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부녀회
여성 중심의 마을 조직체이다. 주로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8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을 펼쳐나갔다. 능안말의 이영심씨는 절미운동, 산아제한 운동, 고물모으기 운동 등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셨다.
우리 부녀회 활동을 하느라 고생 무척 했어요. 그때 새마을 운동할 때인데. 동네의 고물은 다 우리가 주웠어요. 폐비닐도 주웠어요. 동네 회원들. 그걸 해가지고 부녀회 자금을 만들었어요. 산아제한 운동으로 배꼽수술을 한 사람도 있어요. 나는 안했지만. 이제 밥 하잖아. 그러면 쌀 한줌이나 두줌씩 퍼서 놔. 그걸 모아가지고 마을 행사할 때 떡하구 했어. 또 새마을 사업하면 마을 안길 넓히기 할 때 돌을 한 쪽으로 모아서 놔. 이렇게. 여자들도 했어요. 그리고 퇴비. 남자들은 위에 올라가서 풀을 주로 쌓구, 여자들은 풀을 베어다가 퇴비장 아래에 놓지. 퇴비를 잘 해서 우리 마을이 1등 상을 타기도 했어. 어디서 준 상인지는 몰라.(이영심 구술, 194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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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부녀회장 위촉장(이영심 제공) © 심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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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요 지명 이야기
마을의 지명중에서 인왕지골, 죽순논 고사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한마디로 비참하고 암울했던 과거의 시대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뱀동산 고사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풍수사상 단면을 읽을 수 있으며, 황톳재 고사는 근대화되기 전까지 우리 실생활에 뿌리 내렸던 토속신앙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봉재산 약수터 고사를 통해 봉재산에 경외심을 갖고 살았던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능안말이 물이 없어 농사짓기가 어려웠던 지역임을 시사해주는 지명도 있다. 칠성배미와 아랫말 저수지다.
■ 인왕지골
산모가 집에서 애를 낳아야 하는데 집에서 낳을 수 없는 형편이야. 옛날에는 소를 키울 때 소하고 사람하고 같이 안 나아. 애기 엄마가 잔디가 좋은 데가 있어. 풀밭이지. 거기서 낳은 거야. 가뜩이나 못 먹었는데, 낳고 보니 자기가 죽을 지경이야. 그러다보니 왠 요만한 고깃덩어리가 있는거야. 다 먹고 나서 정신차려보니까. 자기 애야.(이동호 구술, 1940년생)
■ 죽순논
이 앞에 고철이라고 써 있는 곳이 죽순논이야. 먹을게 없구. 땅덩어리만 있구. 바짝 마른 데에 곡식하나 건져 먹을 게 없어. 아주 건답이야. 식구들 굶어 죽을 지경이야. 팥죽 한 그릇만 달라구해서. 논 하구 팥죽하고 바꿔 먹어서 붙여진 이름이야.(이동호 구술, 1940년생)
■ 뱀동산
떼뱀이 바글바글해. 산줄기가 뱀 모양 길게 생기고, 뱀머리 모양 뭉쳤다구. 뱀 모양을 닮은 지형에다 뱀도 많았어. 뱀산 정상에 묘를 쓰지 마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에 썼다가 졸딱 망했어.(이동호 구술, 1940년생)
■ 황톳재
신지농원 일대를 잿배기라고 했어. 잿배기에서 능안말로 넘어오는 고개 양쪽에 나무가 있었는데, 미신으로 거기에 뭐가 주렁주렁 매달려서. 교회가 들어오면서 이름도 황현교회라고 했어.(이동호 구술, 1940년생)
■ 봉재산 약수터
능이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그러시더구요. 우리는 못 봤어요. 봉재산에다가 제를 지내고 그랬거든. 돌로 쌓아논 제단이 있었다구. 큰댁 할어버지가 쌓아놓구 지내고 그러셨어요. 봉재산 올라가다가 샘이 있어. 그 물을 떠다가 큰댁 할아버지가 정성을 드렸대요. 그분이 개인적으로 지낸거죠. 큰댁 할아버지는 이기천씨죠. 그전에 나무하거나 나물 뜯으러 가면 마시구 그랬어. 몸에 좋다구 떠다 먹구그랬어. 지금은 안마셔, 아마 없어졌을 거야.(이철수 구술, 1952년생)
■ 칠성배미
칠월칠석날 모를 냈다고. 칠성배미라고 했대. 103번지. 저수답이라고 했지.겨울에 물을 가둬놨다가 봄에 농사지을 때 물을 빼고. 뱀이 많아서 뱀산, 뱀밭이야. 물뱀이라고 떼뱀이 많았어. 뱀산 뒤도 저수답이었는데, 그게 더 컸지. 큰논이라고 했어.(이철수 구술, 1952년생)
■ 아랫말 저수지
작인들이 물 쓰기 위해서 저수지를 만든거야. 저수기가 없어지니까 돈이 몇 천만원 나올거야. 토란이에도 있었구. 뱀산에도 있었구. 저수뚝만 동네 사람들이 산거야. 공동명의로 되어있었지. 1통 가운데말에도 있었지. 계도 모아가지구. 뱀산 앞에 있는 것은 아랫말 저수지야. 크기는 제일 적었어. 뚝만 있는거야. 수문도 없구. 모 낼 때 쓰는거야.(이홍구 구술,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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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말 저수지와 제방 자리(사진속의 도로가 제방이며 도로 오른쪽이 저수지) © 심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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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옛날 마을 풍경
■ 한국전쟁
1950년의 한국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능안말 사람들이 겪은 한국전쟁은 어땠을까? 마을 파괴, 피란, 궁핍한 생활 등 다른 곳과 다름없는 상황을 이 마을 사람들도 겪었다.
