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무 화백 1주기를 맞으며

최영숙 | 기사입력 2020/02/21 [22:48]

故 임무 화백 1주기를 맞으며

최영숙 | 입력 : 2020/02/21 [22:48]

 

▲ '설악 추경' 임무 화백 작품  © 시흥예총 제공

 

늦가을,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나뭇잎은 한사코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달라붙고 물기를 품은 산하는 더욱 선 명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임무(1944~2018) 화백의 설악 추경이 보고 싶어졌다. 화폭에는 도착점에 다다른 설악 단풍의 화사함이 쓸쓸함을 더했다. 임 화백은 인간이 어찌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을까. 더더욱 붓 한 자 루로 자연의 위대함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에 겸손해지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는가.”라고 작가노트에 적었다. 2018년 성탄절 날 임무 화백의 부음을 접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고인이 떠올랐다. 인천성모병원 빈소를 찾았다. 최찬희 시흥예총회장 등 평소 고인과 교류하던 지인들의 노력으로 시흥시에서 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시흥예술인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임무 화백은 1944년 통영에서 출생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수료하였으며 개인전 5회를 비롯 단체전 및 초대전 330여 회를 가졌다. 동아미술제 특선, 시흥시문화 예술대상, 경기도예술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한국 예총 시흥지회장 역임, 2회 시흥갯골축제위원장 등을 맡아 봉사했으며 시흥 문화계 전반에서 활동했다. 임무 화백을 떠올리면 선한 웃음과 조용하면서도 따뜻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임화백의 1주기도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가을이 깊은 날, 임무 화백과 깊은 교류를 나 눴던 지인들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함께 한 세월에 대해 들었다. 김태경(1961년생) 시흥시의회장은 “1992년 시흥예총 을 만들 때 처음 만났다. 임무 선생님과 시흥예총회장 보궐선거 때 만났지만 임무 선생님이 잔여임기를 하시는 것으로 했다. 임무 선생님이 시흥예총을 이끌면서 단체들과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했다. 어른의 역할을 잘하셔서 모두 존경하고 따랐다. 늘 화합을 이끌어냈다. 최찬희 시흥예총 회장 등이 노력해서 장례식을 시흥예술인 장으로 치른 것은 잘한 일이다. 죽음이란 불시에 닥치는 일이어서 예술인의 입장에서는 시에서 도와주기를 원하지만 시흥의 인물처럼 지정된 인물이면 논의할 텐데 행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순겸(1959년생) 화백은 “2000년 학교를 퇴직하고 시흥미협에 가입하면서 사무국장이었던 임무 선생을 옛 시흥시청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인상이 선하고 무척 젊어 보였다. 인연이 되어 2002년 임무 선생이 시흥미협회장을 맡고 사무국장을 맡았다. 늦게 그림을 시작한 임무 선생은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셨다. 임무 선생의 한국화 표현기법은 생동감 있고 하나하나 부드러운 선이 아니고 어느 때는 강하고 거칠면서도 날카롭다. 그래서 독특했다.”라고 회고했다. 안시헌(1955년생) 조각가는 임무 선생님의 한국화는 구상 계열이며 풍경 산수를 그렸는데 다 채색을 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의 채색을 해서 간결한 화풍을 선보였다. 통영 욕지도 출신이며 통영에서도 상당히 추장 작가로 인지도가 있다. 시흥예총회장을 하셨을 때도 지역 문화 발전에 힘쓰셨고 어른 역할을 하셨다. 고인의 유작전 등을 했으면 한다. 어떤 형식이든 소장하신 작품 하나씩이라도 전시회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박영규(1956년생) 주간시흥 발행인은 차분하고 예술인의 자부심이 강했고 지역에서 따라갈 분이 없었다고 했다. 이재억 초대 시흥예총 회장은 매형이니까 결혼할 때 만났다. 1992년 시흥예총을 만들면서 성남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임무 선생을 시흥으로 불렀다. 시흥에서 누나가 학원을 운영하고 평생 생계를 담당했다. 매형은 숨질 때까지 그림만 그렸다. 매형이 떠나고 누나는 그림만 그리는 매형에게 서운하게 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많이 힘들어한다. 고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유고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비쳤다. 장례식을 가면 고인의 삶이 극명하게 보인다.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사람들은 고인이 살았던 삶의 편린 들이다. 20181226일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시흥 의 예술인들과 지인들이 많이 왔다. 김태경 시흥시의회장은 임무 전 회장님은 예총에서 제 전임 회장이시고 오랜 시간 역사를 만들어 왔다. 집안 의 맏형 같았다. 아직도 활동하실 분인데 너무 일찍 곁을 떠나셔서 마음이 아프고 오후 내내 먹먹했다. 누구나 한 번 왔다 가지만 성탄절, 하느님이 데려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박영구 (1950년생) 전 시흥시문화관광과 과장은 호흡이 잘 맞았고 임무 회장님이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 예산은 적은데 행사를 키우려고 각 협회가 서로 예산을 받으려고 해서 힘들었지만 임무 회장님이 잘 조정하셨다.”라고 했다. 최병례 (1957년생) 전 시흥예총 사무국장은 임무 선생님은 양반, 신사의 이미지였다. 계실 때 주위에서 인정을 받았고 직원들이 마음 편하게 근무하게 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들어서 걱정했고 병원에 계실 때 찾아뵈었는데 그동안 회복된 모습 뵈면서 이제 됐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해서 너무 놀라웠고 안타까웠다.”라고 했다.

