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잠시잠깐이었다고 할 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쉬운 삶이 어디 있을까?
▲DSLR 특별하게 사진찍기 [다중노출] 중 ©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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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더 배우고 싶어서 맘속으로 원했다. 공짜라도 좋으니 내가 필요한 디지털사진 출력소에서 일을 했으면, 일 하는 동안은 포토샵도 배우고, 인디자인도 다룰 줄 알게 되면 더 없이 좋을텐데.
우연히 알게 된 사진출력소에 출근을 하게 되고, 경기서울지역의 사진사들이 찍어 온 사진을 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사진스승은 저명한 박사님, 교수님이 아니고 진정한 사진가들이 찍어 온 한 장의 사진에서 배우는 거다. 수도 없이 많은 작가들의 사진을 트리밍에서부터 고급리터칭까지 하면서 내 눈은 이미 보통의 사진사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라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들이 치르는 전쟁 속에서 나는 알고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따지고 묻고, 함께 뒤죽박죽이 되어 나의 입장을 밝히고 싶었지만, 나 살자고 다른 몇몇을 비판대에 또 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그것도 세월이 약이다.
출근을 하면서 일주일에 평일 하루를 온전히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전공만 배우는데도 무려 4년이나 걸렸다. 그래도 장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그마하게 사진공방을 열었다. 그동안 쌓아 온 사진출력 솜씨, 그리고 도록이나 리플렛 작업들을 소소하게 하면서 나만의 여유가 생겼다. 밤낮으로 사진프린트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계속 찾아오는 사진작가들과 작업 논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공방을 차리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사진이야기를 하다가 진전이 되어서 사진 강의를 하게 되었다. 사진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는 내 삶의 작은 떨림이 되었다. 부족했지만 진지하게 수업 진행을 했다. 조금씩 가까운 곳에서 사진하는 이들과의 연결고리가 넓어졌다.
▲ 사진집 [막장, 조용하고 느리게] 중 ©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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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전자책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 십오륙 년 동안 찍어 온 사진이 외장하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것들에게 빛을 보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전자책이 정답이라는 생각이다. 종이책은 초도비용이 많이 든다. 팔릴지 어떨지 모르는데 투자를 하기엔 자신이 없다. 스스로 만들어서 세상에 내 놓으면 팔리면 팔리는 대로 뿌듯하고, 안 팔리면 나름대로 한 권의 책을 낳았다는 성취감을 가지면 된다.
▲ 포토에세이 [오후 3시, 그곳] 중 ©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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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보니 이젠 주절주절 글이 쓰고 싶어졌다. 너무 바빠 쉽게 쓸 수 있는 메모 몇 줄 써 주면 되는 청탁도 사양했었는데, 내 맘이 변했다. 어쩌면 방황을 그만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장수신문이 떠올랐다. 시민뉴스에서 장수신문으로 바뀔 때 몇 번의 권유도 받아들이지 못 했다. 맘이 바빠서. 내가 뛰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서.
어젠 스스로 돌아오겠다고 먼저 연락을 했다. 방 청소 하고, 문 열어 주셔서 무지 감사하다. 내게 허락된 이 공간은 전자책을 내기 위한 초고의 방이 되면 좋겠다. 사진스킬도 좋고, 포토에세이도 좋고,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잘 엮어 보고 싶다.
엊그제 본 영화 양자물리학에서 생각한 것이 현실로 되는 관계, 그 관계의 파장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오이도어시장에선 전어를 굽고 나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코를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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