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렬 시인의『지워달라는 말』

지움의 흔적 속에서 끌어올린 삶과 생명의 숭고함

시흥장수신문 | 기사입력 2026/08/13 [18:41]

최준렬 시인의『지워달라는 말』

지움의 흔적 속에서 끌어올린 삶과 생명의 숭고함

시흥장수신문 | 입력 : 2026/08/13 [18:41]

▲ 최준렬 시인의 제8시집『지워달라는 말』  © 시흥장수신문

 

최준렬 시인의 제8시집 『지워달라는 말』은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인생의 후반부를 통과하는 한 인간으로서 담담하게 써 내려간 생(生)과 사(死), 그리고 사랑에 관한 깊은 고백이다. 시집 전반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노화’와 ‘은퇴’,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이 짙게 베어 있다.

 

제목이기도 한 「지워달라는 말」에서 화자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기를 지워달라며 찾아온 이의 서글픈 현실을 마주한다. 산부인과 의사인 시인은 그 가슴 아픈 침묵 속에서 단순한 의료적 행위를 넘어, 생명의 존엄성과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을 깊이 반추한다. 지우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삶의 자국들을 억지로 어쩌지 못하고, “그냥 안고 가기로 했다”는 시인의 말처럼, 시집 속 시편들은 비움과 내려놓음을 통해 비로소 도달하는 내면의 평화를 보여준다.

 

또한 시인은 병원이라는 직업적 공간에만 갇히지 않고 현시대의 아픔과 역사적 상흔으로 시선을 넓힌다. 백두산 천지에서 남북의 평화를 염원하고, 블라디보스톡 공항과 항구를 거치며 전쟁의 비극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는다. 이러한 확장성은 개인적 회고를 넘어 공동체적 대애(大愛)로 승화된다.

 

문학평론가 신수진의 해설처럼, 이번 시집은 불교의 ‘심우도(尋牛圖)’처럼 자신을 얽매던 욕망을 비워내고 타인과 세계를 향해 온전히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월의 아픔을 보듬는 시인의 정갈하고 따뜻한 시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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