 

 

▲ 임무 화백 시흥예술인장으로 치뤄지다  © 최영숙

 

201812279시에 고인의 장례식은 시흥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최찬희 시흥예총회장이 조사(弔辭)를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임무 시흥예총명예회장님! ?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셔야 하나요? 생각 할수록 허망하고 비통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회장님과의 인연을 되뇌어 보면 20여 년 전 제가 부천에서 시흥으로 이사와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할 때 시흥미술협회에서 뵈었습니다. 회장님은 그때는 현재의 저보다도 더 젊은 50대의 청년이셨습니다. 낯선 시흥으로 이사해서 예술인으로 처음 뵌 분입니다. 인자하시고, 온화하시고, 다정다감한 형님 같으셨습니다. 회장님과의 인연 후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을 글로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나이 사십에 늦게 장가가는 저의 결혼을 축하해 주셨고 올해로 18살이 된 제 여식의 백일과 돌잔치에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8년 전 선친의 장례를 모실 때 경기도 광주까지 오셔서 조문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어제 비보를 함께한 제 아내와 딸도 생전에 회장님을 회상하며 안타까워하며 슬퍼했습니다. 아내는 우리 집에 오셔서 보잘 것 없는 솜씨로 끓인 민물매운탕을 맛있다고 하시며 드시던 옛이야기를 했고, 제 딸은 물왕예술제 때 비둘기공원에서 뵈었을 때 서윤이 몇 살 됐니? 많이 컸다.” 하셨던 생전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저의 객지 생활 40여 년 중 절반을 회장님과 같이 했습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을 추억으로 간직하기에는 준비하고, 정리할 수 없는 미완의 슬픈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은 시흥미술협회의 사무국장. 회장, 그리고 시흥예총 회장을 역임하신 유일한 저의 전임 회장이셨습니다. 시흥미술협회 회장 재임시 시흥의 예술 역사 최초로 미국의 자매도시인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시의 미술작가의 작품과 시흥시의 미술작가의 작품을 서로 해를 바꿔 교차 전시하는 국제교류전을 성사시켜 개최하셨습니다. 회장님! 기억하시죠? 교류전을 위해 미국과 우리나라를 오갔던 기억들이요? 미국에 우리의 친구들! 로체 스트시브레드 시장, 고인이 되신 핸슨의장, 프레드가물스, 그레이스전 그리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교민들,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올해로 13회를 개최한 연꽃그림페스티벌을 기획하시고, 개최를 통해 시흥시와 연()의 역사적 관계를 전국에 알리셨고,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동안 연꽃테마파크에 서 미술가들이 교류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일에는 늘 청년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셨고, 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으로 후배 회원들을 보듬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시흥시를 넘어 미술계의 중앙에서 활동과 그리워하시던 고향 인 통영의 예술가들과도 교류하셨고, 한국미술협회, 경기도미술협회, 한국예총의 발전을 위해서 늘 헌신적으로 봉사하셨습니다. 그동안 회장님이 예술계에 남겨놓으신 노고와 족적을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회장님! 그동안 병마와의 시간, 이제는 다 떨쳐 버리시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멋진 풍경 생시(生時)처럼 사생 다니시며, 영면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이제 아쉬움과 안타까 움, 큰 슬픔을 내려놓고 회장님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저희에게 보여주신 예술정신과 헌신적인 실천의 모습, 잘 이어받겠습니다. 생전에 병마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실 때 후배들의 미흡했던 보살핌에 깊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남겨 두고 가시는 가족들, 이재억 명예회장님과 상의하며 마음을 모아 살피고 모시겠습니다. 부디 평온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길 시흥의 모든 후배 예술인들과 함께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회장님! 아니 선배님! 형님의 영원 한 안식을 기원드립니다. 영원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임무 화백 작품  © 시흥예총 제공

