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음력 10월3일에 열리는 군자봉성황제를 가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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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전통을 가진 ‘군자봉성황제’가 지난 11월 16일(음력 10월 3일) 군자봉 정상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 ▲ 하늘에서 바라본 군자봉- 군자봉에서 소래산을 바라보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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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봉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m의 산이다. 군자봉이라는 이름은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안산 능안(당시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산봉우리가 마치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풍모와 같다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이 산이 ‘굿봉’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산 정상에 있었던 성황사(城隍祠)에서 오랫동안 굿을 해왔던 사실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 무속 신앙에서 군자봉은 영험한 영산(靈山)으로 꼽히며, 산 정상에는 수백 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영험한 기운을 더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3일이 되면 군자봉 인근의 구지정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이곳 정상에서 성황제를 지낸다. 구지정(九井)이라는 마을 이름은 과거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 ▲ 군자봉성황제보존회 회원들이 군자봉 정상의 느티나무를 감싸 돌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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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제(城隍祭)는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제도다. ‘성(城)’은 성벽을, ‘황(隍)’은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도랑(해자)을 뜻한다. 즉, 성황제는 지역 수호의 필요성이 매우 높았던 시기에 성곽도시의 보호신에게 올리던 국가적인 제례 의식이었다.
군자봉성황제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김부대왕(경순왕)과 그의 부인 안 씨, 그리고 장모 홍 씨를 모시는 의례다. 한편으로는 안 씨 부인의 영적인 도움으로 중국 사신 길을 무사히 마친 고려 시대의 명재상 서희(徐熙) 선생과 관련이 있다는 전승도 함께 내려온다.
| ▲ 경기도 연천에 있는 신라의 마지막 왕 김부(경순왕) 대왕릉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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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봉에서 오래전부터 성황제를 지내왔다는 사실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통해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 ▲ 군자봉으로 짐을 지고 오르는 무녀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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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성황제를 치르기 위해 한 무녀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가파른 군자봉을 묵묵히 오르고 있었다.
| ▲ 성황제를 지내기 전에 김윤식 시흥시장(가운데) 과 참석자들이 어우러지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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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가 시작되기 전, 김윤식 시흥시장을 비롯해 군자봉 정상에 모인 내빈과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 나는 춤판을 벌였다.
이날 정상종 시흥문화원장은 “군자봉성황제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오며 마을 주민의 단합과 발전을 도모하고, 넓게는 시흥시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해 온 의식”이라며 “백성들의 소박한 기원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시흥시의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한정현 군자봉성황제보존회장은 “군자봉성황제가 우리 시흥시의 대표적인 전통예술문화로서 시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승과 홍보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현희 군자봉성황제 당주는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시흥시민 모든 가정의 평안과 풍작을 기원했던 성황제의 전통 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며 전승 보존에 대한 굳은 다짐을 밝혔다.
이에 김윤식 시흥시장은 “군자봉성황제가 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받을 수 있도록 문화원, 시흥시, 그리고 고현희 당주를 비롯한 보존회와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 ▲ 1번-대왕님 모시기(서낭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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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대왕님 모시기(서낭거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성황제의 막이 올랐다.성 황당에서 마을 풍물패와 무녀들이 본격적인 굿을 시작하기 전, 대왕님 장대기를 높이 들고 풍악을 울리며 대왕님의 신령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 ▲ 2번-김순중 무녀가 부정 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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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중 무녀가 제장에 낀 모든 부정한 기운을 깨끗이 씻어내고 소멸시키는 부정거리를 진행했다.
| ▲ 3번-조광현 중요무형문화재98호 보존회장이 산불사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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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보존회장이 산불사거리를 주관했다. 산불사거리는 산불사님, 산칠석님, 산제석님을 청배(신령을 요청해 모심)하여 시흥 지역 주민들의 수명장수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거리다. 이때 시흥시장을 비롯한 많은 참례자가 제단에 잔을 올렸다.
