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라고 불린 김근태(64)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11년 12월 30일 별세했다. 2012년 1월 3일 故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2012년 1월 3일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했다. 발인제를 하기 전에 옛 동지들이 빈소에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故 김근태(즈카리아)의 영결미사가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추운날씨에도 1000여 명의 시민들과 범야권 인사들이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했다.
민주통합당 원혜영, 이용선 공동대표, 고인과 고등학교ㆍ대학교 친구인 손학규를 비롯한 정동영, 이해찬 상임고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민주통합당 당권주자인 한명숙, 박영선, 이인영 씨와 소설가 조정래 등이 명동성당에서 열린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영결식에 참석했다.
김상근 목사의 개식사로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김상근 목사는 개식사에서 "모든 일을 다 제치시고 이곳으로 달려오신 참예자 여러분, 지금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근태를 떠나보내는 예식을 시작하려 합니다.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슬프고 또 슬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려고 빈소를 찾았던 것이 아닙니다. 김근태를 가슴에 담고자 거길 찾았습니다. 김근태! 그는 결코 땅에 묻히지 않을 것입니다. 김근태! 우리는, 그를 우리의 가슴에 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지선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따뜻한 민족 지도자인 당신은 우리에게 퀭한 눈빛, 지독한 콧물, 찐한 목소리, 떨리는 손, 평생 짊어진 고문의 아픔, 사랑하는 동지와 가족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저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가 이 영결식장에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희망을 준 당신!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라고 했다.
| ▲ 남편의 고문 사실을 알리고 남편과 함께 케네디 인권상을 받은 부인 인재근 씨가 슬픔에 젖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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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민주주의자 김근태! 우리의 맨 앞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큰형, 김근태 동지를 떠나보냅니다. 당신께서는 고문으로 심어진 병마와 사투를 벌이셔야 했습니다. 매년 초가을 몸살을 앓아야만 했고, 뜨거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했던 그 고통을 나눌 수 없어 죄스럽고 마음이 아렸습니다. 당신의 그 고통은 우리에게 독재의 그 어둡고 참혹한 시절을 기억하라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것임을 기억하라고 명령하는 역사의 문신이었습니다. 당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싹을 틔웠습니다."고 추모했다.
이어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는 "당신께서 품으신 고귀한 민주주의와 인간애의 뜻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늘 온화하시고 사려 깊으셨던 당신의 모습은 많은 후배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다시 당신을 뵐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큰 슬픔입니다. 이제 저 높은 곳에서 평안하십시오."라고 추모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고교ㆍ대학 1년 선배인 김국주 씨는 '김근태를 위한 조시'에서 "우리가 슬픈 이유는 당신이 병세의 갑작스런 악화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신은 평생을 통하여 유언에 필적하는 많은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남기고 가셨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니 슬프기는 하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 번 생각해도 우리가 정말 슬픈 이유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랍니다."고 했다.
이인영 후배는 " 저는 큰 나무 아래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저의 시간은 당신을 붙들고 움직일 줄 모릅니다. 저의 마음은 당신을 붙잡고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당신 없이 가는 그 길, 얼마나 또 외로울까,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김근태 형, 김근태 선배님, 선배님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길을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사랑합니다. 우리들의 형수, 우리들의 조카 병준이, 병민이 저희들이 잘 지키겠습니다. "나는 충분히 보상 받았다. 역사의 책무를 다한 이름 없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그 말씀처럼 글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함께 해 주셨던 수 많은 사람들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추모했다.
소리꾼 장사익 씨가 조가를 불렀다.
가족들이 출간 예절을 했다.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노제를 지냈다.
| ▲ 하관식을 위해 마석 모란공원으로 들어서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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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운구가 하관식을 하기 위해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들어섰다.
400여 명의 추모객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 ▲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 명정과 함께 하관식을 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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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식은 기독교계와 불교계에서 추모사를 하고 천주교 미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명정포를 헌사 했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라고 쓰인 명정포와 함께 안장되었다. 신영복 교수는 묘비명도 쓸 예정이라고 한다.
조정식 국회의원이 취토를 했다.
무덤에서 올리는 첫 제사인 초우제를 지내고 옛 동지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 ▲ 무덤을 덮었던 태극기를 꺼내서 접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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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식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 ▲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얼굴이 새겨진 걸개그림과 무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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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투표하라. 참여하는 사람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2011년 10월에 했던 말이 유언이 되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 -2011년 김근태-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김근태-
고(故) 김근태 상임위원에게 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글을 남겼다.
"1986년 출판사에 있을 때 김 고문의 고문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충격을 받고 출판사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버텼으면 더 좋은 세상 보고 가셨을 텐데…" -공지영
"때론 망설이기도 하겠지만… 내 인생이 끝나는 날 어쩌다 그리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김근태를 아는 사람이라서요, 라고 말하고 싶다." -추모의 벽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최고의 덕목이 되는 나라, 우리 가슴에 남겨주셨습니다"
-김호경
"너무 귀한 꽃이 졌습니다. 한결같은 꽃이셨죠… 참 아픕니다…" -박경철
"김근태 선배는 우리의 순정이었다. 정치적 상실감도 크지만 젊은 날 가슴속에 가졌던 순정이 끝내 짓밟힌 느낌이다." -임종석
"당신이 그토록 갈구하시던 봄은 아직도 오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외수
"내가 자유롭게 말할 때, 내가 자유롭게 글을 쓸 때, 그리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울 때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김호경
"고인 성대모사도 하고, 뒷북 잘 치신다고 뒷담화도 했지만 … 김근태 선생님의 일관됐던 철학과 신념 그리고 진정성을 존경합니다." -김용민
"아파트 단지에서 유세를 할 때 "시끄럽게 하면 피해보는 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생목'으로 유세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작은 것도 배려하고 약자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내신 분이 가셔서 굉장히 슬프다." -박철민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비춰진 고 (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모습은 강인함속에 깃든 온화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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