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에서 꽃향기를 맡다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11/02/01 [07:47]

동화사에서 꽃향기를 맡다

-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11/02/01 [07:47]

 

▲ 동화사 꽃살문     © 최영숙

  
동화사 유래에 의하면 심지대사가 832년(신라흥덕왕 7년) 사찰을 중창할 때  한겨울에도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피웠다하여 동화사(桐華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동화사로 가는 노부부     © 최영숙



  2011년 1월 9일 저녁햇살이 저물어 갈 무렵 동화사를 들렀다. 동화사로 오르는 길에 노부부를 만났다. 

  동화사로 오르는 길에  '동사심승'을 적은 작은 시비가 있었다.

  대구에서 591년 전에 태어났던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에 정통하였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여 《경국대전》, 《동국통감》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서에는 《동인시화》, 《동문선》이 있다.  관향이 대구(大丘)인 그가  동화사로 스님을 찾아가는 '동사심승'을 대구10경중 제 7경으로 뽑았다.
 


▲ 동화사 들어가는 길에 있는 서거정의 동사심승이 적힌 시비     © 최영숙

 
桐寺尋僧 동사심승

                               -서거정-

遠上招提石徑層 원상초제석경층
靑縢白襪又烏藤 청등백말우오등
此時有興無人識 차시유흥무인식
興在靑山不在僧 흥재청산부재승


동화사 스님 찾아가기

층층이 돌길 더듬어 절 찾아가는 걸음
푸른 행전, 흰 버선에 검은 등막대 짚었거니
내 흥을 모른들 어떠리 흥은 청산에 있다네

-노산 이은상 譯  

  서거정의 한시 속의 스님은 이제 없다. 하지만  500년 후의 또 다른 사람들이 동화사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한시를 지을 수 없었던 사람은 사진을 담았다.

▲ 동화사 계곡     © 최영숙


  계곡은 얼어 있었다. 겨울이 깊었다.

 

▲ 돌탑을 쌓다     © 최영숙


  얼어붙은 냇가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쌓은 탑들이 있었다. 

 

▲ 인악대사 느티나무     © 최영숙


  동화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500년 된 인악대사의 느티나무가 있었다.
 

▲ 인악대사 나무 속     © 최영숙

 
인악나무 하단의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고사된 나무 같았다. 그 모습이 괴이했다. 나뭇가지가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 인악대사 나무     © 최영숙

 
조금 위로 올라가서보면 나무의 위쪽은 여느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침 뚝 떼고 서 있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놀라웠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변해지는 나무가 새롭게 보였다.
 

▲ 동화사의 사천왕상     © 최영숙

 
사천왕문으로 들어섰다. 사천왕상 앞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기원하는 글귀들을 적은 리본들이 묶여 있었다.
 
  무시무시한 표정의 사천왕상이 오히려 친근하고 다정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일 듯했다.
 
  소원지에 적힌 소망들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천왕상이 저 소원들을 들어주려고 바쁘겠다는 생각을 하니 빙긋  웃음이 나왔다.



▲ 동화사 봉서루     ©최영숙

 
사천왕문을 지나자 동화사를 대표하는 봉서루(鳳棲樓)가 눈앞에 다가섰다.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봉황을 상징하는 누각으로  동화사의 절 이름과 짝을 이룬다. 커다란 자연석은 봉황의 꼬리 부분이며, 둥근 세 개의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했다. 봉황의 알을 쓰다듬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지나면서 봉황의 알을 쓰다듬고 갔다.
 


▲ 대웅전     © 최영숙

 
봉서루를 지나면 보물 제 1563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보였다. 대웅전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법당이다. 대웅전은 조선 영조 대에 지어졌다.
 

▲ 대웅전 안의 모습     © 최영숙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었다. 전통 깊은 사찰의 고풍스러움과 격조가 남달랐다.
 


▲ 동화사 대웅전의 꽃살문     © 최영숙

 
어디선가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듯했다.
  동화사 대웅전 문에서는 꽃들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 솟을꽃살문 피어나다     © 최영숙


   꽃살문을 만드는 나무는 백 년에서 삼백 년 가량 된 춘양목을 고른다. 춘양목은 소나무다. 춘양목은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부드러우며 붉은색이다. 또 오래가도 썩지 않고 뒤틀리지 않는다. 춘양목 중에서도 북쪽을 보고 자란 나무를 고른다. 나이테가 촘촘하기 때문에 비바람을 맞아도 일정한 형태가 유지되어 문틀과 문살을 만드는데 적절하다. 잘 말린 나무는 사 년째 되는 해에 창고에 들였다가 꽃살문을 만든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된 춘양목으로 만들어진 꽃살문들이 동화사의 대웅전 문에서 다소곳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 동화사의 빗국화꽃살문     © 최영숙

 

▲ 동화사 빗국화꽃살문     ©최영숙
 
 

  빗국화꽃살문이 겨울에 피어나고 있었다.

 

▲ 빗모란연꽃살문     ©최영숙
 
 
빗모란연꽃살문도 살포시 피어나고 있었다.
 
