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드르럭드르럭, 에구에구

대야동 사람들 구술생애사 3

민정례 | 기사입력 2019/07/09 [11:52]

밤만 되면 드르럭드르럭, 에구에구

대야동 사람들 구술생애사 3

민정례 | 입력 : 2019/07/09 [11:52]

소몰이꾼들이 소를 끌고 서울 갈 때가 장관이었지

 

▲뱀내장터 자리     

 

지금 삼미시장 있던 자리였지. 우시장 가운데다가 세멘으로 공구리를 쳐놨어. 그러면 그 주위 사람들이 멍석 깔고서 밤 12시까지 두런두런 얘기하고. 거기가 마을방이었었지. 그걸 왜 만들었냐면 소를 매매하려면 돈 쉴(셀) 자리가 없잖아요. 거기들 앉아서 돈 쉬어서(세서) 주고 받고 하던 자리야. 평상시 밤에는 주민들 다 모여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공동 마을방이었지. 장이 열리면 인천에서도 왔지. 화성서도 오고. 지금 대부도 쪽 그쪽서도 오고. 안산서도 왔잖아. 전국에서 안온대가 없어요. 먼데서 온 사람들은 소 끌고 와서 마방에다 맡겨놓고 거기서 여물도 쒀주고 장날에 팔고. 그때는 소몰이꾼이 있었어. 그땐 차가 없어서 살아 있는 소를 소몰이꾼이 끌고 가요. 서울 마장동까지 가서 도살장으로 갔지. 그게 지금 문화의 거리로 해서 계수리 길로 가는 거야.

 

한 사람이 두 마리씩 앞에 한 마리 뒤에 한 마리. 회초리 들고 가면서 앞에 소 때리고 뒤에 소 때리고. 그때 그거 하는 사람이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 번 끌고 가면은 서울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는 거지. 많이 걸었지. 차가 없으니까. 나중에는 차로 이동했지만 그 전에는 전부 소를 사람이 끌고 갔지. 여기서도 도살장이 있었어. 소래 축협 건너편에. 수인산업도로 이짝에. 거기 도살장이 있었지. 여기서 도살을 해도 뭘로 싣고 가. 그때 차가 없으니까 현지에서 잡아야 싱싱한 채로 보관을 하지. 지금이야 여기서 잡아서 부산도 가지만 그땐 그런게 없었어.우시장이 그때 지금 삼미시장 근처에 있다가 6.25 사변 나면서 북시흥농협 아래쪽으로 내려왔어. 이종오 신경외과 있는데. 거기가 큰 밭이었어요. 그러다 지금 CGV쪽으로 왔다가 내가 한 서른 몇 살까지 하다가 없어졌어. 좌우간 시가 되면서 없어진거야.

 

뱀내라는 것이 뱀처럼 구불구불해서 뱀내장터야. 

옛날에 장터가 1·6일 5일장으로 했었어. 소시장을 하면서 그 근처에 점심을 먹을 거 아니에요? 식당들이 그 근처에 생겼었지. 그때는 장이 컸어요. 그 옛날에 장터라고 거기 하나밖에 없으니까. 고무신 장사도 오고 포목 장사도 오고 골목골목마다 꽉꽉 찼었지. 해주옥, 옹진옥, 금천관 소머리국밥집. 다 그런 집이었었죠.

 

    © 출처 시흥장수신문 사진 심우일

 

금천관은 근래까지 했었어요. 금천옥에 많이 갔었지. 소머리 국밥이 맛있었어. 지금도 그 자리에 소마리국밥 하고 있잖아. 지금도 맛이 좋아. 금천옥이 우시장 근처에서 장사를 하다가 농협 건너편으로 이사를 한거야. 거기서 술장사를 하다가 이리로 이사와서 소머리국밥만 하더라고. 꼭 장작을 떼서 가마솥에다 끓여줘서 아주 맛이 좋았었지. 

 

북쪽에 쿵쾅쿵쾅하고 구름도 끼고 그래서 우리는 비온다고 좋아했었지.

