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시인의 강의를 듣다

"모든 시는 집과 길의 관계에서 태어난다.’"

이연옥 | 기사입력 2017/04/21 [03:21]

김명인 시인의 강의를 듣다

"모든 시는 집과 길의 관계에서 태어난다.’"

이연옥 | 입력 : 2017/04/21 [03:21]

   

▲ 김명인 시인     © 최영숙

 

요즘 명사들의 강의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훌륭한 시를 쓰고 가르쳐서 많은 후학을 길러낸 김명인 시인이자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어서 행복했다. 지난 420시흥문화원의 인문학강좌 유종인, 이문재, 이승은 시인에 이어서 네 번째 강의를 들었다.

 

김명인 시인은 거장 시인답게 강의의 첫 관문을 시를 쓰게 하는 계기는 어떤 것들인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다음으로 시가 태어나는 자리, 시는 어디서 오는가, 까지를 아울러서 강의를 하였다.

 

시인은 우연치 않은 발견과 경탄이 시를 쓰게 한다. 라고 말하면서 발견하고 경탄한 것을 시를 통해서 관찰하고 사색하고 기억이나 질문, 그리고 어떤 추이, 상상을 통해서 여러 방식으로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서정시라고 이야기한다.

 

그 봄 청도 헐티재 넘어

추어탕 먹으러 갔다가,

차마 아까운 듯이

그가 보여준 지슬못,

그를 닮은 못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 이성복,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이 시에서처럼 추어탕을 먹으러 갔던 길에 보았던 지슬못에 대한 시인의 감상과 생각의 둘레를 살피게 하는데 제목이나 제재, 비유, 전고, 화법, 리듬을 통해서 시인이 가졌을 법한 발견과 경탄을 헤아리고 그 심정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연히 마주친 못 하나가 시를 자극해서 한 편의 시를 쓰게 한 것처럼 서정시의 계기는 곳곳에 널려있다고 한다. 이러한 계기, 즉 경탄과 갈등을 시라는 형식으로 전환시켜 마치 드라마처럼 구체화하여 확장시켜서 독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 김명인 시인을 만나다     © 최영숙

 

두 번째 질문으로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어딜까.’ 사람들의 모든 환경이며 삶이 시가 되겠지만 삶의 근거인 집과 길, 거소와 행려야말로 서정시의 확실한 태반이라고 말하신다. 인간은 집과 길에서 지낸다. 집과 길의 관계. 이것들이 문명의 자취다. 시는 삶을 모아도 흩어도 놓는다. 집과 길이야말로 인간이 살아내는 시간과 경험의 집체이기도 하다. 탄생과 죽음, 출발과 종착, 이런 것들, 삶의 과정, 시를 쓰는 사람치고 집과 길에 관한 시들을 남겨 놓지 않는 시인이 어디 있겠는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통하여 집과 길의 출발과 도착, 그리고 그것을 헤아리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하신다. 거기에서 한 젊은 시인 윤동주의 탄생과 죽음을 겪어 내야만하는 시인 자신의 길을 이야기한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주체의 흔적을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뚜렷한 윤리적인 길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살려는 그의 이상. 거기에는 누구나 선뜻 내딛기 두려운 비장한 길일 테지만 이 시인에게는 회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김명인 시인이 좋아한다는 김명수의 시 월식에서도 그 길은 분명히 있다.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욱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

- 김명수, 월식(月蝕)

여성성을 담은 이 시에서도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삶의 길을 읽어낼 수 있다. 월식이라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삶의 한 비극을 지극히 간명한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다.

시인이 제시한 집과 길을 구체화한 서정시 두 편을 감상하였다. 백석시인의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과 이명인 시인의 아버지의 고기잡이를 옮겨본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단체사진을 담다     © 최영숙

 

 

열목어의 눈병이 도졌는지,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 내 어로(漁撈)가 궁금해지신다

그러면 나, 아버지의 계류에서 다시 흘러가

검푸른 파도로 솟아 뱃전을 뒤흔드는 심해에

낚시를 드리우고 바닥에 닿는

옛날의 멀미에 시달리기도 하리라

줄을 당기면 손 안에 갇히는 미세한

퍼덕거림조차 해저의 감촉을 실어나르리라

알 수 없는 요동으로 떨려올 때

물밑 고기들이 뱉어놓은 수많은 기포 사이를

시간은 무슨 해류를 타고 용케 빠져나갔을까

건져올린 은빛 비늘의 저 선연한 색 티!