▲ 대웅전 안에서 바라본 창호지에 비춘 꽃그림자     ©최영숙


 
 
 
 
 
 
  
 
 
 
 
 
 
 
 
 
 

 
 
 

 
 
  
 
 
 
 
 
 
 
 
 
 
 
 
 
 
 
 
 
 
 
대웅전 안에서 보았다. 창호지에 비춰진 꽃그림자를,  그림자로 비춰진 꽃살문은 은은한 아름다움을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동화사 대웅전의 꽃살문을 보면서 선조들의 격조있는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 조사전에 들다     ©최영숙

 

  18세기에 지어진 대웅전 좌측 후원에 있는 조사전(祖師殿)으로 왔다. 조사전(祖師殿)은 동화사에 주석했던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모셔둔 곳이다.
 


▲ 조사전 안의 진영들     © 최영숙


  
조사전에는 창건주로 알려진 극달 스님과 보조 스님, 사명 스님, 서장, 두여, 의첨, 지화, 총륜 그리고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다.


 

▲ 조사전의 창호지 문     © 최영숙
 
 

  빛이 스미는 문이 정갈해보였다.
 
 

▲ 조사전과 고양이     © 최영숙
 
 

  조사전은 당우는 작지만 300여 년 전의 건물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이 있었다. 조사전 마루 아래에는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었다. 고즈넉한 조사당과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 동화사 산신각     © 최영숙
 
 

  대웅전 뒤쪽에 산신각이 있었다.

 

▲ 동화사 산신각     © 최영숙
 
 

  산신각은 산신을 모셔 놓은 당우로 한국 불교 안에 토착 신앙을 수용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산신각에는 산신이 호랑이와 동자를 거느리고 있는 그림이 있는 탱화가 걸려 있었다.
 
 

▲ 동화사의 심지대사 오동나무     © 최영숙
 
 

  대웅전 서편 뒤에는 심지대사의 오동나무가 있다.
 
  “심지대사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의 아들로서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불교에 정진하였으며, 팔공산에 있다가 영심(永深)스님이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불골간자를 전해 받아 속리산에서 법회를 연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찾아가 영심스님에게 간자(簡子)를 받아왔다.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부르다가 흥덕왕 7년 (832년)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하여 동화사(桐華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수령이 200년 정도된 이 오동나무는 동화사 중창과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파계사등을 창건하여 팔공산을 불국토(佛國土)로 만들고자 한 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심지대사(心地大師)나무”라 이름 지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수령 200년의 이 오동나무는 신라시대의 나무는 아니지만 그 먼 후손이 아닐까 싶었다. 오동나무 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겠다고 생각했다. 종소리를 울리듯이 툭툭 떨어지는 오동나무 꽃을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 동화사 범종, 목어, 운판, 법고의 모습     © 최영숙
 
 

  범종과 법고, 운판과 목어에게도 겨울 햇살이 스며들었다.


 

▲ 동화사 대웅전과 석탑     © 최영숙
 
 

  석탑과 대웅전의 모습은 정적 속에 있었다.


 

▲ 동화사 당간지주     © 최영숙
 
 

  통일신라 말기에 만든  보물 제 254호의 당간지주가 있었다. 

 

▲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모습     © 최영숙
 
 

  동화사를 내려오면서 1990년 10월 26일 불사 착공해서 1992년 11월 27일 점안 대법회를 한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났다.

석조대불 규모
 
높이 : 17m, 최대둘레 : 16.5m, 좌대높이 : 13m, 지하암반에서 참배단까지 : 3m 총 33m

석조대불 원석 규모 : 8등분으로 조성되며 약 300톤 원석으로 조각됨

불상원석 : 2,000톤(전북 익산군 황동석)

좌대원석 : 3,000톤. 총 5,000톤

  원석을 300km 옮겨서 조성된 석불 중 세계 최대임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모습     © 최영숙
 
 

   세계 최대의 석불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시선이 불편했다. 웅장한 모습에 깊이 감명 받기보다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시대에 맞게 석불도 변한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순전히 개인차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불이 이제  10년 남짓 지나서 너무 깔끔한 모습이 차가워 보였다.  세월이 흐르면 좀 더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 년을 넘게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던 불상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 동화사 대웅전 뒤의 모습     © 최영숙
 
 

  축적된 기억들은 전통 깊은 사찰에서 느꼈던 적막함 속의 충만함에 길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동화사 대웅전     © 최영숙
 
 

  오동나무와 인연이 깊은  동화사는 오동나무 꽃과 같이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 동화사 꽃창살     © 최영숙
 
 

  날씨는 추웠지만 동화사에서 춘양목으로 만든 꽃살창들을 바라보면서 눈과 마음이 한없는 호사를 한 날이었다.
 
   
  그러함에도 동화사는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웠던 사찰로 기억 될 것이다.  동화사 대웅전 어간에 있는 꽃살문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꽃창살을 보고 있는 지금도
은은한 꽃향기가 배어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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