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마을을 울리는 음악을 향한 길

작곡가 박경애 인터뷰

최분임 | 기사입력 2020/01/27 [11:47]

마음을, 마을을 울리는 음악을 향한 길

작곡가 박경애 인터뷰

최분임 | 입력 : 2020/01/27 [11:47]

 

박경애 인터뷰

 -마음을, 마을을 울리는 음악을 향한 길

 

가을이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시흥음악협회 사무국장이면서 아이가뮤직 작곡가, 크리아츠 앙상블 음악감독이면서 최근엔 이화여자대학원한국음악과(지휘 전공)에 입학한 학생, 더불어 누군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바쁜 작곡가 박경애(39)씨를 만났다. 그녀는 얼마 전 2019경기문화재단지원사업경기예술찾기사업에 선정된 개인 작곡발표회 합창콘서트 <마을을 울리다>를 성황리에 끝냈다. 그녀의 삶과 시흥의 자연을 담은 노래들로 꾸민 콘서트는 때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때로는 출렁이는 무늬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   박경애 작곡가  ©최영숙

 

 작곡발표회를 끝낸 소감을 묻자

큰 행운이었어요. 개인 작품발표회는 정말 쉽지 않아요. 돈도 많이 들고요. 게다가 전 작품도 많지 않고 나이도 어린데 무모하게 도전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기금 신청을 해서 다행히 기회가 됐지만 고민도 있었어요.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일까, 하는.”

라며 겸손해 했지만 그녀는 지난 2018년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최초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 <류 아리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작곡발표회였다. 가냘픈 외모와 겸손한 태도와는 달리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부에 품고 있는 어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에너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가 개인 작곡발표회였지만 그녀가 이렇게 빠른 시간에 승승장구하는 데는 알게 모르게 쌓아온 약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 '마을을 울리다' 공연 포스터

 

  2008년 시흥시 음악협회에 가입, 2010년부터 시흥시 레이디코러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뮤지컬 숲의 노래편곡을 시작으로 2011년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가족클래식음악회 엄마에게 주고 싶어요공연 중 꿈의 씨앗이라는 실내악곡을 초연했으며시흥시 음악협회가 주최한 회원음악제에 만추’ ‘별이 빛나는 밤에’ ‘단오풍정’ 등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해 왔다. 2013년에는 아이가 합창편곡집’ ‘아이가 뮤직박스’ ‘피아노온 컨버스 2018별이 빛나는 밤에’ 2019노래의 날개 위에등의 앨범에 곡을 실었으며 여러 음악회와 연극, 물왕예술제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     © '류 아리아' 공연 포스터

 

 또한 미래의 음악가들을 위한 방향 제시 및 밑거름 역할을 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송내초등학교 밴드부 편곡 및 지도를 시작으로 석천중학교, 상일고등학교, 노래패 예쁜아이들, 연세엔에스음악원, 국립국악원 푸르미르 합창단 등에서 편곡 지도는 물론 보컬트레이너로 이력을 쌓았다. 그녀의 이력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숨 가쁘게 지난 세월을 달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2년에는 그런 그녀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경기음악상 공로상>이 주어졌으며 2018년에는 <경기예총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어떻게 이 많은 역할을 하며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있느냐고 묻자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시기를 놓쳤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요. 지금 돌아보니 형편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는데도 대학원을 나온다고 해서 지금보다 나을까, 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학비가 비싸기도 했고요. 대학은 서울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작곡)를 나왔어요. 사실 음대 졸업한 제 친구들과 비슷하게 별다른 게 없었어요. 작곡을 전공했다고 해서 금세 작곡가가 되는 것도 아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학원에 취직을 해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강사 생활을 오래 했죠. 그 시절 강사 생활이 재미가 없고 해서 직접 만든 액세서리 장사도 했었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파트마다 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손으로 만드는, 창조적인 작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액세서리와 뜨개질, 피아노와 작곡 등 모두 손에서 이뤄지잖아요. 그러다 동요 작곡가이자 제 인생의 멘토인 정보형 선생님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때 선생님이 동요 한번 써 봐라, 권유하기도 했고 일을 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시 작곡을 하게 됐죠.”

