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변화가 만들어 낸 물왕예술제의 명과 암

최용철 사단법인 디딤돌문화원 이사장 | 기사입력 2020/02/21 [06:38]

기획의 변화가 만들어 낸 물왕예술제의 명과 암

최용철 사단법인 디딤돌문화원 이사장 | 입력 : 2020/02/21 [06:38]

 

 

▲ 물왕예술제 24시간 릴레이  © 시흥예총 제공

 

경계를 허무는 파격破格

요즘 EBS 연습생 펭수가 대세다. 송가인, BTS를 제치고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는가 하면 펭수 다이어리가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올랐다. 올해 4월 구독자 37명으로 시작한 자이언트 펭 TV’는 이제 120만 명의 구독자를 확 보하기에 이르렀다. ‘펭수의 매력 포인트는 경계를 넘나드는 무경계의 캐릭터란 것이다. 기존 관행이 만든 각종 경계를 모두 허문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 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당당하게 표출한다. ‘파격破格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일정한 격식을 깨트리는 것이다. 또한 위계적인 질서를 전복顚覆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2019년 물왕예술제 기획팀에서 주제를 설정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기본과 예술에 대한 초심을 회복하고 양보다 질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물왕예술제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니터링 초기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은 물왕예술제가 도식화되어 진부하고 정형화된 경험을 준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기획의 변화가 파격적이었던 것은 지금까지 관성에 따라 개최했던 물왕예술제에 관한 예술가의 고정관념을 타파 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과연 물왕예술제가 펭수처럼 대세 예술제가 될 수 있을까. 우선 기획이 지닌 힘과 충만한 에너지가 지난해보다 훨씬 강하고 높다고 느껴졌지만 형식적 제한이 무겁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감지되었다. 실제, 만족도가 지난해보다 높아진 반면 지표 위에 산재하고 있는 자폐증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적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술의 수월성을 추구하고 예술가의 창의적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엘리트 예술은 주로 공연장, 미술관 같은 제도권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 비제도적 공간을 비롯한 삶의 주변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 어지는 생활예술이 부각되면서 시민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 시흥의 정주인구가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 또한 증대되고 있으나 관내의 풍부한 예술 인적자원에도 불구하고 창작공간과 발표 기회의 부족으로 서울 등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가 많지 않은 편이어서 물왕예술제가 건강한 지역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기획팀의 노력으로 장르별 특성이 살아나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를 더욱 확산시키고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홍보 등 운영의 묘를 기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면

흔히들 예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알려거나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전문지식만이 예술작품의 본질을 다룰 수 있을까. 예술의 본성 가운데 하나가 세상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라면 예술가의 역할도 예술가를 위한 예술에서 나아가 대중들이 기억에 남는 순간을 쉽게 접하게 하고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하는 심미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다양한 패러디와 함께 관객들에게 황당한 웃음을 터트리게 한 일이 있었다. 14천만 원짜리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얘기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전시한 작품인데 이게 예 술인가?’ 싶은 의구심을 일으키는 작품이지만 대개의 관객들은 그 앞에서 웃음을 터트리지만 웃고 나서 그 뒤 에 숨은 사회적 의미를 곱씹게 하는 묘한 작품으로 세간 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른 예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체험하는 클래식프로그램을 개발해 어린이들에게 예 술체험과 음악 감상, 교육이 어우러지는 흥미로운 클래식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호평을 받았고 국립현대무용 단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루돌프를 기획한 것은 참고 할만하다. 미래 소비층인 젊은이들이 공연장을 떠나고 있다. 어렵고 비싼 티켓 가격을 대체하는 웹툰이나, 유튜브, 브이 로그 같은 대체제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시가 잘 읽히지 않는 까닭은 독자가 시인의 상상력을 좇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며 현실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 는 것이라는 화가 파울 클레의 말을 감안하면 물왕예술제에 시민들의 참여율이 낮은 것은 예술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축제는 단일 장소, 고정된 무대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장르별 특성에 맞게 대상과 공간을 찾아가 시민과의 소통을 시도한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 이슈화하기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음에도 홍보와 기획력 부족으로 아쉬움을 남겼고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사한 패턴의 방임 형 운영으로 안타깝게 했다. 예술제가 겉치레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파격을 내세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지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개막식을 미술전시장에서 음악 과 함께 한 것은 매우 좋은 의도였으나 정작 행사 자체는 내빈들 소개에 지나친 시간을 할애해 취지가 많이 희석 된 것과 공연장이나 전시장, 행사장에서 시민들과 소통 하는 예술가가 많지 않았던 것도 예술제의 가치를 낮추 는 요인이었다.

