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시험 때가 되면 꼭 방송에 꼭 나오는 장면이 있다. 갓바위에서 시험을 치루는 자녀가 최고 점수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물 제431호인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 위치한 불교 석상이다. 이 불상은 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갓바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1월 8일 대구를 갔다. 결혼해서 20년 넘게 대구에 사는 친구는 경상도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친구에게 저녁을 얻어 먹고 불편하게 할 듯하여 미리 정한 숙소로 돌아가는데 친구는 서운해 하면서 말했다. "집에서 자고 가야하는데, 와 숙소를 잡았노. 그라고 마, 여기까지 왔으면 대구 팔공산 갓바위는 꼭 보고 가야 할 꺼 아이가, 갓바위 부처님은 꼭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 안카나, 가는 길에 꼭 댕겨 가래이." 신신당부를 한다.
토마토 하우스 농사를 짓는 친구네는 지금이 가장 바쁜 농사철이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1월 9일 갓바위를 올랐다. 주일이어서 갓바위를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위산이어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힘이 들었다.
숨이 턱에 찼을 때 쉼터가 보였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한결 수월해졌다.
하산길에 만난 아저씨는 팔공산의 작은 새들에게 모이를 주었다.
새가 재깔재깔 소리를 내고 날아들고 아저씨는 먹이를 손에 얹어주면 새들이 휙 날아와서 먹고 갔다. 얼마나 빠른지 카메라를 들자마자 이미 사라졌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잘 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통행이 적을 때는 더 자주 새들이 날아와서 먹이를 먹고 간다."고 하셨다.
한참을 기다려도 새는 날아오지 않았다.
다음 일정이 있었기에 아쉽지만 그냥 내려와야 했다. 팔공산에서 장사를 하시고 생활하시면서 이곳의 작은 새들에게 먹이를 주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나눠주는 삶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소원성취, 재수부, 합격부, 질병퇴지, 부부화합 등의 여러가지 이름을 붙인 부적들을 파는 곳이 있었다.
중간 중간 볼 것이 있어서 인지 올라오다 보니 어느덧 갓바위가 보였다.
갓바위 앞에는 공양미와 초등 정성껏 준비한 제물들이 놓여 있었다.
갓바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자비로운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다소 올라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 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갓바위 불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스스로 어렵고 경건해졌다. 무뚝뚝한 표정의 모습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내 속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부드러운 미소와는 조금 멀어 보였다. 그렇지만 왠지, 아버지의 말없음 속의 깊은 속정 같은 것이 느껴지는 불상이었다.
팔공산 갓바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갓바위가 바라보는 방향이 경남, 울산, 부산 지역이어서 오래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교통의 발달로 전국의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등산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초를 켜고 향불을 붙이고 기원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을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소원하는 기도를 정성을 다하여 드리고 있었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간절함이 묻어났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갓바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눈 덮인 산하는 말이 없었다. 멀리 사찰이 보이고 산등성이로 나 있는 길들이 사람이 다니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굽이진 능선들이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의 기원을 듣고 있을 갓바위 부처님은 무심한 듯, 유심한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갓바위의 모습을 정면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소망을 담은 등과 설치물들로 인해서 정작 갓바위의 모습은 가려졌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답답했다.
이 시설물들이 없이 정면에서 갓바위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면 더욱 웅장하고 경건하게 다가섰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갓바위 하단부 쪽에 이렇게 촛불들을 놓는 것이 그나마 갓바위 부처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천하의 갓바위 부처님인데 앞에 큰 등을 달지 않아도 큰 초를 켜지 않아도 이미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눈에 크게 보이게 하고 싶은, 어찌 보면 이 또한 갓바위 부처님 앞을 꾸미는 또 다른 정성일 수도 있지만 정작 바라보고 싶은 갓바위 부처님의 목선을 가로 지르는 선들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옆선에서 바라본 갓바위 부처님의 모습은 인자했다. 강인해 보이는 턱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듯했다.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온화한 모습이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산하는 길의 햇살은 더욱 깊이 들어섰다.
가족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각자의 소원을 담고 정성스럽게 탑을 쌓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위풍당당한 갓바위 부처님의 모습을 만난 날이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어 "갓바위 부처님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모습에 잔잔하게 감동을 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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