그때 가물어가지고 우물을 파서 논들을 요만큼씩 냈어요. 방바닥 요만큼씩. 아 그랬는데 6월25일 북쪽에서 쿵쾅쿵쾅하면서 그쪽에 또 구름도 끼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비 온다고 좋아들 했는데 6월29일인가 30일인가 됐는데 아 군인들이 말 마차를 타고 막 들어오는거야. 군인이 지나가니까 애들이 좋아서 막 쫓아갔지. 쫓아가니까 군인이 달려오는거야. 모자도 뻘건 줄 있고 옷에도 뻘건 줄이 있고. 인민군이었지. 겁이 나서 뒤로 슬금슬금 도망가서 멀리서 쳐다봤는데. 걔내들 식량이 뭐냐하면 수수, 보리쌀, 밀이었는데 이런 비상식량을 끓여 먹을 때가 없으니까 마차에서 볶으면서 와요. 그걸 다른 애들에게 노나 주더라고. 난 무서워서 멀치서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때 당시 농협있는 자리가 우전마당이었거든요. 거기에 군인들이 집결해가지고 있었는데 밤 되니까 탱크가 들어오는 거야. 다 봤지. 제정구씨 살던 마을있잖어, 복음자리 마을. 옛날에 그게 밤나무 동산이었었거든. 밤나무 동산 밑에다 탱크를 전부 갖다 재어 놓은거야. 항공기 한 접시하고. 인민군이 9.28 수복되기 직전까지 있었지. 그놈들이 수수 좁쌀을 전부 셌다고. 그게 공식이 간단허데. 수수를 하나 뽑아 가지고 좁쌀이 몇 개인가 계산하고 전체 계산하니까 이 바닥에서 곡식이 몇 키로 나온다는게 금방 나와. 그 중에서 반을 아마 걷어갔지. 

 

지금 북시흥 농협 밑에 양조장이 있었는데 내가 양조장 마당에서 놀고 있으니까 아 우리 어머니가 저노무새끼 안데려가냐고 야단을 하는거야. 하도 야단을 쳐서 내가 집 마루에 와서 앉아 있었거든. 그때 뭐가 퓨우웅 하더니 지금 영남아파트 자리에 함포가 한 방 떨어지는 거야. 그러다 또 퓽 하더니 연합병원 거기 한 방 떨어지고, 지금 농협 밑에 한 방이 떨어졌는데 파편이 지나가서 먼지가 자욱하니까 앞이 안보여요. 우리 집앞에도 한 포가 떨어졌는데 조금 있다가 한 사람이 팔이 부러져서 피를 철철철철 흘리면서 덜렁덜렁 하면서 우리 부엌으로 들어가더라고. 거기 문 아니라고 말하고는 냅다 뛰어서 사거리 복개천, 그게 소래다리거든. 소래다리 밑으로 피난을 했는데 그 사람이 죽었는지 어쨌는지 몰라. 김포에서 피난나온 사람이었어.

 

전쟁나고 처음에는 피난갈 새가 없었지. 1.4 후퇴 때는 방산동 누님 댁으로 잠깐 갔다 왔고. 우리 집 앞으로 양조장 창고가 있었는데 전쟁 때 국군들이 후퇴하면서 롯켓포 박격포 기관총 실탄을 몇 트럭을 쌓아놨는지 몰라요. 그 창고를 가득 쌓아놨으니까. 국군들이 후퇴할 때 그걸 싣고 가야되는데 못싣고 그냥 갔더라고. 국군 아저씨한테 그때 물어봤어. 이게 전투하면 얼마나 하냐고 했더니 딱 네 시간 한대. 차로 몇 트럭인데. 그때는 우리가 병력이 약하니까 장거리포가 없고. 기껏해야 로켓포, 2.5인치 박격포. 그러고 실탄도 일본놈들이 쓰다 내버린 구식 소총. 한발 장전하고 또 쏘고 그거 실탄 있었어요.

 

전쟁? 그때 참 무서웠지. 방산동에 피난갔을 때 집이 가까우니까 왔다갔다 했어. 한번은 집에서 갖고 갈게 있어 지게지고 와서 뭘 지고 가는데 그때 제트기지. 쌕쌕이라고 하는거 그게 피난민들이 방산리 논두렁이 지나가는데 그냥 기총 소사를 해대는데 아마 많이 죽었을 거여.

 

인민군 내려왔을 때 인민 재판도 열렸지. 나는 구경만 했지. 그거에 걸리면 꼼짝도 못해요. 죄수를 저 앞에다 놓고 부락민들 다 모아 놓는다고. 한 사람도 안빠지고. 다 모아놓고 인민위원장인가 뭔가가 죄상을 낱낱이 대는 거야. 맨들어다 대는 거지. 그러면 옆에서 “죽여라” 이런다고. 같이 “죽여라” 그래야지 안그러면 반동으로 몰려요. 그래서 처형을 해요. 그 자리에서. 그놈들 인민재판이라는게 되게 무섭다고. 거기 걸려들면 빼도박도 못해. 보금자리에 고아원이 있었거든요. 고아원하던 원장님이 빨갱이라. 우리는 몰랐어. 아 근데 인민군이 들어오자 마자 설치고 다니는데. 그 사람이 여기 사람들 다 알잖아요. 그래 누구 끌어내고 누구 끌어내고 죄 잡아들이는거여. 

