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은 가정집 서재와 거실 같은 역할을

최찬희 시흥예총회장 | 기사입력 2020/03/07 [01:39]

문화공간은 가정집 서재와 거실 같은 역할을

최찬희 시흥예총회장 | 입력 : 2020/03/07 [01:39]

▲ 최찬희 시흥예총회장     ©시흥예총 제공

 

 

인류는 장구한 세월을 이어오며 다양한 흔적을 남겨 놓았고, 현재에도 지향하는 모둠의 일원으로 각자의 역 할에서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가운데 많은 종류의 직업이 생겨났고, 앞으로도 그 다양성은 멈추지 않으며 발전해 나아갈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다른 업종에 비해 다양성의 가속화가 비교적 느리게 분화하는 측면에 반해 교육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욕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인은 자신의 예술적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며, 그 산물인 창작물을 다양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소비자인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소통하길 원한다. 그 현장이 예술인들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소득을 창출하는 사업장 역할을 한다.

 

공산품은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연구와 개발을 멈추지 않고 투자하며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경쟁한다. 거기에 최적의 매대 위치와 높이를 맞추고, 상품에는 소비자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명도 비추고, 잔잔한 음악도 틀어 상품 구매로 연결하기 위한 안간힘을 발휘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고급 백화점이며 전문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반면에 예술품은 어떤 현장에서 소비자와 대면을 할까?

 대다수의 예술품은 공공시설을 통해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간은 상품을 최적의 조건에서 소비자에게 홍보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방의 기초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시설은 더 열악하다. 창작활동을 통해 생산한 예술품을 소비자인 시민에게 선보이고 소비로 연결해야 하는 지역의 예술인들은 불경기로 인한 경기의 위축과 함께 여러 가지 열악한 현실과 부딪쳐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를 벗어나 문화예술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지원과 육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가정에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대부분 넓은 거실과 방이 여럿 있는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 온 식구가 넓은 거실에 둘러 앉아 대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며 가족 간의 단란한 시간을 꿈꾼다. 거실과 서재는 가정 내의 문화의 공간으로 그 역할이 구성원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몇 발 짝 멀리 내다본다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거실과 서재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녀들은 단순히 넓은 생활의 공간에서 풍요롭게 성장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대를 거쳐 환경이 이어져온 가정의 문화와 그렇지 못한 가정의 문화는 서로 상황이 많이 다를 거란 예상을 하게 된다. 가족들 간에 거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재에서는 다양한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며 성장한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 속에서도 풍부한 지식을 겸비하고, 상대와의 대화를 경청하며 소통하는 원만하고 합리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한 몫을 할 것이다.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보면 미술가의 작품을, 멋진 기획과 구상으로 최고 수준의 예술가와 함께 완성한 공연을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최적의 음향, 영상, 조명 등의 지원 속에 펼쳐지는 공연을 접하고 향유하며 성장한 시민들은 늘 풍요로울 것이다. 삶의 풍요를 넘어 다양한 예술 장르를 접하며 성장한 시민들 속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가정은 가정을 꾸려가는 부모가, 시민을 상대로 하는 공공 기관의 영역은 공공기관의 영역대로 깊은 고심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다.

 

문화예술의 공간은 직접적인 부가가치 창출의 공간으로 보기에 어려운 측면이 크다. 직접 투자의 공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화예술 시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긴 호흡으로 먼 미래를 생각하며, 투자해야 하는 철학의 문제이며,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시민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요인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품격과 연결 지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올 가을 시흥예총 회원단체인 시흥음악협회에서 벼꽃 피다란 주제로 창작 오페라를 제작해 공연을 가졌다시흥시 호조벌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시흥시가 편찬한시흥시법정동지명유래는 호조방죽을 쌓는 과정에 있었을 법한 사건에 대한 구전을 기록하고 있다. 바다를 막는 대역사의 과정에 당연히 생성될 만한 전설이다. 전설하나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고 할까. 사실이라고 해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이야기다. 내용인 즉, 쌓으면 무너지고 또 쌓으면 무너지는 방죽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생매장해야 한다는 것, 즉 희생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간척사업이 얼마나 어렵고 큰일이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먹는 햇토미300년 전 대사역의 결과물이다. 이 전설을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 창작 오페라를 창조 하는 것이 제작의도다. 새로운 시선,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통한 문제제기가 작품의 목표다. 옛 이야기를 활용하여 오래된 미래를 펼쳐보려는 의도다. 시흥, 호조벌에 새로운 전설을 심어보려는 것이다. 명작의 고향을 삼아보려는 것이다. 시흥 이야기에서 세계 보편이야기로 물고를 트려는 것이다.”

창작오페라 벼꽃 피다’<시놉시스>중 제작의도

 

오페라 제작을 위한 예산은 시흥시에서 공모한 창작 지원공모에 당선되어 그 지원금으로 제작되었다. 공연 예술 대부분 그러하듯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공동의 작업을 통해 콘텐츠가 완성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 지역 예술단체인 시흥음악협회가 창작 오페라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열정과 역량을 갖췄다는 점과, 시흥시에서는 이 제작비용을 공모를 통해 과감히 지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가치 있는 것은 오페라 의 소재를 300년 전 간척사업을 통해 얻은 지역의 문화유산인 호조벌의 전설을 모태로 했다는 점이다.

 

지역의 예술인과 예술단체는 앞으로도 역량을 배양 하고, 지역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소재를 찾는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이런 과정 속에서 제작된 오페라가 여러 가지의 조건을 잘 갖춘 전문 공연장에서 펼쳐졌더라면 그 감동이 배가 되었을 거란 아쉬움과 함께, 초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콘텐츠로 의 발전을 꿈꾸며 갈고 닦을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글은 '예술시흥 2019 Vol.21'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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