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함께한 하룻밤… 거센 바람 속 언니와 마주한 정동진의 붉은 일출

최영숙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5/03/16 [23:40]

50년 만에 함께한 하룻밤… 거센 바람 속 언니와 마주한 정동진의 붉은 일출

최영숙 발길 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5/03/16 [23:40]
▲ 2015년 3월 4일 정동진 일출     ⓒ 최영숙

 

“정동진에서 일출을 한 번도 못 봤어.”

 

함께 담소를 나누다 언니가 넌지시 말했다. 생각해보니 50년 가까이 한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봐 왔건만,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둘이서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마음을 먹은 김에 서둘러 시간을 내어, 3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정동진으로 향했다.

 

▲ 고현정 소나무 앞에서 중국 관광객이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담았다.     ⓒ 최영숙

 

'정동진'이라는 지명이 우리 귀에 이토록 친숙해진 것은 과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배우 고현정이 서 있던 정동진역과 소나무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정동진역 철길 가에서는 한 중국인 관광객이 활기찬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젊은 여행객들의 싱그러운 활발함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만들었다.

 

▲ 정동진역     ⓒ 최영숙


오후 3시에 출발하는 기차가 정동진역 플랫폼에서 승객들을 대기하고 있었다. 저 기차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애틋한 이야기들을 싣고 떠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 정동진역에 붙어 있는 타일 그림들     ⓒ 최영숙

 

정동진역 벽면에는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소망과 추억을 담은 글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명 '고현정 소나무'라 불리는 소나무 옆에는 정동진의 정취를 노래한 시비(詩碑)가 묵묵히 서 있었다.

정동진

 

- 신봉승

 

벗이여, 바른 동쪽 정동진으로 떠오르는 저 우람한 아침 해를 보았는가.

큰 발원에서 작은 소망에 이르는 우리들 모든 번뇌를 씻어내는 저 불타는 태초의 햇살과 마주서는 기쁨을 아는가.

벗이여 밝은 나루 정동진으로 밀려오는 저 푸른 파도가 억겁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가.

처연한 몸짓 염원하는 몸부림을 마주서서 바라보는 이 환희가 우리 사는 보람임을 벗이여 정녕 아는가.

 

▲ 정동진박물관과  정동진 밀레니엄 모래시계     ⓒ 최영숙

 

정동진의 명물인 '밀레니엄 모래시계'는 내부에 담긴 40톤의 모래가 아래로 모두 떨어지는 데 꼬박 1년이 걸린다고 한다. 모래시계의 둥근 유리면에는 전통적인 시간 단위인 12간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만 현재는 가동되지 않고 있었는데, 연간 6,000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운영비가 들기 때문이라는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 최영숙

 

바다 위 배 모양으로 유명한 썬크루즈 리조트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 숙소에서 바라본 정동진 해변 야경     ⓒ 최영숙

 

창문 너머로 어두워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까만 어둠 속으로 정동진 해변의 곡선과 마을의 야경 불빛이 은은하게 번졌다. 밖의 풍경은 한없이 고요해 보였지만, 창문을 때리는 바람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 매서웠다. 쉽게 잠들기 힘든 밤이었다. 내가 지금 가슴 탁 트이는 강원도 동해 바닷가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시각이 아닌 우렁찬 청각으로 먼저 고스란히 전해졌다.

 

▲ 숙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 최영숙

 

다음날 아침, 숙소 전망대에 올라 새벽 6시 40분경부터 숨을 죽이고 일출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었어도 바람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여전히 강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고 밖으로 나서기가 힘들 정도의 강풍이었다.

 

▲ 해뜨기 전     ⓒ 최영숙

 

일렁이는 거친 파도 너머, 바다의 저 아득한 끝자락에서부터 태양이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온전히 마주하기 직전,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 일출     ⓒ 최영숙

 

새벽 6시 50분경, 마침내 해가 수평선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우리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매일 어김없이 일어나는 자연의 섭리이건만, 평생을 살며 이렇게 오롯이 해를 보겠다고 작정하고 기다린 적이 참 드물었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일출을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곤 그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그리고 맑은 하늘을 허락해 주는 온전한 날씨뿐이었다.

 

다행히 바람은 무척 거세었지만 구름이 깨끗하게 걷혀 준 덕분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완벽한 일출을 마주할 수 있었다. 평생의 바쁨을 잠시 내려놓고 언니와 단둘이 떠났던 정동진 일출 여행은, 우리 자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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