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어르신이 40년 만에 빚 갚은 아름다운 마무리

여관비 6만원 떼 먹은 도망자 신세

김규성 | 기사입력 2014/01/12 [23:45]

팔순 어르신이 40년 만에 빚 갚은 아름다운 마무리

여관비 6만원 떼 먹은 도망자 신세

김규성 | 입력 : 2014/01/12 [23:45]
여관비 6만원 떼먹은 도망자 신세
 
지난해 10월 어느날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손자인듯한 젊은이의 부축을 받으며 충남 논산시 반월동에 있는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환으로 간신이 몸을 지탱할 정도로 보였다. 경기도 시흥에 거주한다는 82세의 이병우(가명) 어르신은 근무자 송 경사의 손을 잡고 애원하듯 호소하고 있었다.
 
"내가 40년 전 빚을 지고 살았다.. 그분을 찾아 꼭 빚을 갚아야 한다. 빚을 갚지 않으면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꼭 찾아야 한다."
이 어르신은 40여 년 전 논산의 한 여관에서 하숙하며 조그만 공장을 운영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공장에 불이 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고, 이 어르신은 당시 밀린 여관비 2개월치 6만원을 내지 못하고 여관을 빠져나와 빈털터리 도망자가 되고 만다.
 
돈을 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던 어르신은 여관비를 갚으려고 40년만에 다시 논산을 찾았지만 이미 여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동사무소도 가봤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여관을 알지 못했다.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논산지구대를 찾은 것이다.
 

1주일 만에 그 손자 찾아 전달한 양심
 
그러나 어르신이 기억하는 것은 당시 여관 인근에 극장이 있었다는 것과 여관 주인의 손자가 초등학생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여관 주인의 이름조차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송 경사는 난감했지만, 이 어르신이 폐암에 걸려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40년전 여관비라는 말을 듣고 당시 여관 주인을 찾아 나섰다. 마을 이장들을 만나 어르신의 사연을 얘기했지만 여관 주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송 경사는 여관 주인 찾기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꼭 찾아달라는 어르신의 모습이 떠올라 포기하지 못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러길 1주일째.
논산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장이 당시 여관 주인의 손자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상인회장의 도움으로 손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여관 주인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어르신은 손자라도 만나 빚을 갚고 싶다고 했고, 송 경사는 어렵사리 알아낸 집 주소를 어르신에게 건넸다. 며칠 뒤 송 경사는 어르신으로부터 여관 주인의 손자를 만나 빚진 돈에 이자까지 얹어서 갚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송 경사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40년전 여관비를 갚기 위해 병마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온 어르신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라며 "이런 어르신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한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몇일 밥을 안먹어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껄, 껄, 껄 하며 떠나는 인생인 것을...
 
팔순 노령 어르신의 40년 동안 빚진인생을 정리하고 후련히 떠나려는 갸륵한 주변정리에서 우리는 새로움을 느끼며 가슴을 뭉쿨하게 한다. 작은 빚이라도 청산하고 편히 가려는 노년들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본다.
 
사람은 죽을 때, '껄, 껄, 껄' 하며 죽는다고 한다. 호탕하게 웃으며 죽는다는 뜻이 아니다.
세 가지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후회하며, '~했었으면 좋았을 껄' 하면서 죽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껄'은 '보다 베풀고 살 껄!'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죽은 다음 재산을 정리해 보면 약간의 돈은 나온다. 그 돈을 두고 가는 것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렇게 다 놓고 갈 껄 왜 그토록 인색하게 살았던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껄'은 '보다 용서하고 살 껄!'이다. 죽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사랑한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르지만 미워하고 증오했던 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아, 이렇게 끝날 것을 왜 그토록 미워했던가! 이게 마지막인데, 다신 볼 수 없는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화해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세 번째 '껄'이 가장 중요하다. '아, 보다 재미있게 살 껄!'이란다. '어차피 이렇게 죽을 껄, 왜 그토록 재미없게,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하며 살았던가!' 한다는 것이다. 죽을 때가 되니 비로소 내가 이미 가진 것들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다.'왜 그토록 내가 이미 소유한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이토록 재미없이 살다가 가야 하는가'.
 
이제 노년에서야 깨닫는 껄, 껄, 껄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의 빚을 먼저 갚고 마음 편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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