갓 낚은 물고기들 한 겹 제 물 무늬로 미끈거리듯

아버지의 고기잡이는 그게

새삼 벗어버리고 싶어지신 걸까

마음의 갈매기도 몇 마리 거느리고

바다 생살을 찢으며 아침놀 속으로

이 배는 돌아갈 테지만

살아 있음이란 결코 지울 수 없는 파동, 그 숱한 멀미

가득 실었다 해도

모든 만선(滿船)은 쓸쓸하다, 마침내 비워내고선

무얼 싣기도 버거운 저기 조각달처럼!

 

 

- 김명인, 아버지의 고기잡이

 

 

김명인 시인은 삶의 길에서 어렸을 적 아버지로 인해서 행복했던 시절과 6,25 이후의 불행이 있는 가족사를 가슴 아프게 이야기한다. 예전에 몰랐던 아버지의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시인의 시 아버지의 고기잡이를 쓰게 되었고 나이 들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백석 시인의 시는 가족을 떠난 외로움과 삶의 길에서 겪는 고뇌이어서 김명인 시인이 삶의 가파른 고비에 몰려 고심할 때나 물리칠 수 없을 때, 회한으로 마음이 아플 때 위의 백석의 시를 떠 올린다고 한다. ‘내 뜻이며 내 힘으로생을 끌고 가기가 힘이 부친다고 느꼈던 백석의 자의식과 고백이 어떤 전경이 되어 김명인 시인에게도 절절하게 사무쳐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인 또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 김명인 시인에게 싸인을 받는 이연옥 시인     © 최영숙



시는 어디서 오는가?

 

 

미국으로 망명한 일리야 카민스키의 시에서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 “시는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란다.”/ “빛이 단어들로 굳어지는 걸 지켜보아라,”//

1987년 노벨상 수상시인 요십 브로드스키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시인이 시어를 고르고, 시는 써진다. 그래서 언어 존재 수단이 된 시인은 언어가 귀뜸 해주는 대로 혹은 단순히 불러주는 대로 따른 뿐이다.

1, 내용이 아니라 문장을 이룰 것,

2,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나야 한다.

3, 팩트 간의 관계를 강제하지 말 것

4, 해체와 생성의 과정을 담을 것

5, 속내가 보이는 글을 삼갈 것

 

가슴 속에 담고 깊이 새겨야할 일들이다. 또한 시인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로 용기, 독립심, 상상력, 감수성을 든다. 그러므로 개척의 정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되고 만다. 그리고 감수성으로 인하여 불화의 세계에서 화해를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삶의 생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를 쓰는가

정녕 시는 집과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그는 꼬집어 준다. “길 떠난 사람은 이미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삶이 두렵게. 긴장하면서,

인간은, 삶을 시작한 나그네는, 아마 길 떠난 사람이므로 잠잘 곳과 쉴 곳이 새삼 염려되지 않는다. 여행자의 시편은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히는 삶의 총체성에 닿아있고 완성을 그리워하는 영원한 향수 속에서 고독하다고 하면서 강의는 끝을 맺는다.

 

시인의 강의 들으면서 시는 끝내 길을 떠나지 못한다고 한 말에 당연히 공감을 한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 이성복의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처럼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가 지슬못을 보고 경탄하여 시를 짓듯,

나는 어쩌다 만난 내 삶에서 자주 지슬못을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 곳에서 발견과 경탄으로 시를 썼는지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다. 그렇다. 집과 삶의 길, 관계에서 만나는 발견과 경탄, 이런 것들이 내 시의 주류가 될 진대,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진정한 의식이 또렷하게 있어주어서 내 시의 진정성이 살아나길 바라는 시간이었다.

 

 

 

김명인 시인의 프로필

 1946년 경북 울진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 1973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동두천(東豆川)(문학과 지성사, 1979), 머나먼 곳 스와니(문학과지성사, 1995), 물 건너는 사람(세계사, 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문학과지성사, 1994), 바닷가의 장례(문학과지성사, 1997), 길의 침묵(문학과지성사, 1999),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2002), 파문(문학과지성사, 2005) 등이 있음. 1992년 제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1992년 제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2000년 제45회 현대문학상 수상. 2001년 제13회 이산문학상 수상. 4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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