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에서 5년의 세월까지… 사진으로 되돌아본 천안함 5주기 추모 현장대전현충원 308묘역에 가득 찬 봄볕과 눈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는 것뿐"
2010년 4월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용사 46명의 안장식이 거행되었다. 안장식이 열리기 전, 차갑게 열려 있던 빈 무덤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었다.
자식을 차가운 땅에 묻어야 하는 부모, 사랑하는 남편을 황망히 떠나보내며 울부짖는 아내, 아빠의 영원한 부재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어린 자녀들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미어지는 고통이었다.
2011년 3월 26일, 1주기를 맞아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찾은 수많은 참배객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추모했다.
2012년 천안함 2주기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비롯한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묘역을 참배하며 둘러보았다.
2013년 천안함 3주기에 참석한 한 유가족이 묘역에서 울음을 떠트린 어린아이를 따뜻하게 달래주고 있다.
2014년 천안함 4주기,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눈물은 아무리 서러운 세월이 흘러도 결코 멈출 수 없는 법이었다.
지난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해봄이는 “아빠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도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는 돌아가셨지만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유명한 원사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해요. 그럼 친구들은 안 좋겠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멋지다고 부러워하기도 해요. 만화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 아빠와 다정하게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문득 아빠 생각이 많이 나요”라고 속내를 털어놓았었다.
2015년 3월 26일, 어느덧 일 년이 더 흘러 훌쩍 자란 해봄이는 언니와 함께 아버지의 묘비 앞에 가만히 걸터앉았다. 언니 김해나 양은 “인터넷상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피격 당시 천안함의 전투정보관이었고 현재는 진해기지사령부 정훈과장으로 복무 중인 정다운 대위는 “사랑하는 전우들과 함께 치열하게 바다를 누볐던 그날들이 너무나도 그립다.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먼저 간 전우들의 몫까지 우리 바다와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굳은 결의를 다졌다.
중학교 동창으로 15년을 동고동락한 절친한 친구인 이종오(27) 중위와 맹주원(26) 씨가 친구 강태민 용사의 무덤 앞에 서서 정성스레 술을 따랐다. 이종오 중위는 “태민이는 굉장히 활달하고 늘 친구들을 잘 챙기는 의리파였다. 친구들에게 경조사가 생기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와 밤을 새워주던 든든한 녀석이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에 이 비보를 접했다”며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조국 수호에 더 열심히 매진해야겠다는 각오가 선다. 우리 전우와 친구를 이렇게 만든 적대 세력이 다시금 도발해 온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숙히 말했다.
친구 맹주원 씨 또한 “일부 전우들의 부모님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하셨기에 그 비통함이 깊은 한으로 남아 계신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매년 묘역도 찾고 부모님들도 꾸준히 찾아뵙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이 희생을 너무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말로 이들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어떤 참배객은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듯, 오래도록 무덤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3월 26일, 대전현충원은 봄볕이 가득했다. 이 계절에 젊은 청춘을 잃어버린 46명의 젊은이들을 기억했다. 천안함 5주기를 기록하면서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을 보았다. 부모, 아내, 자식들의 그 하염없는 눈물을 만났다. 어찌 살아 있는 동안 그 슬픔을 잊겠는가 싶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젊은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붉은꽃을 손에 쥔 채 누군가의 무덤을 찾아 대전현충원 묘역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한 여인을 보았다. 다시 한번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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