 

▲ 물왕예술제 '엄마에게'  © 시흥예총 제공

 

물왕예술제의 정체성은?

물왕예술제가 시흥지역 예술가들이 일 년에 한 번 자신들의 역량과 작품으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장르별 특성을 살려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다가간 것은 바람직하지만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예술제에 정작 예술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의 눈높이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다양한 매체 들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작품이나 공연들을 접하면서 안목은 높아졌는데 지역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공연·전 시들이 범람하면서 예술 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만 큼 시민들의 안목에 맞춘 수준 높은 작품이 절실해 보인 다. 이번 예술제에서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호응 을 얻거나 수준 높은 공연으로 감동을 이끌어 낸 것은 시 사 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시민과의 소통 부족 뿐 아니 라 관성적이거나 대상이 적절치 않은 프로그램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협회 간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아 장르 별 호응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개관 50주년 기념 전시로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을 모티브로 구상한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였는데 전시도록 대신 소설집을 발간한 것이다. 미술과 문학의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7명의 소설가들이 광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토대로 소설로 풀어냈는데 기존 의 전시도록은 대개 미술관계자만 보고 끝나는데 일반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과 미술이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과 같이 무대와 주제의 한계를 넘어 새 가 능성을 찾고자 하는 실험정신이 새로운 장르 간의 결합 을 만들어 내면서 최근 예술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시민들에게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전통을 깨기 위한 시도들이 국내외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왕예술제의 공연 팸플릿이나 전시도록 역시 공급자 위주의 프로필 알리기보다는 작품 제작과정이나 의도 등 관객 중심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원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밀레리얼 세대들이 문화소비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이 들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청년예술가들이 앞장서 야 한다. 청년예술가를 회원으로 적극 영입하고 예술제 프로그램의 일정 비율을 청년문화 프로그램으로 정해 지 원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이 상상하는 세상의 끝은 있다

이번 물왕예술제에서 기획의 변화가 이끌어 낸 것은 축제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해 장르별 특성에 최적화 된 대상과 공간을 찾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의 수준 이 높아지고 시민들과의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충분치 못한 예산과 홍보문제로 안 정적인 운영과 모객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협회별로 단 위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과정에서는 기획력의 격차가 발생해 장르간 융합과 축제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발이 걸려 넘어지기 전에는 발 앞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발이 뭔가에 걸려 휘청거리는 것은 생각 이 뭔가에 붙들려 동요하는 것이다. 이번 물왕예술제의 발목을 잡은 것은 파격이었다. 파격이 생각의 마중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생각을 붙잡을 마중물은 무엇일까? 익숙함과 인상적인 사건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술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도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보조금만으로 예술제를 운영할 경우 예술가들이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 작품 판매, 공연·전시 티켓 판매 등이 이루어지면 질적 수준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상상과 감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높아지는 반면에 예술가들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예술을 위협하는 시대지만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은 예술을 통해서 길러지는 만큼 물왕예술제를 통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경우 매우 건강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 있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같은 역할을 한다. 언제부터인지 사치가 되어버린 예술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서, 혼밥, 혼술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 공감과 소통, 나눔을 위해서라도 물왕예술제는 죽어서 박제될 것이 아니라 항상 시민들의 삶 속에 살아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것들이 교차, 융합하면서 창조와 혁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메디치효과 Medici Effect라고 하는데 이번 기획의 변화가 파격적이었듯이 다 음 물왕예술제는 메디치효과로 빅뱅 할 것을 기대한다.

 

 

 

이 글은 '예술시흥 2019 Vol.21'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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