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2년 제3회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들 기념사진을 담다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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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에 위치한 남해유배문학관에서는 ‘제3회 김만중 문학상 시상식 및 문학제’가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소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로 대상을 차지한 임종욱(51) 씨를 비롯해 시·소설·희곡 부문의 수상자들에게 상패와 상금이 수여되었다.
김만중 문학상은 1689년 남해로 유배되어 노도에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국문으로 쓴 서포 김만중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년에 제정되었다. 이번 제3회 김만중 문학상은 지난 2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시, 소설, 희곡 3개 부문을 공모했으며, 총 393명의 작가가 2,443편의 작품을 응모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날 임경묵 시인은 시 부문에서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에 들다〉 외 작품으로 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에 들다 · 15
-간장을 엎지르다
시인 임경묵
우물에 쪼그리고 앉아
벼룻돌 씻다가
우물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캄캄한 묵화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꽃
이웃 노파가 준 간장 한 종지를 들고 오다가
마당에 폭삭 엎질렀다
수묵의 모란이다
차마 꺽을 수 없는 꽃
깨진 종지는 그대로 주저앉아 꽃받침
해 종일 박무의 섬 밭에
봄볕을 몰고 다니던
노인의 수염은
어머니 늘 말씀하시던 선친을 닮았다.
언문을 읽을 줄 안다는
노파의 남편이다
가는귀가 먹었다고 한다
임경묵 시인은 1971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성장했다. 공주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머나먼 바람개비」 외 4편이 당선되며 등단했고, 2006년 제8회 수주문학상, 2011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임 시인은 현재 시흥문인협회와 소래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흥시 정왕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시흥에서 오전에 출발해 남해 죽방렴을 지났다. 창선교 아래를 흐르는 지족해협은 26통의 원시어업 죽방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좁은 바닷길이라 하여 ‘손도’라고도 불리는 지족해협의 죽방렴은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이다.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 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 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 어장이다. 지족해협은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담백하고 쫄깃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 ▲ 남해죽방렴 멸치판매를 알리는 현수막 ©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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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개불, 미역은 지족해협 최고의 특산물이다. 길가에는 남해 죽방렴 멸치 판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에 들다 · 13
-멸치
지족해협에서
천방지축으로 펄떡이는 멸치 때를 만났다
등 푸른 청어의 혈통을 가졌다
한때,
바다의 조각이었을
파도의 살점이었을
멸치여!
오늘만은 온몸으로 번쩍이는 바다의 비늘이다
한 뼘보다도 작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에 드는 생선
한 때 만조를 틈타 야반도주를 꿈꾸었으나
촘촘한 대나무어사리가
그대에겐 위리안치 아니었을까
그대여, 나와 한통속이구나!
남해의 들녘은 완연한 늦가을이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마늘을 심던 주민들이 잠시 땀을 식히며 쉬고 있었다.
| ▲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위치한 방조어부림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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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50호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에 도착했다. 방조어부림은 약 1만여 그루의 나무가 바닷가를 따라 1.5km가량 늘어선 초승달 모양의 숲이다. 이 숲은 약 300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이 태풍과 염해(소금 피해)로부터 마을과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조성했다. 동시에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여 물고기 떼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숲이 해를 입으면 동네가 망한다”고 믿어 오래도록 귀하게 보존해 왔다. 실제로 19세기 말 이 숲의 나무를 일부 베어 쓰자 큰 폭풍우가 몰아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원로들이 협의하여 숲을 해치는 자에게 벌금을 물리기로 규약을 정하고,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매주 한 번 이상 숲 주변을 청소하며 가꾸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 느티나무 일곱 그루를 베어 가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총칼에 맞서 숲을 지켜내기도 했다.