6.25때에는 빨갱이들이 불을 놓구 그랬는데. 신흥동까지 놨어. 더러 몇집. 여기부터는 하나두 않놓구. 그전에는 그렇게 집에다가 불을 놨어. 그전에는 집을 짚으로 엮어 놨으니 금방금방 타니까. 전부는 않농구 뜨문뜨문 몇집씩 놨어. 6.25때.(이홍구 구술, 1935년생)
18살에 무지리에서 능안말로 시집을 왔네. 신랑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어요. 아버지끼리 얘기해서 한거죠. 가마타고 왔어요. 결혼하자마자 전쟁이 났어요. 피란가서 큰딸 낳었요. 평택 안중에서. 깜깜한데 불도 못 켜고 큰 동서가 밥해줘다 먹구. 신랑은 군인 나갔지. 피란 같이 간 사람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들이랑 같이 갔죠. 걸어갔죠. 안중이 시아버지 큰댁이예요.(이교숙 구술, 1931년생)
■ 토지 구입
재산목록 제1호. 과거에 우리나라 농촌 어디에서든지 소는 사람대신에 논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장정 2~3명의 몫을 해내는 일꾼 이었다. 거기에다가 암소는 송아지를 낳아주니 일거양득이 아니었겠는가? 능안말에서도 토지를 구입하는데 소를 팔아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전에는 소 1마리만 팔아도 천평을 샀어요. 난 땅을 무섭게 많이 샀어. 집사람이 금반지 팔구, 돼지하구 소도 팔아서 사구. 토지개혁에 들어간 것도 1천 200평사구. 600평도 쌀 3가마주고 샀어. 그전에는 땅값이 쌌어.(이홍구 구술, 1935년생)
■ 머슴
조선후기 농업생산의 변동으로 인한 농촌 사회의 몰락과 노동집약적인 농사 방식에 따른 노동 인구의 필요성에 따라 머슴 제도가 유지되어 왔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일제강점기의 토지수탈, 한국전쟁에 따른 고아와 무의탁, 흉년에 따른 농촌경제의 파탄에서 비롯된 생계유지의 필요성에 의해 머슴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능안말에서도 이런 예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전쟁끝나구는 이북사람들이 많이 이리로 왔잖어. 여기도 1년에 쌀 한가마 받고 일 해주는 사람이 있었어. 일종의 머슴이지. 많이 받는 사람은 5가마도 받았지만. 우리도 몇 년을 그 사람들을 쓰고 그랬어. 갈 때가 없으니까 잠재워주고 먹여주고. 전쟁직후에 이런 사람이 많았어. 나는 한 사람을 두고 썼어.(이홍구 구술, 1935년생)
■ 동티 예방
집에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거나 했을 때 집안에 나쁜 일이 생겨서 해를 받게 되는 것을 ‘동티났다’고 한다. 이런 동티를 예방하기 위하여 임금 왕자를 붓으로 써서 붙여 놓으시는 경우가 있었다. 일종의 주술적 믿음인데, 능안말 이홍구 씨 댁 대문에 임금 왕자를 써서 붙인 종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붙인 연유를 다음의 구술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문 앞에 임금왕자를 붙인 이유는 절에서 부적으로 준거야. 물건이 들어오면 사용하면 저거하니까. 임금왕자를 붙이면 예방된다는 거야. 물건을 사오거나 이사오거나 이러면 왕자를 거꾸로 붙여놔. 옛날에는 뒬안에 터주가리가 있었지. 지금은 없앴고. 그냥 없애버렸어.(이홍구 구술,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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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안말 이홍구 가옥의 출입문에 부착된 임금 왕(王)자 © 심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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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골 참외
조선시대에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유명한 참외가 있었다. 바로 오류골 참외다. 1970년대까지도 전국적으로 소사 복숭아, 오류골 참외, 성환 배가 과일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다. 능안말도 그 유명했던 오류골 참외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는 참외의 주산지인 오류동과 과림동 능안말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노란색의 참외는 일본에서 들여온 참외로 ‘왜참외’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오류골 참외는 청색의 단맛이 진해서 ‘청참외’라고 했다. 왜참외에 비해서 보존 기간이 짧은 것이 흠이었다.
