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기계도 뜨거워진 열을 식혀야 했다. 가파른 능선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작업자 주금임(65) 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나이가 60대를 훌쩍 넘겼다"고 전했다. "젊은 40대 사람들은 돈을 준다고 해도 하루이틀 일하고는 고되다며 못 견디고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고단하고 위험한 노동의 최전선을 정작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묵묵히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벌초 작업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노동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기계로 풀을 다 벴다고 해서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경주 사투리로 '까꾸리(갈퀴)'라 부르는 연장을 들고, 베어진 풀더미들을 능선 아래로 다시 일일이 긁어내려야만 했다.
건물 2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봉분 중에서도 유독 경사가 급하고 가파른 구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능선 꼭대기에서부터 긁어모아 내린 풀더미들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갈퀴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덩어리가 되었다. 작업하던 아주머니 한 분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몇 번이고 미끄럼을 타듯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면서도 끝내 풀더미를 가슴으로 안고 끌어내렸다.
푸른 능선 위에 비로소 아름다운 '사람 꽃'이 피어난 듯했다. 1년에 보통 세 번씩 이렇게 대대적인 벌초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분들의 보이지 않는 거칠어진 손길 덕분에, 경주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늘 말쑥하고 정갈하게 가꿔진 천년의 능선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말끔하게 정리된 신라 17대 내물왕릉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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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물왕릉이 말끔하게 새 옷을 입었다. 예전에는 깎아낸 풀들을 일일이 수거해 처분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인근 목장을 운영하는 이들이 기계를 가져와 둘둘 말아간 뒤 가축들의 건초 사료로 요긴하게 쓴다고 한다.
벌초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지 여쭈었다. 권수선(61) 씨는 "예초기 기계 작업을 셋이서 손발을 맞춰 하는데, 한 명이라도 삐끗해서 잘못되면 셋이 한꺼번에 다치니까 그게 가장 신경 쓰이고 조심스럽다. 그에 비하면 풀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일은 나 혼자 힘쓰면 되는 일이니까 차라리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이필태(65) 씨는 세상을 향해 묵직한 소신을 건넸다. "젊은 사람들은 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제. 일할 때나 살아가면서 내가 조금 손해 본다 생각하고 살면 주변 사람 다 좋아하니더. 사람이 너무 맹글맹글(반질반질)하게 제 실속만 차리면 누가 좋아하겠는교."
김환이(64) 씨는 "집에서 무료하게 노는 것보다 여기 나오면 몸은 비록 힘들어도 마음 맞는 친구들도 만나고, 내 힘으로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참 좋다. 일 일이라기보다 봉사활동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번 돈으로 베트남 어린이에 매달 만 원씩 후원도 보낸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왕릉 관리를 담당하는 손수태 씨에게 일당과 근무 여건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하루 일당이 여성분은 3만 7천 원, 남성분은 4만 6천 원 선이다. 이분들이 순수하게 돈벌이로만 생각했다면 이 고된 일을 하러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덧붙여 "주 5일 근무제로 일하며, 벌초 작업뿐만 아니라 3월부터 11월까지 경주 전역을 수놓는 유채꽃, 야생화, 연꽃단지, 코스모스 길까지 모든 조경 관리를 이분들이 도맡아 하신다. 그런데 자식처럼 정성껏 가꾼 꽃들을 무참히 짓밟고 꺾어가는 일부 관광객들을 볼 때면 가슴이 너무 쓰리다"고 토로했다.
이분들이 감당하는 노동의 높은 난이도와 엄청난 작업량에 비해보면, 사회적인 처우나 대접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작업을 마친 분들의 다리를 보니 고된 노동의 흔적이 역력했다. 가파른 왕릉 비탈을 온종일 오르내리느라 무리가 간 발목마다 하얀 붕대를 꽁꽁 감고, 그 위에 다시 두터운 아대를 덧대고 계셨다. 우리가 경주에 갈 때마다 마주했던 편안하고 정돈된 고분군들, 그리고 사계절 아름답게 피어나던 꽃길들은 전부 이분들이 발목의 통증을 견뎌내며 완성한 위대한 작품이었다.
나 혼자 힘들어 다치는 것은 차라리 괜찮다는 분, 세상살이에서 내가 조금 손해 보고 사는 게 속 편하다는 분, 고된 일당을 쪼개어 먼 이국땅의 아이에게 후원을 보내는 분까지. 오늘 신라의 왕릉 위에서 참으로 귀하고 큰 사람들을 만났다. 경주라는 도시를 찾을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던 이유는, 어쩌면 이 거대한 능을 닮은 보살 같은 어르신들이 도시 곳곳을 묵묵히 보살피고 계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라 17대 내물왕릉의 가파른 비탈 위에서 만난 분들에게서 인생의 참된 지혜를 한 수 배웠다. 한 시대를 정직하게 살아온 큰 어른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고귀하다. 이분들은 복잡하고 얽힌 인생의 이치를 그저 툭 던지는 투박한 한마디 속에 너무나 명쾌하고 단순하게 담아내신다.
아름다운 세상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보다, 사람의 진심 어린 내면을 마주하는 것만큼 더 귀한 풍경은 없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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