이 마을에서는 방조어부림 중 가장 큰 이팝나무를 당산목으로 정하고, 매년 음력 10월 15일마다 제사를 올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빌고 있다.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에 들다 · 11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을 거닐다
용문사에 들러 어머니 극락왕생 축원하고
늙은 몸을 재촉하여
방조어부림을 걸었다
태풍과 염해를 막고
살진 몰고기를 모이게 할 만하구나
시우 쇠 달구는 일출을 헤치고
푸른 바다를 건지는 사내들의 거친 사투리들과
텅 빈 바람과 맞서
가문 땅을 길들이는 젊은 아낙들과
파도에 베인 무수한 아비를
남해 금산에 누이고
자주잎제비꽃처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바닷가 순한 형제들을 위한 숲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깊이, 더 깊이 끌어안지 않으면
그 많은 파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으리니
파도에 집착한 나이테의 윤회가
저들의 간난신고를
토닥일 수 있도록
무쇠 못보다 단단한 뿌리를 내려다오
좀 더 꼿꼿이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일에 몰두하는
느티나무와 이팝나무여
한 치 소홀함이 없구나
세찬 빗줄기와 연거푸 파도를
어깨 걸고 맞서다가 가슴까지 젖은
푸조와 팽나무여 갸륵하다
산허리를 감돌다가
어둑발에 쫒겨 내려온 어린 곤줄박이도
너의 어깨 위에 거두어야 하리
*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해풍과 조류를 막고자 조성한 인공 숲.
** 오상순 시인의 시 '꽃자리'에서 빌림.
| ▲ 독일 마을에서 바라본 남해와 방조어부림의 모습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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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독일마을이다. 이곳은 1960년대 어려운 시절에 독일로 파견되어 조국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헌신한 재독 교포들의 정착을 돕고,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조성되었다. 나아가 독일의 이국적인 문화와 전통문화예술촌을 연계한 특색 있는 관광지를 개발하기 위해, 남해군은 지난 2001년부터 삼동면 물건리 일원 30,000여 평 부지에 30여 억 원을 들여 기반을 조성하고 택지를 분양했다. 독일 거주 교포들은 독일에서 직접 건축 자재를 수입하여 전통 독일식 주택을 신축했으며, 독일을 비우는 기간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펜션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마을 입구부터 아름다운 펜션촌이 형성되어 눈길을 끈다.
오후 4시부터는 본격적인 어울림 마당이 펼쳐졌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강연 ‘김만중과 한국 현대문학’을 시작으로 국악 공연, 서포 김만중 선생의 시 낭송, 퓨전 국악 및 판소리 공연, 통기타 가수 초청 공연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져 축제의 흥을 더했다.
한편, 남해유배문학관 로비에서는 가을 향기 물씬 풍기는 국화전시회가 열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임경묵 시인이 은상을 수상했다.
임경묵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소감을 전했다.
“지난 5월, 가족들과 함께 남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둑발이 내릴 무렵 차량 행렬에 밀려 다랭이마을 끝자락에서 잠깐 보았던 작은 섬이 바로 서포(西浦) 선생의 적소였던 노도(櫓島)였습니다. 배편이 여의치 못해 끝내 그 섬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서포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해에 그의 사위 이이명 선생이 다시 남해로 유배를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인의 유배지 초옥(草屋) 한편에서 주인을 잃고 시들어 가던 매화나무를 자신의 적소로 옮겨 심고, 〈매부(梅賦)〉를 지어 그 뜻을 기렸다는 일화였습니다. 서포 선생이 돌아가신 1692년의 마지막 봄날을 내내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하여 거친 파도의 투레질을 묵묵히 받아내던 그 섬의 슬하에서, 지난 여름내 서툰 붓질로 그려 보았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스무 편을 세상에 내려놓습니다.”
| ▲ 마늘을 심고 있는 남해의 농촌풍경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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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묵 시인의 연작시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에 들다〉 20편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시상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시인이 영감을 얻었던 남해의 푸른 풍경들을 직접 마주해서일까. 시를 읽는 동안, 수백 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서포 김만중이 숲과 바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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