 

이어서 안시헌 시흥시의회 전 의장의 추도사가 이어 졌다. “임무 시흥미협, 시흥예총 명예회장님을 그리며 시흥에 첫발을 내딛고 반년쯤 지나 작은 갤러리를 열 던 2000년도 그 해 봄이 무르익는 5월에 오십 중반의 임 무 회장님을 처음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봐도 썩 잘난 용모에 서글서글한 눈빛이 큰 형님 같았던 회장님을 근 이 십 년간 고락을 함께하며 누구보다 더 돈독한 정을 쌓았다고 했는데 다시는 뵈올 수 없다는 이 참담함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임무 회장님이여! 지난 30년간 예술의 불모지인 시흥에서 문화의 수를 놓으시고 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가시밭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시흥미술협회장이 되시어 시흥미술제, 미협정기전, 사생휘호대회는 물론, 이전에 없던 미국 로체스터시 교류전과 전국 규모의 연꽃그림페스티발을 개 하시었고 또한 시흥갯골생태축제의 추진위원장으로 시흥의 생태환경과 예술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시흥시의 문화예술과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큰 역할을 해 오셨습니다. 또한 지역 예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흥시민예술대상을 수상하시면서 지역 예술인들의 큰 자랑이 되셨으며, 이후 한국예총 시흥지부장의 막중한 책임을 맡으면 서 예총아카데미를 개설하여 남다른 열정과 비전을 세워 시민들의 문화예술의 향유와 저변 확대를 위해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시며 시흥 예술인들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시흥예총의 위상을 드높이 세워 놓으셨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임무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평소 부족한 시간에도 들로 산으로 사 생을 다니시며 작품 제작에 열정을 다하셨으며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라는 말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현장의 중요성을 통해 많은 후학들을 가르치신 훌륭한 스승이셨습니다. 지난 10월에는 고향인 통영에서 출향작가 초대 개인전을 하시는 열정을 놓지 않았는데 아, 이것이 회장님의 마지막 전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승이자 형님이자 친구로서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당신을 황망히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회 장님께서 이 땅에 꽃 피우신 당신의 불꽃같은 예술 혼과 이타심을 되새기며 시흥 예술의 미래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펼쳐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지역 예술을 더욱 성장시켜 시민이 행복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흥과 시민에게 사랑받는 예술인으로서, 단체로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임무 회장님! 감사했습니다. 삼가 회장님의 영면을 다시 한 번 기원드립니다. 이제 세상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소서! 진정 한 예술가로서 선배로서 커다란 길잡이가 되신 회장님을 우리 모두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 참으로 많이 행복했습니다. 임무 회장님! 임무 형님! 안녕히 가십시오.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81227일 시흥미술협회원, 시흥시의회 전 의장 안시헌

 

뒤이어 김규환 시흥미술협회 회원의 고별사가 이어졌다. “가을인가 했더니 이제 날씨는 쌀쌀해져 12월 겨울입니다. 오늘 아침은 더 차가워졌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예전 어느 날 소래산에서 만나 산을 내려와 막걸리를 마시며 건강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이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계세요? 묻고 싶습니다. 자꾸만 자꾸만 묻고 싶습니다. 어디 계세요? 추억을 떠올립니다. 그때 그 일을 생각합니다. 제게는 스승 같은 선생님, 선생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있어 개인적인 이야기 못합니다. 그러나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지금, 아직, 어디에 계실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지 않고 어디에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제겐 젊은 친구를 생각나게 합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늘 젊은 친구! 임무 선생님입니다.” 김규환 화가는 고별사를 끝내 다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장내는 깊은 슬픔으로 더욱 가라앉았다.

 

▲ 임무 화백     ©시흥예총 제공

 

 

유족대표로 아들 임경식 씨가 인사했다. “어렵고 힘들 때 시흥예총 관계자 분들과 예술인 분들이 힘이 되어 줘서 감사드립니다. 아버님이 하늘나라에서 잘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버님께 존경심을 담아 주셔서 그 마음들을 자랑으로 받아들여 힘내서 잘 살아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20191225일이면 임무 시흥예총 명예회장의 타계 1주년이 된다. 선한 웃음과 온유했던 임무 화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왜 존경받았는지를 안다. 당신의 예술세계 안에서는 치열했고, 세상 밖에서는 온유 했다. 많은 이들이 늘 모닥불의 온기를 지니고 있던 당신 의 따스함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말한다. 고인이 남긴 필생의 작품들을 한자리 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이 글은 '예술시흥 2019 Vol.21'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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