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에 묻힌 고향의 산을 부르다… 은행동 비둘기공원에 우뚝 선 ‘생매산 추모시비’-생매산 추모비 제막식을 하다
지난 11일 생매산(현 은행동 비둘기공원)에서 뜻깊은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생매산은 과거 소래산 자락에서 낮게 연결되었던 해발 86m의 야트막한 산이었다. 그러나 지난 1992년 은행지구 택지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차츰 깎여나가 현재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다. 본래 산 정상에 돌이 많아 새매(매목 들판의 날짐승)의 좋은 서식처가 되었다고 하여 '새매산'이라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며 주민들의 발음이 점차 편하게 변하여 '생매산'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와 비슷한 발음인 '샘미산'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고, 모래가 유독 많은 산이라 하여 '모래산', 혹은 소래산을 할아버지산이라 부르는 것에 대칭하여 '할머니산'이라 다정하게 불렀던 주민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소래산 바로 앞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 꼭 소래산을 대접하는 밥상과 같다고도 평했다.
과거의 생매산은 토끼나 노루, 족제비와 같은 산짐승들과 꿩, 산까치, 부엉이, 매 따위의 날짐승들이 평화롭게 뛰놀던 낙원이었으며, 산등성이와 골짜기 사이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풀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던 아늑한 자연 공간이었다. 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쉼 없이 솟아나던 옹달샘은 마을 주민들에게 맑은 식수와 생활용수를 아낌없이 공급해 주었고, 산자락의 나무들은 시린 겨울을 버티게 하는 땔감이 되어주었다. 산의 북쪽에는 널찍한 목장이 자리했었으며, 개간지에서는 감자나 고구마, 밀, 각종 채소와 과일 등을 일구어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주민들의 직접적인 삶의 터전이었다. 이렇듯 풍요로웠던 생매산의 옛 정상부 자리에는 오늘날 비둘기공원이 조성되어 도심 속 주민들에게 소중한 휴식을 건네고 있다.
이귀훈 시흥시의회 의장은 “어린 시절 바로 이곳 생매산 자락을 뛰어놀며 자랐다. 안타깝게도 이 산이 깎여 없어지면서 인근의 신천천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으로 변해버렸다”라며 “옛날에는 생매산에 있던 맑은 샘에서 집집마다 물을 떠다 먹곤 했다. 비록 흘러간 자연의 샘을 물리적으로 되돌려 복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대신 우리 이웃 공동체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정이 샘솟아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애틋하게 회상했다.
이어 문도진 시흥문인협회 부지부장이 무대에 올라 생매산의 넋을 달래는 감동적인 추모시를 낭송했다.
이날 비둘기공원 정상부에 굳건히 세워진 생매산 추모시비는 그 건립 과정부터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비와 함께 배치된 주변 조경 석재들은 과거 생매산을 허물 때 채굴되었던 실제 발파석들로, 머나먼 월곶 공유수면 매립지까지 떠돌던 돌들을 수소문 끝에 다시 고향 땅으로 찾아와 배치한 것이다. 거친 돌판 위에 새겨진 추모시는 추보 박영만 시인의 시에 효석 최찬희 작가의 올곧은 글씨가 더해져 완성되었다.
박영만 시인은 옛 생매산을 돌아보며 “과거 외롭고 쓸쓸할 때 생매산에 오르면, 이름 없는 잡초와 들꽃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춤을 추며 나를 위로하듯 맞아주었다. 그러면 나 역시 아이의 마음이 되어 들꽃 하나하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기쁘게 답례하곤 했다”라며 “생매산에는 진달래, 원추리, 산딸기, 찔레꽃 등 우리 땅의 토종 꽃들이 참 가득했다. 이 산은 마을 주민들에게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영험한 지주이자, 내게는 시를 가르쳐 준 문예창작 선생님이나 다름없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박 시인은 “큰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면 청개구리들이 나무 위에서 먼저 슬피 울어 징후를 알려주었고, 사격장 바위틈에 살던 백 년 넘은 영물 구렁이는 대지가 가물 때면 마치 암소 우는 소리처럼 웅장하게 울어대며 산의 숨결을 전했다. 뉘엿뉘엿 저녁노을이 지고 바위 위에 홀로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무뎌진 내 머릿속에도 맑은 시상이 반짝 떠오르곤 했다”라며 “이렇듯 소중했던 생매산이 개발의 칼날 속에 사라져 버린 지 어느덧 2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정기는 여전히 내 몸속에서 피와 살이 되어 흐르고 있다. 오늘 이렇게 시비가 되어 다시 만났으니 참으로 꿈만 같고 기적 같은 일”이라며 감격해했다.
시비의 글씨를 붓끝으로 정성껏 내려쓴 최찬희 작가 역시 “과거 시흥으로 이주해 오기 전, 푸르게 살아 숨 쉬던 옛 생매산의 온전한 풍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늘 마음 한구석으로 문명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자연의 훼손을 목도하며 무거운 부채감을 안고 살았다”라며 “그동안 생매산 기슭에 소리 없이 의탁해 살아가면서 산이 깎여나갈 때마다 참 미안했다. 오늘 이 추모시비를 통해 산의 존재를 후세에 이어갈 수 있도록 글씨로 작은 힘을 보탠 것이, 그동안 자연에 가졌던 빚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기워 갚는 길이라 생각했다”라며 시비를 쓰게 된 다정한 인연을 전했다.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시흥기록, 생매산 추모비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