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 김근태 선생의 마지막 길... 사회장으로

치러그대, 잘 가라... 민주주의여...

최영숙 | 기사입력 2012/01/04 [21:50]

민주주의의 꽃, 김근태 선생의 마지막 길... 사회장으로

치러그대, 잘 가라... 민주주의여...

최영숙 | 입력 : 2012/01/04 [21:50]
▲ 마석 모란공원으로 들어서다     ©최영숙

 
'민주주의자'라고 불린 김근태(64)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11년 12월 30일 별세했다.  2012년 1월 3일 故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 빈소를 찾은 동지들의 슬픔     © 최영숙


2012년 1월 3일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했다. 발인제를 하기 전에 옛 동지들이 빈소에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 명동성당에서 영결미사를 드리다     © 최영숙

    
故 김근태(즈카리아)의 영결미사가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추운날씨에도 1000여 명의 시민들과 범야권 인사들이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했다. 

▲ 영결식에 참석한 야권인사들     ©최영숙


민주통합당 원혜영, 이용선 공동대표, 고인과   고등학교ㆍ대학교 친구인 손학규를 비롯한 정동영, 이해찬 상임고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민주통합당 당권주자인 한명숙, 박영선, 이인영 씨와 소설가 조정래 등이  명동성당에서 열린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영결식에 참석했다. 
 

▲ 명동성당에서 영결식이 열리다     © 최영숙


김상근 목사의 개식사로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김상근 목사는 개식사에서 "모든 일을 다 제치시고 이곳으로 달려오신 참예자 여러분, 지금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근태를  떠나보내는 예식을 시작하려 합니다.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슬프고 또 슬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려고 빈소를 찾았던 것이 아닙니다. 김근태를 가슴에 담고자 거길 찾았습니다. 김근태! 그는 결코 땅에 묻히지 않을 것입니다. 김근태! 우리는, 그를 우리의 가슴에 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 지선스님 추모사를 하다     © 최영숙


지선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따뜻한 민족 지도자인 당신은 우리에게 퀭한 눈빛, 지독한 콧물, 찐한 목소리, 떨리는 손, 평생 짊어진 고문의 아픔, 사랑하는 동지와 가족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저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가 이 영결식장에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희망을 준 당신!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라고 했다. 
 

▲ 남편의 고문 사실을 알리고 남편과 함께 케네디 인권상을 받은 부인 인재근 씨가 슬픔에 젖다     © 최영숙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민주주의자 김근태! 우리의 맨 앞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큰형, 김근태 동지를 떠나보냅니다.  당신께서는 고문으로 심어진 병마와 사투를 벌이셔야 했습니다. 매년 초가을 몸살을 앓아야만 했고, 뜨거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했던 그 고통을 나눌 수 없어 죄스럽고 마음이 아렸습니다. 당신의 그 고통은 우리에게 독재의 그 어둡고 참혹한 시절을 기억하라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것임을 기억하라고 명령하는 역사의 문신이었습니다. 당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싹을  틔웠습니다."고 추모했다.
 
이어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는 "당신께서 품으신 고귀한 민주주의와 인간애의 뜻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늘 온화하시고 사려 깊으셨던 당신의 모습은 많은 후배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다시 당신을 뵐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큰 슬픔입니다. 이제 저 높은 곳에서 평안하십시오."라고 추모했다. 
 

▲ 김국주  조시를 읽다    © 최영숙


김근태 상임고문의 고교ㆍ대학 1년 선배인 김국주 씨는 '김근태를 위한 조시'에서 "우리가 슬픈 이유는 당신이 병세의 갑작스런 악화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신은 평생을 통하여 유언에 필적하는 많은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남기고 가셨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니 슬프기는 하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생각해도 우리가 정말 슬픈 이유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랍니다."고 했다.
 
이인영 후배는 " 저는 큰 나무 아래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저의 시간은 당신을 붙들고 움직일 줄 모릅니다. 저의 마음은 당신을 붙잡고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당신 없이 가는 그 길, 얼마나 또 외로울까,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김근태 형, 김근태 선배님, 선배님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길을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사랑합니다. 우리들의 형수, 우리들의 조카 병준이, 병민이 저희들이 잘 지키겠습니다. "나는 충분히 보상 받았다. 역사의 책무를 다한 이름 없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그 말씀처럼 글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함께 해 주셨던 수 많은 사람들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추모했다. 
 

▲ 소리꾼 장사익 씨의 조가     © 최영숙


소리꾼 장사익 씨가 조가를 불렀다. 

▲ 가족들이 출간 예절을 하다     © 최영숙


   가족들이 출간 예절을 했다. 
 

▲ 전태일 다리에서 노제를 지내다     © 최영숙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노제를 지냈다.  
 

▲ 하관식을 위해 마석 모란공원으로 들어서다     © 최영숙


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운구가 하관식을 하기 위해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들어섰다.   
 

▲ 기다리는 사람들     © 최영숙


  400여 명의 추모객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 명정과 함께 하관식을 하다     © 최영숙


 하관식은 기독교계와 불교계에서 추모사를 하고 천주교 미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명정포를 헌사 했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라고 쓰인 명정포와 함께 안장되었다. 신영복 교수는 묘비명도 쓸 예정이라고 한다. 

▲ 조정식 국회의원 취토를 하다     © 최영숙

 
 조정식 국회의원이 취토를 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 최영숙


 무덤에서 올리는 첫 제사인 초우제를 지내고 옛 동지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    무덤을 덮었던 태극기를 꺼내서 접다 © 최영숙

 
  하관식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얼굴이 새겨진 걸개그림과 무덤     ©최영숙


 
"2012년 투표하라.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2011년 10월에 했던 말이 유언이 되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 -2011년 김근태-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김근태-
 
고(故) 김근태 상임위원에게 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글을 남겼다.
"1986년 출판사에 있을 때 김 고문의 고문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충격을 받고 출판사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버텼으면 더 좋은 세상 보고 가셨을 텐데…"   -공지영
 
"때론 망설이기도 하겠지만… 내 인생이 끝나는 날 어쩌다 그리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김근태를 아는 사람이라서요, 라고 말하고 싶다." -추모의 벽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최고의 덕목이 되는 나라, 우리 가슴에 남겨주셨습니다"
-김호경
 
"너무 귀한 꽃이 졌습니다. 한결같은 꽃이셨죠… 참 아픕니다…"  -박경철
 
"김근태 선배는 우리의 순정이었다. 정치적 상실감도 크지만 젊은 날 가슴속에 가졌던 순정이 끝내 짓밟힌 느낌이다."  -임종석
 
"당신이 그토록 갈구하시던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외수
 
"내가 자유롭게 말할 때, 내가 자유롭게 글을 쓸 때, 그리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울 때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김호경
 
"고인 성대모사도 하고, 뒷북 잘 치신다고 뒷담화도 했지만 … 김근태 선생님의 일관됐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진정성을 존경합니다."  -김용민
 
"아파트 단지에서 유세를 할 때 "시끄럽게 하면 피해보는 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생목'으로 유세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작은 것도 배려하고 약자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내신 분이 가셔서 굉장히 슬프다."  -박철민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비춰진 고 (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모습은 강인함속에 깃든 온화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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