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0일 ‘언어의 밭을 일구고 꽃 피우는 모임’ 소래문학회 회원들이 호조벌을 걸었다. 호조벌 걷기는 2004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가을 호조벌이 금빛에 일렁이면 걷는 전통이 되었다.
호조벌은 시흥시 안현동 길마재에서부터 물왕동의 물왕저수지 언저리까지 넓은 농지가 호조벌이다. 호조벌은 조선시대에 경제 사무를 담당하던 호조(戶曹)에서 관리하던 농지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년 전 이곳은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농토를 넓히기 위해 간척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호조벌을 막은 둑을 ‘호조방죽’ 또는 ‘걸뚝’이라고 불렀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에 행차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4년 경 소래고의 심우일 선생님이 [승정원일기]에서 경종 1년인 1721년 무렵에 호조벌이 완공되었음을 확인했다.
경종1년 12월 6일에 “안산과 인천 두 읍의 경계에 둑을 쌓아 논으로 만들 만한 곳이 있는 까닭으로 감관을 정하고 군정을 고용하여 일을 시작하여 지금 이미 완성하여 끝냈으니, 서울 근처에서 이렇게 수백 석을 얻는 논을 얻었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입니다.”라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정확한 역사기록을 찾은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 ▲ 2004년 호조벌 걷기 중에 강희맹 묘를 가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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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문학회의 호조벌 걷기는 2004년 10월 10일 소래문학회의 최준렬 회원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다. 2004년 호조벌을 걸으면서 강희맹 선생의 묘까지 왔었다.
2009년의 호조벌 걷기에서는 심우일 시흥역사문화연구회장이 관곡지와 강희맹 선생의 연관성과 호조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 ▲ 2006년의 코스모스가 피어있던 호조벌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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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벌 걷기의 옛사진들을 보면 호조벌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알수 있었다. 2006년도의 호조벌은 황금 들녘과 함께 코스모스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곳의 코스모스 길들이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곡선의 힘이었다.
| ▲ 2010년 코스모스가 사라진 호조벌 풍경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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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름답던 코스모스길은 2009년부터 사라졌다. 2009년 호조벌을 들어서며 이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아, 코스모스가 없다."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마치 민둥산에 들어선 듯 했다. 회원들은 "시흥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곳은 자전거를 타고 혼자 운동하는 사람과 가족, 연인, 동호회등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하이킹을 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코스모스의 씨방들이 몸에 부딪치면 아프다고 했다.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심으면 매년 떨어진 씨앗으로 코스모스 꽃밭을 이루는 것을 일부러 모두 베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에 민둥산처럼 허전한 호조벌의 길이 되었던 것이다. 일부러 코스모스를 심어서 축제도 여는 곳도 있는데 기껏 아름답게 꾸민 호조벌의 길을 이렇게 허전하게 하는 것은 뭔가 일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는 조금 안쪽으로 달리면 되는 것을, 코스모스들을 모두 베어버릴 정도로 사람들의 이기심이 컸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타기의 노선을 바꾸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관곡지로 가기 전에 작은 숲속에는 백로들이 나무 위에 하얗게 앉아 있었다.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로 상징되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 정몽주 어머니 -
는 시조가 문득 떠올랐다.
이곳은 시흥시의 백로 도래지였다. 1981년 8월 조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90년대에는 백로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2010년 10월에는 다시 백로들이 찾아 들었던 것이다. 반가웠다.
관곡지로 왔다. 관곡지는 하중동 208번지에 위치한 연못으로 강희맹 선생이 명나라 남경에서 연꽃씨를 가져다 심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못은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 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의 소유가 되어 관리되어 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연꽃이 성하면 권씨가 창성한다.” “안산군의 김씨 중 본관이 연성(안산)인 자는 못과 더불어 성하고 쇠한다.”고 하는 말들이 전해지고 있다.
10월의 연꽃테마파크는 이미 시들고 꽃은 없었다. 수련만이 피어있었다. 시흥시의 향토문화제명인 연성문화제의 명칭은 이 못에서 연유해 이름 지어졌다.
연꽃테마파크에는 한반도 지도 모형의 작은 꽃밭이 연못에 있었다.
연밭에서는 연근을 캐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 가는 연근은 가격이 저렴하고 양을 많이 주었다. 물왕저수지 근처의 음식점들은 연을 가지고 다양하고 특색 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판매했다.
호조벌은 추수가 한창이었다. 콤바인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호조벌에서 소래산을 보았다. 이 너른 호조벌에 바닷물이 그득했을 먼 옛날이 상상해 보았다. 물고기 유유히 헤엄쳤다. 풍요로웠다.
지금의 풍경도 풍요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바닷물 대신에 너른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찬란한 가을 햇살과 황금빛 물결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게 했다.
추수는 호조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천에 물고기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물고기들을 잡았다.
호조벌을 걸으면서 보통천을 들여다보면 물고기들이 유유하게 헤엄쳐 다녔다.
커다란 가물치까지 있었다.
콤바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논 가장자리의 벼들을 낫으로 베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올해 풍년이세요?” 물어보았다. “올해는 물난리에 정치판은 맨날 싸움이고 뭐가 되는 일이 있겠냐"며 흉년이라고 했다. 정치는 민심이 움직이는 모든 영역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미마을이 멀리 보였다. 물왕저주지에서 흘러오는 보통천에는 강태공들이 파라솔를 펴고 낚시대를 넣고 있었다.
시흥의 월미두레풍물놀이는 대원군의 경복궁 증축에 동원되기도 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월미두레풍물놀이는 시흥시의 대표적인 풍물놀이가 되었다.
호조벌을 걸으면서 어린 시절 메뚜기를 풀에 엮어서 잡았던 추억들을 이야기 했었다. 거의 같은 세대를 함께 건너왔던 것이다.
옛날 방식으로 메뚜기를 잡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일까 할머님의 표정이 한없이 맑았다.
요즘 어린이가 보았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조벌을 걸으면서 잠시 쉬었다. 서로의 끝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들,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손끝의 상처를 알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낡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과 호조벌을 걸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11시에 만나서 오후 5가 되었다. 한량처럼 슬렁슬렁 호조벌을 걸었던 것이다.
살면서 하루를 온전히 풀어놓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던 하루가 진정 귀했다.
| ▲ 코스모스길과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 ©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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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예년처럼 별일이 없다면 호조벌을 걸을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호조벌에 코스모스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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