| ▲ 4번- 고현희 당주가 산신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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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희 당주가 산신거리를 이어받았다. 산신거리는 군자봉성황의 본향님과 부근의 도당님, 그리고 팔도의 모든 산신령을 청배하여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무사안녕을 간절히 기원하는 의식이다.
| ▲ 5번- 승경숙 무녀가 별상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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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경숙 무녀가 진행한 별상거리는 나라의 별상신들을 청배하여 모진 질병이나 재해, 사고 등을 막아달라고 기원하는 거리다. 무녀가 정성껏 차려진 제물을 날카로운 삼지창 위에 중심을 잡아 세워 올리는 신기를 선보였다.
이어 승경숙 무녀가 신장거리를 행했다. 다섯 색깔의 화려한 오방신장기를 펼쳐 들고 오방신장님을 청배하여 동·서·남·북·중앙에서 들어오는 온갖 액운을 막아내고, 성황제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기를 뽑게 하여 한해의 길흉화복을 점쳐주었다.
| ▲ 7번 승경숙 무녀가 대감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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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승경숙 무녀의 대감거리가 이어졌다. 산과 들을 관장하는 대감신들을 청배하여 사람들에게 재물 복을 열어주고 손재수는 막아주어, 삶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명 나는 거리다.
| ▲ 8번-고현희 당주 창부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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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희 당주가 인간 세상의 12가지 흉액과 일 년 열두 달의 모든 액운을 무스르며 막아주는 창부거리를 하고 있다.
| ▲ 9번- 당주 고현희 뒷전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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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현희 당주의 뒷전거리가 진행되었다. 모든 굿 의식이 끝난 뒤, 혹시라도 남아있을 잡귀와 잡신들을 잘 대접해 보내어 향후 어떠한 우환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내쫓는 마당이다.
올해 성황제에는 처음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눈길을 끌었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 시민들이 저마다의 간절한 바람을 적어 넣은 희망 풍선들을 가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제례가 끝나자 군자봉성황제보존회원들이 서낭대를 받들어 올리고 신목(느티나무)을 크게 한 바퀴 돌아 하산을 시작했다.
| ▲ 군자봉에서 서낭대와 제물로 쓰인 돼지를 지고 내려오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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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제 제물로 바쳐졌던 돼지를 한 마을 주민이 든든하게 등에 지고 산을 내려왔고, 그 뒤를 신령스러운 서낭대가 엄숙하게 호위하며 따랐다.
| ▲ 군자봉성황제보존회원 황정학(68) 씨와 보존회원들 산을 내려오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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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봉성황제보존회원들이 하산하는 길에도 꽹과리와 장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신명 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보존회원 황정학(68) 씨는 “19살 때부터 서낭대를 잡았다. 옛날에는 군자봉 성황제를 마치고 서낭대가 마을로 내려올 때면, 마을 주민들이 신령 기운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고 길가에 모두 엎드려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극진히 인사를 드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아쉽게도 그런 전통적인 풍경이 많이 사라졌다”며 “군자봉 꼭대기에 우뚝 서 있던 오랜 당집도 40여 년 전 군대에서 제대하고 와보니 형체도 없이 무너져 있었다. 전해 듣기로는 한밤중에 누군가 몰래 와서 당집 벽돌 아래를 무너뜨려 허물었다고 하더라”며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산 행렬이 조선 세종의 여덟 번째 아들인 영응대군의 재실, ‘경효재(景孝齋)’ 앞을 장엄하게 지나갔다.
| ▲ 서낭대를 모시기 전에 천존을 모시고 있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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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천존항아리에 정화수를 담고 서낭대를 집안으로 정중히 모시기 위한 천존맞이 의식이 행해졌다.
군자봉성황제를 주관하는 고현희 당주 집 대문 정중앙에 마을의 수호 신령을 상징하는 서낭대가 힘차게 세워졌다.
| ▲ 당주 고현희가 친정 어머니 김순덕 전 당주를 모시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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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희 당주의 신당 안쪽에는 평생을 성황제 보존에 헌신하다 가신 전 당주이자 친정어머니인 故 김순덕 당주의 영정이 정성스럽게 모셔져 있었다.
