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고독과 상처, 그리고 시

시흥문인협회 개최 제23차 문학강좌에 다녀와서

최영숙 | 기사입력 2013/07/23 [23:29]

손택수 시인의 고독과 상처, 그리고 시

시흥문인협회 개최 제23차 문학강좌에 다녀와서

최영숙 | 입력 : 2013/07/23 [23:29]


 

▲ 단체 사진을 담다     ©최영숙


사단법인 시흥문인협회가 개최한 제23회 문학강좌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캠프’에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7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시흥 YWCA 버들캠프장에서 열렸으며, 소설가 김종광, 시인 손택수· 여성민 씨가 초청돼 깊이 있는 강의를 진행했다. 현장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4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더했다.
 

▲ 김종광 소설가     ©최영숙

 

첫 번째 강사로 나선 김종광 소설가는 ‘쓰고 싶다면 즐겁게 쓰자’라는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김종광 작가는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소설 〈경찰서여, 안녕〉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소설집으로는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율려낙원국》, 《첫경험》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상(2000), 제비꽃서민문학상(2009)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김 작가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도, 끊임없는 노력(다독·다상량·다작)도 아니다. 그 끊임없는 노력을 가능하게 원동력을 만들어 주는 ‘욕심’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100권 이상의 소설을 읽었다면 무조건 그냥 쓰기 시작하라”는 조언은 많은 참가자의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 손택수 시인     ©최영숙

 

두 번째 강의는 손택수 시인이 ‘상처의 연금술’이라는 매혹적인 주제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손택수 시인은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나무의 수사학》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교실 밖으로 걸어 나온 시》 등을 펴냈다. 신동엽창작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두루 수상했으며 현재 실천문학 발행인을 맡고 있다.

 

손택수 시인은 “학창 시절, 학교를 마치고 할머니가 보고 싶어 비닐하우스에 갔다. 그때 문득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처음에는 ‘뻐꾹 뻐꾹’ 울다가, 다음에는 ‘워꾹 워꾹’, 그다음에는 ‘버꾹 버꾹’ 하고 울더라.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결코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개 이상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건네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뻐꾸기는 ‘뻐꾹 뻐꾹’, 낙엽은 ‘우수수’, 개구리는 ‘개굴 개굴’이라고 정형화하여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별다른 사유 없이 기호화되어 저장된 기억들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산이나 언덕, 그리고 겨울과 봄에 우는 뻐꾸기 소리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비가 오는 날과 바람 부는 날이 다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울어댄 뻐꾸기라면 목이 아파 소리가 변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자신이 석류나무 한 그루를 6개월 동안 하염없이 바라본 끝에 시를 쓸 수 있었던 일화를 소개해 큰 감동을 주었다. 시인이란 결국 ‘기다림의 고수’가 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세상의 상처를 온전히 받아내는 시인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심성은 그의 고백에서도 잘 드러났다. 어린 시절 기르던 검둥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나, 절을 찾아 백일기도를 드려도 여전히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철없던 시절에 행했던 작은 잘못을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속죄하는 시인의 여린 감성에 청중들의 마음도 함께 아려왔다. 그리고 그 속죄의 마음은 결국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낳았다.

 

 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의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 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 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함과 동시에 타인의 상처도 치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를 읽으며 유독 가슴이 저려왔던 것은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툇마루 밑에 누렁이가 강아지를 낳으면, 막내였던 나는 늘 어두운 툇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강아지들을 품에 안고 나오곤 했다. 덩치가 남산만 했던 어미 개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지만, ‘네가 주인인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는 묘한 자신감이 내게는 있었다. 겨우 눈을 뜬 강아지들을 언니와 함께 수건으로 포대기를 만들어 등에 업고 소꿉놀이를 하던 기억이 선하다.

 

하지만 정이 한참 들 무렵이 되면 강아지들은 이집 저집으로 팔려 나갔다. 무녀리(한 배에 낳은 새끼 중 맨 먼저 태어난 못나고 작아 마지막까지 정이 들었던 강아지)는 자라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곤 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 뒤 쇠창살에 갇혀 팔려 가면서 어린 주인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마지막 눈길을 여전히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택수 시인의 〈흰둥이 생각〉은 어린 시절 우리 집 강아지들에게 가졌던 그 미안함과 죄스러웠던 마음에 따뜻한 공감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이렇듯 독자들이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는 추억들과 만나 비로소 온전한 공감을 이루게 된다.

 

▲ 이연옥 문협지부장 인사말 하다     ©최영숙


강의가 모두 끝난 후, 이연옥 시흥문인협회 지부장이 캠프에 참석한 시민들과 문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 시콘서트를 하다     ©최영숙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시낭송과 음악이 어우러진 감미로운 ‘시 콘서트’가 열렸다. 낭만적인 기타 연주를 시작으로 시 낭송, 노래, 애절한 해금 연주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져 한여름 밤의 정취를 더했다.
 

▲ 임경묵 시인 시낭송하다     © 최영숙


이 자리에서 임경묵 소래문학회 회장은 손택수 시인의 대표작인 〈목련전차〉를 차분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로 낭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목련 전차 
 -
손택수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갠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 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려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動力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 밤을 보내신 동래온천이 나온다

▲ 이성덕 시흥시의원 시 낭송하다     ©최영숙


이어 이성덕 시흥시의원이 무대에 올라, 현재 시흥시에 거주하는 여성민 시인의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장미여관〉을 낭송하여 눈길을 끌었다.


장미여관

-여성민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장미여관에 가요
애인은 한 마리 새와 핏빛 노을 계단은 파라핀처럼 녹아내리고
방금 사랑을 나눈 방에선 하얀 밀이 자라요
벽에는 귀를 댄 흔적들이 포개져 있죠
자다가 일어나 차가운 물을 마시고 발포와 발화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부는 도시 발화하는 총구에서 새의 눈이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죠
눈이 생겼다는 건 조준 되었다는 것 방들은 접혀 있어요
문을 열 때마다 애인들의 얼굴이 뒤바뀌죠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인사를 하고 우리 장미 여관에 가요
애인은 열 마리 푸른 나비와 핏빛 노을
애인의 그곳은 귀를 닮았는데요 밤이 오면 손을 포개고 그곳에 귀를 밀어 넣어요
한 개 두 개 밀어 넣어요 까마귀 떼처럼 밀밭 위를 날아 검은 귀들이 사라져요
열 번의 밤이 오고 한 번의 아침,
귀가 사라진 얼굴에서 장미가 돋아나요 영토 없는 꽃처럼
뒤집어져서, 벽에서, 검은 벽에서
꽃들이 발포해요

생의 마지막 문장은 언제나 꽃의 발포에 관한 것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첫 문장으로 이별을 하고

 

▲ 문도진 시흥문협 부지부장과 권순조 문인협회 사무국장 오카리나 연주를 하다     ©최영숙


문도진 시흥문협 부지부장과 권순조 사무국장이 무대에 올라 호흡을 맞추며 맑고 고운 오카리나 선율을 선사해 축제의 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 초청작가와의 만남을 갖다     © 최영숙


 버들캠프장의 밤이 깊어갈수록 문학에 대한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어진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문학에 관해 깊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 손택수 시인 강의하다     ©최영숙


 손택수 시인은 캠프를 마치며 참가자들에게 마지막 울림을 남겼다. “하나의 사물에 집중하고 하염없이, 지긋하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사물이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를 건네옵니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 적는 사람이 바로 시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 있는 고독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흥문인협회가 주최한 제23회 문학강좌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캠프’는 시흥시민들과 관내 각 문학회 회원 등 40여 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소중한 자산을 가슴에 안고 1박 2일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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