 

밤만 되면 드르럭드르럭, 에구에구

9.28 수복 때는 아침부터 이상햐. 인천상륙작전 하는걸 사람들이 모르잖아. 그때 헬기가 처음 뜬거야. 처음 떴는데 딱 잠자리 같애. 그래서 잠자리 비행기라 불렀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유엔군 헬기가 돌면서 정찰한거 같애. 사람이 얼마 있다 없다를 함포대에다 연락을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거기서 거리 측정을 해가지고 함포 사격을 하는 거야. 

 

그때 빨갱이들이 농산물을 전부 거둬가지고 양조장 지하실에다 저장을 해놨어요. 아 근데 인민군들이 인천서 후퇴를 하면서 우리집이 길 옆이니까 문을 두들기고 들어온 거야. 먹을거 내놓라고. 우리집에 먹을거 없으니까 양조장에 가서 얻어다가 고구마를 줬더니 그걸 죄 깎아먹고 바로 도망갔더라고. 

 

나도 집에 함포는 떨어지고 무서우니까 큰집이 있던 계수리로 피난을 갔어. 계수리 가는 길에 인민군이 호각을 불더니 절로 피하라는 거야. 영문도 모르고 왜그러느냐 하면서 봤더니 인민군이 새카맣게 엎드려 있더라고. 자기들 거기 매복을 하고 있으니까 못지나가게. 그때 정말 무섭더라고. 어린 나이에. 인민군들이 깩 엎드려 있는데 그걸 모르고. 그래서 산 위로 해서 저수지를 삥 둘러 갔다고. 그때도 사람이 많이 죽었어. 

 

그 얘기를 하면 또 기가 막히지. 6.25때는 어쩔 수 없이 인민군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잖아. 9.28 수복 이후에 양조장에 지하실이 있으니까 매일 저녁 동조자들 잡아다 패는 거야. 지방 토호들이. 자동차 벨트 있잖아요, 그걸로 패는데 에게게 에게게 하는데. 패고 나면 그 이튿날 우리집에 사람들이 온다고. 죽은거야 죽은거. 조기쯤 끌어다가 과수원 밑에다가 묻는거야. 거기 양조장 우물이 체인으로 된거야. 물 끌어올리면 다르락다르락 소리가 나거든. 사람 때릴 때 그 소리가 한참 났어. 사람 기절하면 그걸 퍼서 깨우고 또 때리고. 

 

근데 전쟁이 끝났는데도 이상하게 밤이면은 그 소리가 도로 들려. 드르럭 드르럭거리고 패는 소리가 나고, 아구아구 소리가 나고. 겁났지. 아침에 이웃들을 만나서 엊저녁에 떡해먹었냐 그래. 밤새 드르럭드르럭 거리니까. 그때 떡해먹을 쌀이 어딨냐고. 도깨비가 논거야 도깨비가. 

 

그러고 나서 이은0씨라고 부천 사람인데 양조장을 인수해서 여기로 왔어. 이은0씨 동생이 이은0씨라고 소래초등학교 선생으로 부임했는데. 그때만 해도 버스가 없었어. 부천서 여기 소래국민학교까지 올려면 걸어와야 돼. 이은경씨가 여기 형네서 잠깐 한 일주일동안 거주하다가 난 여기서 못산다고 도망가 버렸어 부천으로. 밤이면은 창문에다 모래를 끼얹는거야. 와르르와르르 아침에 나가면 아무것도 없고. 그러니까 동생되는 사람이 아휴 난 여기서 무서워서 못산다고 가버렸어. 형수가 장수라고.

 

전쟁 때는 사람사는 거 아니야. 우리 큰 형도 끌려갔어. 뭘로 끌고 갔는지도 몰라요. 인민군이 끌고 갔으니까. 밤 10시에 들어와서 잡아갔는데 그 후로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고. 쭉 행방불명으로 있다가 내가 몇 년 전에 법원에다가 인우보증 받아서 사망처리했어요. 그때 그놈들이 끌고 가서 본 사람도 없고 소식도 없고. 우리 형이 그렇게 잘생겼었대요. 우리 사촌 형님 댁에 형수님이 시집을 오셔가지고 계수리 우물 근처에서 우물을 긷고 있는데 우리 형이 들어왔었대. 형수님이 나중에 얘기하시는데 세상에 뭔 남자가 그렇게 잘생겼냐고. 반하겄다고 그랬대요. 돌아가신 우리 사촌형님이 그러셨어요. 근데 내가 사진을 봐도 진짜 잘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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