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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14일 유가행렬 및 군자봉성황제가 있었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m의 산이다. 군자봉이란 이름은 조선조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안산 능안(陵內, 당시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봉오리가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과 같다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산에서 성황제를 지냈다는 것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나와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자성황제가 조선 초기 국가의 공식 기록물에 언급될 정도로 당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군자봉을 '굿'봉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산 정상에 있었던 성황사(城隍祠)에서 굿을 했던 사실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무속 신앙에서는 영험이 있는 영산(靈山)으로 불리며 산 정상에는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군자봉 성황제는 군자봉 인근의 구지정 마을 주민들이 지낸다. 구지정 마을의 이름은 아홉 개의 우물에서 비롯됐다. 구지정 주민들은 군자봉 정상에 있는 성황당에 경순대왕을 모셔놓고 매년 섣달(음력12월) 당주와 마을주민들이 올라가 제를 지낸다. 이어 경순대왕을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유가를 돌고 삼월삼짇날(음력3월3일)이 되면 다시 군자봉 성황당에 모셨다.
2015년 11월 13일 구지정 족구장에서 당제인사를 드린 후 구지정 마을을 찾아가 유가행렬을 했다.
유가행렬을 집으로 맞이한 주민이 집안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했다.
유가행렬을 마지막으로 맞은 집은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장 황정현(48년생) 씨 댁이었다.
뒤란에는 커다란 터주가리가 있었다. 어린 날 뒤란에서 보고 일반 가정집에서는 40여 년 만에 보는 터주가리였다. 반가웠다. 황정현 씨는 “이 터주가리는 시흥시 군자동 506-1번지에 그전부터 있던 자리다. 터주가리는 가족이 편안하고 건강하라고 가을이 되면 떡을 해놓고 치성을 드린다. 터주가리 윗부분은 매년 갈아주고 아래 부분은 한 해 걸러서 만든다. 윗부분은 유가행렬 전에 오늘 만든 것이다.”고 했다.
이병권(80년생)시흥문화원 사무국장은 “유가행렬은 집집이 다니는 유가가 전승되었는데 구준물 마을에서 유가행렬을 한다. 군자봉 유가행렬은 경기 남북 권에서 수원, 평택, 안양까지 다녔다. 군자봉 서낭대가 기가 가장 셌다. 다른 마을 걸립패들이 군자봉 서낭대를 만나면 기를 기울여서 절을 했다. 원형을 잘 보존해야 하고 시민사회와 대중들이 함께 어우러져 과거의 축제가 오늘 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11월 14일 군자봉 성황제는 비로 인해 구지정 족구장에서 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처음으로 치룬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장 한정현 씨는 “저는 구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봐온 군자봉성황제가 지속적으로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속에 계승되어지기를 바라는 지역주민입니다. 예전부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들어온 군자봉성황제는 일제강점기시대의 탄압과 압박 속에도 불구하고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당주의 노력과 주민들의 단합 속에 지금까지 어렵게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앞으로도 군자봉성황제가 우리의 전통예술문화로서 더욱 모든 내빈과 시민여러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군자봉성황제가 시흥시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경기도무형문화재로서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고현희 당주는 군자봉성황제를 지켜온 저의 외증조할머니(곽명월)와 뒤를 이은 외할머니(김부전), 이어 저의 어머니(김순덕)와 저(고현희)가 오랜 전통과 여러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천년 전통을 가진 문화적 자산으로 계속 전승되어 향토전통예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과 관계된 모든 분들의 관심과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군자봉성황제는 군자성황사지(시흥시 향토유적 제14호)에서 서낭신을 맞이하는 의례로 우리 시흥지역 사람들이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오며 마을 주민의 단합과 발전을 위하고 넓게는 시흥시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2015년 군자봉성황제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이웃과 화합하고 넉넉한 인정을 나누며 건강, 이웃의 기쁨, 시흥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를 함께하신 시민 및 내빈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올해 성황제는 예년에 비해 매우 뜻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제20회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가 군자봉성황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떤 방향으로 가꾸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고 인사말을 했다.
윤태학 시흥시의회 의장은 “군자봉성황제는 우리 지역민의 소박한 마음과 바람을 품은 기원풍습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군자봉성황제의 가치는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현재는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무가의례지만 과거에는 그 영험함으로 인해 타 지역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 지역민에게 의미 있고 지켜야할 유산이며 우리 스스로 더욱 가다듬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소중한 역사적 자산입니다. 소중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노력 부탁드리며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여러분의 가정에 안영과 평화를 기원 드립니다.”고 인사했다.
정원철 문화원장에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군자봉성황제가 어둠속에서 광명으로 나가는 입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와 시흥시 관계자 분들의 노력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소개하려도 타이틀이 없을 때는 소통이 어렵다. 무형문화재로 되었다는 것은 전면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군자봉성황제는 원형행사로 가지만 시흥시 축제나 유가행렬 등은 거리축제의 선봉과 중심에서 시민과 어우러져서 시흥시의 뿌리 깊은 민속이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종교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은 없었다. 유가행렬과 성황제는 무속행위와 함께 어우러집니다. 유가는 집에서 논다는 부분이다. 한국무용도 대개의 옛 작품들은 무속의 춤에서 대부분 왔지만 따로 떼어 놓았을 때 저항감이 없듯이 다른 종교를 인정해주는 부분이 더 발전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시흥시사를 보면 군자봉에 군자산성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당집이 복원되면 군자산성과 함께 복원해서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19살 때부터 서낭대를 잡았던 황정학(45년생)씨는 “무형문화제가 되었다는 소식에 기뻤다. 한참하다 보니까 주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흐뭇했지. 지금은 서낭대를 놓고 젊은 사람들이 하니까 좋다. 노냥은 할 수 없고. 당집이 지어지면 내가 다시 한 번 서낭대를 잡아야지.”라고 했다.
2015년 군자봉 성황제 및 유가행렬의 출연자는 연행에 고현희 당주, 조광현, 김순중, 승경숙, 변순애, 윤희숙, 김기철. 악사에는 이한복 문종호, 강차욱, 이희선, 고경석 등이 했다.
군자봉성황제 보존회는 한정현 회장과 이도수ㆍ황정학 부회장, 표용환ㆍ당행복ㆍ김은태ㆍ표창환ㆍ이상선ㆍ강재모ㆍ이상목ㆍ이상걸ㆍ이흥렬ㆍ이상화ㆍ이영명, 최보근, 당승상, 황기종, 정세훈 등으로 구성되었다.
2015년 군자봉성황제는 특별했다. 시흥시 최초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하는 첫 행사였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천으로 인해 군자봉성황제가 군자봉 정상에서 못하고 구지정 족구장에서 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러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년에는 군자봉 정상에서 성황제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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