하늘에서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대문 밖에 서 있던 서낭대가 신당 안으로 조심스럽게 모셔졌다. 이로써 군자봉 정상에서부터 시작된 대외적인 공식 성황제 행사는 모두 마무리되었다.
| ▲ 당주 고현희 집에서 단골들을 봐 주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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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행사는 끝났지만 고현희 당주의 집에서는 또 다른 온기 어린 굿판이 시작되었다. 어머니 세대부터 수십 년 동안 대를 이어 인연을 맺어온 오랜 ‘단골(무속에서 정기적으로 찾는 신도)’들을 축원하기 위한 자리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 식구처럼 서로를 반갑게 얼싸안았다.
소원을 빌고,
쌀점을 치고,
어떤 젊은 사람은 엔화로 복채로 내기도 했다.
당주는 화려한 신복 치마폭을 넓게 펼쳐 복을 가득 담은 뒤 단골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었다. 보통 일 년에 세 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는 단골들에게 공수(신령의 말)를 내리는 당주의 모습은, 무서운 무당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가족을 대하는 듯 정겨웠다.
어린 시절 시골 동네 동제(洞祭)에서 보았던 화려하고 조금은 무섭던 굿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거친 세파와 삶에 지친 이웃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따스하게 다독여주는 위로의 현장이었다.
인천에서 찾아온 이원효 씨(77·여)는 “친정이 진말(현 시흥시 장현동 인근)인데, 부모님도 평생 이곳을 다니셨고 나 역시 처녀 때부터 줄곧 찾았다”며 “과거에 딸만 다섯을 연달아 낳아 속을 끓였는데, 군자봉 대왕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드린 끝에 마침내 귀한 아들을 얻었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군자봉 아래 구준물 마을 출신인 김연수 씨(77·여)는 “14살에 시집와서 27살 때 대왕님께 기도해 귀한 아들을 낳았다”며 “친정아버지도 과거 친정할아버지가 섣달 열흘 동안 정성껏 빌어서 낳은 분이니, 친정아버님 또한 대왕님의 아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 당집을 4대째 다니는 독실한 단골이지만, 시대가 변해 자녀들은 더 이상 당집에 다니지 않는다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고현희 당주는 “군자봉성황제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어, 내년에는 꼭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이번 군자봉성황제에서는 피리, 대금, 해금 등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악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굿의 예술적 완성도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 ▲ 7번 승경숙 무녀가 대감거리를 하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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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람들은 성황제를 단순한 종교적 미신이나 색채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년의 장구한 세월을 이 땅에서 버텨온 군자봉성황제는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무형문화자산이다.
흐르는 세월의 물결 속에 군자봉성황제도 조금씩 모습을 달리해왔다. 과거에는 시흥을 넘어 수원, 안산까지 대규모 ‘유가(마을을 돌며 축원하는 행렬)’를 돌았을 만큼 그 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규모가 축소되어 인근 구준물 마을 중심으로만 유가를 돌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힘에 더해 시흥문화원, 군자봉성황제보존회, 시흥시, 시흥시의회 등의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 민·관이 함께하는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위상은 조금씩 변했을지언정, 현대에 이르러 소망을 담은 희망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온 지역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며, 성황제가 지역 화합을 이끄는 훌륭한 축제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흥시 관내에서 전통 격식을 온전히 갖추고 행사를 치르는 성황제는 군자봉성황제가 유일무이하다. 특히 연성문화제나 물왕예술제 등 관 주도의 축제와 달리, 특정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역사적 주체가 되어 직접 행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소중하다.
천년을 이어온 찬란한 역사와 주민들이 직접 나서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군자봉성황제. 이제는 이를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닌,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으로 바라보고 포용하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