처음에는 상참외야. 노란거야. 개구리, 꾀꼬리 참외야. 청참외도 있구. 다양했지. 목구녁 풀칠하려고 한거지. 건답인 곳에 참외를 심기도 했지. 소변이 잘 안나오는 사람은 참외 서너개 먹은면 되구, 황달에는 참외 꼭지가 최고구. 과학요법이 발달해도 민간요법이 제일이여. 5.16이후에 없어지기 시작했어(이동호 구술, 1940년생)
■ 매끼꼬기
현대적인 합성수지의 밧줄이나 노끈이 등장하기 전까지 농공용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줄이 ‘매끼’다. 이를 ‘새끼’라고도 부르며, 짚을 이용하여 농한기나 우기때 주로 꼬았다. 처음에는 손으로, 1970년경부터는 족답식의 기계로 생산했다. 능안말에서는 한국전쟁후에 부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매끼를 만들었다. 이교숙씨 남편 같은 경우는 중간도매상 역할을 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렸고, 이를 기반으로 땅을 사고 소를 사서 자수성가를 하기도 하였다.
독산동 태평양화학에 줬어. 끈도 없구. 나일론 끈은 미끄러운데 매끼는 미끄럽지도 않고.(이동호 구술, 1940년생)
초등학교 1~3학년 때 겨울에 매끼를 꽜어요. 기계로. 동네분들도 몇 분하시는 것 봤어요. 우리도 4~5학년까지 한우와 젖소를 같이 키웠었죠.(이경길 구술, 1974년생)
1965년경에 매끼 장사를 하셨어. 매끼를 많이 했다구. 동네 사람들이 꼬면 남편이 매끼를 팔러 갔어. 회사에 납품하겠죠. 그래서 돈을 벌었죠. 내가 꼬고 남이 꼰 것 제 사다가, 매화리로, 중림으로 사러 댕겨서, 한 차 되면 한차 실고 영등포로 팔러 나가죠. 그러면 돈이 되죠. 영등포에 사는 사람이 있지. 매끼장사를 오래하셨어. 차를 빌려서 한거죠. 운반비만 주고. 그것으로 소를 사서 돈을 벌었지. 가마니는 내가 시집 오기전에 짰지. 무시로지. 엉성하게. 장날 내가구 그랬어. 일도 참 많이 했어. 저녁에 밥먹구 앉아서 방에서 새끼꽈서 뒤에다 이렇게 길게 뽑아 싸놓고 그걸 이렇게 이렇게 감아. 손으로 꼰 거야. 집집마다 기계가 다 있었지. 기계로 꼬는 것은 새끼가 굵어. 손으로 꼬는 것은 가늘어서 무시로 치고, 가마치지. 두 개다 했어. 할아버지는 현금도 많이 갖고 다니셨지. 살 준비 해야 하니까. 번 돈을 가지고 소도 사구, 땅도 사구. 옛날에 먹이던 축사는 지금 세주고. 지금도 막내아들이 15마리 비육우를 키워요. 자수성가하셨어.(이광호 씨 부인 구술, 0000년생. 이교숙 구술, 1931년생)
■ 영등포 시장에 가기
1931년 12월 15일 영등포역 앞에 공설시장을 개시하였다.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매우 붐볐다. 이 영등포 시장은 능안말 사람에게도 매우 중요한 삶터였다. 영등포까지의 거리는 약 30리로 주요 물품을 구입 및 판매하기 위해서 이용하였다.
능안말에서는 겨울철 땔감을 해서 집에 쌓아 놨다가 다음날 새벽에 지게에 지고 걸어서 갔다. 동이 틀 무렵이면 서울의 도림시장에 다다랐고 그곳에는 각지에서 온 땔감장수들로 땔감시장인 시탄장(柴炭場)이 섰다. 여기서도 해온 나무를 팔지 못하면 영등포 시장까지 가서 팔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장수도 했다. 김장 김치를 먹다가 남으면 3번 버스를 타고 영등포 시장에 가져다가 팔았다. 다라에 담아서 영등포의 반찬 집에 넘기는 것이다. 그걸로 생활용품을 사가지고 귀가를 했다. 또한 꽈리고추, 호박, 오이 등 갖은 채소류도 시장에 파는 주요 품목들이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70~80대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성택중학교 다니면서 갈 때는 버스타고, 집에 올때는 걸어오고 했죠. 아침에 갈 때 차는 붐볐어요. 고추, 호박을 팔러 영등포시장, 그런 곳에 팔러 나가서 짐하고 학생들하고 짬뽕되었죠.(이점균 구술, 1961년생)
■ 세찬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 상부상조의 조직체가 계(契)이다. 계의 종류는 다양하다. 문중계, 동갑계, 제언계, 금계 등. 능안말에도 이런 계가 있었다. 설날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계를 만들었는데 세찬계(歲饌契)가 된다. 능안말에서도 세찬계를 구성하여 돼지를 잡고, 집집마다 몫을 나누어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옛 이야기다.
지금은 계 이런 것 없어. 팔러 들어오는 장사도 못 들어오게 해. 그전에 정월에 돼지 잡으면. 지푸라기에 매서 들구 왔어. (이광호씨 부인 구술, 0000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