅이굿을 들었기에 이 어르신에게 늘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서도소리 무형문화재 김경배 씨가 스승의 영정을 들고 창을 하다     ⓒ최영숙



발인은 지난 14일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했다. 장지는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시립공원 묘지였다.

발인이 끝나고 용미리 시립공원에 도착했다. 꽃상여가 준비되어 있었다. 상여는 고인의 제자들이 메고 상여소리 또한 제자들이 맡았다. 상여소리를 하는 제자는 서도소리 보유자 무형문화재 김경배(55)씨, 21살 때부터 상여소리를 한 안성근(59)씨와 여러 제자들이 불렀다. '국악한마당'을 보는 느낌이었다. 무형문화재가 부르는 상여소리를, 그것도 스승을 위해서 무대가 아닌 현장에서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스승의 마지막 가는 길에 제자들은 온 정성을 다했다.

▲ 이은관 선생의 수제자들이 달공을 하다     ⓒ최영숙



제자 한국남(67)씨는 “선생님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정이 많으셨다. 많이 울었다. 내 손으로 잘 모시려고 한다.”고 했다. 상여를 맨 제자 중 최고령자는 최죽선씨로 77세의 나이로 스승의 상여를 맸다.

▲ 이은관 선생의 명정     ⓒ최영숙

 
양진희(57)씨는 “선생님은 배뱅이굿을 부르시는 것 외에도 창작곡을 많이 만드셨다. 모든 악기를 하셨다. 섹스폰과 대금 등 못 하시는 게 없었다. 뭐든지 새롭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어린애 같은 분이셨다.”라고 회상했다.

▲ 이은관 선생의 하관식을 보면서 슬퍼하는 유족들과 제자들     ⓒ최영숙



이광수(65) 씨는 “선생님과 함께 선생님의 창작품으로 녹음을 하기로 했는데 돌아가셨다”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슬픔을 표했다.

 

상주 이승주(52)씨는 “아버님은 가족보다도 배뱅이굿이 먼저였기에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님 가시는 길에 제자들의 진심어린 모습을 보면서 아버님이 잘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며 함께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서도소리 무형문화재 이은관 선생 마지막 길을 나서다     ⓒ최영숙



이은관 옹의 마지막 길을 기록하면서 마음이 남달랐다. 유년을 풍성하게 했던 고인에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97세에 세상을 떠나고 80여 년을 서민들의 애환과 삶 속에 녹아나는 창을 불렀던 고인의 마지막 길이 생각보다 간소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부모의 사망 소식에도 각 방송사의 취재 열기로 북적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한결같은 길을 걸은 분의 마지막 길이 어찌 이리 쓸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긴 세월을 살아낸  예인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다.  

▲ 이은관 선생에게 동백꽃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표하는 제자들     ⓒ최영숙



그러함에도 제자들이 스승을 떠나 보내는 정성이 지극했기에 이은관 옹은 세상 마지막 떠나는 길이 서운치 않았을 것이다.

▲ 깊은 슬픔에 잠긴 수제자들     ⓒ최영숙



77세 제자가 상여를 메고  나이든 제자들이 사랑해요 하트를 그리며 스승을 떠나 보내고  스승의 무덤에 엎드려 땅을 치고 우는 제자들을 보면서 이은관 옹이 어떻게 살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다     ⓒ최영숙


 
무덤을 떠나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깊게 인사를 드렸다.

 

어디선가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 왔소이다.” 하는 배뱅이굿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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