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긍렬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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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의 민족교육자라 일컫는 최긍렬 선생 기념비 제막식이 지난 2일 11시 시흥시 월곶동 섬산 최긍렬 선생 묘소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김윤식 시흥시장, 이귀훈 시흥시의회 의장, 정원철 시흥문화원장, 이형수 최긍렬선생선양사업회장, 이하원 교육장, 최긍렬 선생의 아들 최종욱, 군자농협장 안병준, 달월신협 윤춘열 이사장, 군자중학교 이기석 교장을 비롯한 5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 ▲ 최긍렬 선생 아들 최종옥 씨 아버님 무덤에 잔을 올리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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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긍렬 선생은 1901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63번지에서 교육자인 아버지 최병문 씨와 어머니 염 씨 사이에 1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제일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3.1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일제하의 암울한 시기에 구국일념으로 농촌계몽과 국민 후학 교육에 뜻을 세우고 1921년 군자면에 최초로 교육기관인 군자학원을 설립하였다. 1950년 2월 군자중학교의 모태인 군자고등공민학교를 월곶동에 개설한 후 이듬해 장현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952년 시흥시 거모동 산58번지에 선생님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4개의 교실로 건립했다. 1954년 모든 학생들에게 면학의 기회를 주고자 정부에 기증하여 시흥시 최초로 공립 군자중학교로 인증 받았다. 1989년 4월 20일 제자들과 지역민들이 선생의 거룩한 애국애민애교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군자중학교 교정에 공적비를 세웠다.
| ▲ 정원철 시흥문화원장 인사말을 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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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1년 6월에 최긍렬 선생을 시흥의 인물로 선정한 후 오늘 최긍렬 선생 기념비 제막식에 이르게 됐다"라며 "최긍렬 선생 장학금을 만들고 묘소 정비 빛 기념비 건립에 힘쓴 제자들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형수 최긍렬선생선양사업회장은 “최긍렬 선생이 1950년에 고등공민학교를 개설하고 그해 6월 전쟁이 터져서 새재로 이전했다가 다시 사재를 털어서 군자중학교 현 위치로 부지를 장만하고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흙을 날랐다. 지붕은 미군이 먹다 남은 깡통으로 올렸다. 그분의 신념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지식이 없으면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1989년 군자중학교에 공로비를 만들었다. 섬산에 공원 조성 계획이 세워지면서 묘를 이장해야 했지만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의 협조로 최긍렬 선생의 묘를 원래의 자리에서 모실 수 있게 됐다. 이곳에 공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라며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시흥 100년을 기억하고 최긍렬 선생 선양사업을 하는 것은 시민들과 시가 진작했어야 하는데 늦었다"라며 "누구도 챙기지 않았던 일을 이형수 어르신, 선양추진위원회, 군자중학교 선후배들이 힘을 합쳐 정비 사업까지 해줘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최긍렬 선생 유족대표인 아들 최종욱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0 여년이 넘었는데 시흥의 여러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선양사업 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님을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 ▲ 최긍렬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하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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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긍렬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했다.
시흥문화원 이병권 씨는 “최긍렬 선생은 자신이 가꾼 학교를 국가에 기부함으로써 사립학교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마다하시고 정작 당신은 학교를 떠나셨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이시다”라고 했다.
최긍렬 선생의 정신이 살아있는 군자중학교의 전신 군자 고등공민학교는 1953년 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미약하나 위대한 시작이었다. 군자중학교는 2013년 2월 14일 59회 졸업생 327명을 배출했다. 총 졸업생은 17,586명이 되었다.
이곳에서 배출된 졸업생들은 시민, 국회의원,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시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 섬산으로 오르다 (캠프장이 들어설 곳)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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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긍렬 선생의 묘역 아래에는 캠프장이 들어 설 것이다. 나라의 힘을 기르려면 교육밖에 없다며 조국의 동량들을 길어냈던 최긍렬 선생은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할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 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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