  

▲   '마을을 울리다' 공연 장면 

 

 지난 시간을 힘들었으나 절망하지 않고 걸어온 날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녀에게서 스스로 삶을 개척한 이들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읽었다. 한국 사회에서 더구나 지역에서 예술을 하는 예술가의 처우는 열악한 정도를 넘어서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그녀가 오늘 이 자리 신진 예술가, 라는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로 마주앉기까지 절망보다 희망 쪽으로 걸은 그 고단한 발걸음들이 지금의 자리에 바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그녀는 언제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꾸었을까, 궁금해졌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아무래도 피아노 반주자를 키울 목적으로 절 가르치신 거라고 보면 될 거예요. 제대로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한테 개인 레슨을 1년 정도 받았어요. 그 후엔 경제가 어려우니까 학원을 다녔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됐어요. 작곡은 대학교 때부터 했지만 그땐 대부분 습작이었어요. 대학4학년 때 대구현대음악제에 출품한 작품이 첫 작품이었어요. 대학원 한국음악과를 다시 들어가게 된 계기는 음악협회 사무국장을 맡은 2017년부터 국악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입학하게 됐어요. 시흥시립전통예술단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죠.”

  

▲    '마을을 울리다'  공연 시작 전 인사말 하는 박경애 작곡가  

 

 그녀는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교파랑 다른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잠깐 방황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좋은 스승들을 만나서 잘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음악은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이며 사실적으로 접하게 되는 시각과 달리 청각에 심미적 자극을 주는 장르다.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음악은 가사와 곡이 서로를 받쳐주며 함께 호흡해야 한다. 멜로디와 노랫말이 잘 어우러져 관객들의 심경을 대변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은 없을 것이기에 작곡을 할 때 어떤 영감이나 따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냐고 묻자

제가 작곡한 것들은 노래곡이 많고 기악곡은 별로 없어요. 가곡이나 동요, 음악극 인형극 등 극적이거나 스토리적인 걸 좋아해요. 표제 음악이라고 시나 노랫말 등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소 이런 게 있는, 곡의 내용을 암시하는 표제가 붙은 것에 영감을 얻고 그런 음악을 좋아해요.”

이런 일련의 작업에 가족들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묻자 남편은 예술이랑 거리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좀 무뚝뚝하지만 분야가 다른 만큼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믿어준다고 했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감성적인 부분이 많은 분야니까 음악에 관해서라면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  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경애 작곡가    ©최영숙

 

  어린 딸들은 예전에는 막연하게 언니 오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알고 있다가 요즘엔 작곡가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엄마가 작곡한 동요들을 외워서 곧잘 부른다고 했다. 그럼에도 육아에 대한 부담감은 그녀가 활동하는데 가장 큰 딜레마인 듯했다. 우리 사회 구조의 한계, 사회 안전망이 없는 예술가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웠다. 워낙 바쁘다 보니 친정 부모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는다며 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이나 바라는 점이 있냐고 묻자

제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전문적이고, 전문가이고 싶어요. 음악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많이 배웠어요. 여러 공연에서 기획 연출도 하게 되다 보니 제가 부족한 걸 느껴서, 역량 강화를 위해, 지휘를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이고요. 진정한 음악감독, 거기에 걸맞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획능력, 음악, 지휘, 행정 등 그 분야를 잘 알고 싶고 또한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능력 있는 누군가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역시 함희경 전 회장님, 양시내 음악협회 회장님, 최찬희 시흥예총회장님이 추천을 해 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시흥에도 젊고 뛰어난, 드러나지 않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전 생각해요. 발굴해내지 못하고 뒤를 받쳐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같이 상생하는, 서로 도우면서 크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누군가를 추천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당차고 건강하며 독립적인 소신을 밝히는 그녀에게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가들의 처지와 또 예술을 펼칠 수 있는 공간 부족은 안타깝고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  '마을을 울리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박경애 작곡가


행복하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일이 있으니까요. 이제 조금씩 탄력을 받았다고 할까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려면 바퀴를 굴려야 하잖아요. 근데 사실 그 바퀴를 굴리는 제 스스로를 즐기진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양악을 전공한 사람인데 한국음악을 다시 공부하려니 스스로 늦었다는 것 때문에 조급하기도 해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야기도 하고 국악을 계속해 온 사람들에 비해서 전 완전히 새로운 분야니까 두렵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앞으론 좀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

행복은 어떤 성취와 상관없이 그녀 말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며 마음의 곳간을 채우는 일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관객들의 귀를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충실히 할, 음악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그녀의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알게 모르게 시간과 공간, 영혼의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인간의 삶과 자연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녀의 음악을, 작품을, 우리가 응원하고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은 '예술시흥 2019 Vol.21'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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