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정점에 이르렀다. 기상청은 100년 만의 더위는 없다고 했건만, 체감온도는 살아오면서 기억된 더위 중 최강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시간을 6개월 전으로 되돌려 보았다.
올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방송하던 날, 영하 12도에 체감온도 영하 25도였던 2005년 2월 1일 제부도로 들어섰다. 겨울이면 바닷물이 언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입구부터 얼음 바다였다. 제부도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고래바위가 보였다. 처음 이 바위를 보았을 때, 그 모양이 마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다니는 동그라미 같기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고래 같기도 해서 '고래바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위 앞쪽에는 얼음덩이들이 둥실 떠 있었다. 생경하고도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얼음덩어리를 만났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갑자기 얼어붙은 제부도의 얼음은 거품 같기도 했고, 만지면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며 미끈거렸다. 쨍한 기운이 감도는 민물 얼음과는 또 달랐다.
고래바위의 뒷모습이다. 앞에서 보면 고래가 입을 벌린 형상이었는데, 뒤쪽은 다정한 연인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얼음 목도리를 두르고 귓속말을 나누는 듯했다. 고래바위의 옆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애로운 관음상의 얼굴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매와 코, 두툼한 귓불까지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떤 형상을 만나는 것은 순간의 눈길이다. 그렇게 자주 제부도를 왔건만, 늘 고래바위라고만 불렀던 그 바위에서 바다를 향해 눈길을 던지고 있는 관음상을 이제야 만난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특별한 만남이었다.
뒤쪽으로 돌아 나오니 사찰에서 오신 듯한 복장의 신도 한 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앞쪽으로 가시면 관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이쪽에서 엄청난 기운이 뻗쳐 나와 찾고 있었습니다!"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앞쪽으로 가셨다. 여행이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옷깃 스치듯 만나는 사람과 풍경 덕분이다.
관음상 바로 뒷면에서는 고릴라의 모습을 발견했다. 고릴라 상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도 이처럼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홀연히 떠나는 여행이 즐거운 것은, 번개를 맞듯 예고 없이 마주하는 풍경과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길은 오고 가는 것이 한 선상에 놓여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내가 어느 쪽을 향해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제일 춥다는 예보만 듣고 떠났던 그날의 제부도 얼음 바다 여행은 여러 형상과 사유가 합쳐진 귀한 하루였다.
중복 더위가 벌써부터 찌는 듯하다. 그러나 이 더위 또한 6개월 후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더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더위를 피해 추운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추워지면 다시 더운 나라로 떠날 테니, 늘 도망 다니는 나그네가 아닌가 싶어 잠시 웃음이 났다.
사람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이 여름 더위를 100번 만나기 힘들 터인데, 그마저도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났다. 이것이 100년 만의 더위라면, 1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혜성을 만난 기분으로 당당하게 맞이하려 한다. 지질하게 도망 다니지 않고 이 여름을 제대로 느끼며 지낼 것이다.
더위야, 맘껏 네 세상을 펼쳐봐라. 나는 이미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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