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숟가락
이상애 | 입력 : 2018/04/28 [22:25]
엄마와 함께 한 금토일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는 쉴 새 없이 기침과 재채기를 하셨고 가래를 뱉으셨다. 그렇지 않으면 진물과 핏물이 흐르는 상처에 멸균가제를 20분마다 갈으셨다. 웃음소리는 없었고 아픔을 속으로 참는 소리가 있었다. 새벽이면 기침소리는 더 심했고 암세포와 싸우는 엄마의 앓는 소리도 커졌다.
목 디스크에 누워서도 잠을 못 이루던 나는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드렸다.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엄마 잘도 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엄마의 기침소리는 잦아들고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는 나를 안심시키고 나도 잠시 잠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금요일 엄마가 누워있는 방문을 여는 순간 환자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난 엄마에게 그간 안부를 웃으며 물었고 그다음엔 창문은 열어 환기시키고 식초물을 탄 수건으로 방바닥을 닦고 속옷을 모두 새로 빨아 후끈거리는 방바닥에 널었다. 방안엔 신선한 바람과 섬유유연제 향이 섞여서 더 이상 환자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지 엄마는 내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프신데도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셨고 속옷도 손수 빨으셨다. 엄마의 오른쪽 발이 시커멓게 변하고 피부에선 각질이 일어나 방안에 하얗게 떨어져 있던 날. 참지 못할 간지러움에 긁으셨는지 한쪽 다리에서 핏물이 흐르는 것을 본 날 처음으로 엄마의 몸을 내가 씻겨드릴 수 있었다.
지나고 나니 그날이 제일 행복한 날이었다.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엄마 몸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셨다. 더군다나 피부에 드러난 암세포는 아버지에게도 보이는 것을 꺼리셨다. 그런 엄마의 발을 씻겨드릴 수 있는 기회가 내겐 행운과 같았다. 엄마가 처음으로 온전히 내게 당신을 맡기신 날이라서. 엄마를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내게 있어서. 나는 좋았다. 그날 이후 기력이 많이 떨어지신 엄마는 주말마다 당신의 몸을 씻어드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병원에 입원해서 간병인이 있었지만 금요일 저녁엔 꼭 여기 닦아달라 저기 닦아달라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다 그냥 덮어버린 환자가 있는 집은 늘 침울했다. 완벽하게 나을 수 있는 치료약도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밥처럼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하며 가족은 환자가 불편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밖에 없어 희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엄마가 퇴원한 날 친정집에서 기다리는 날 본 아버지는 네가 집에 있으니 집안이 환해서 좋다고 기뻐하셨다. 감정표현에 둔하신 아버지가 그런 표현을 하시는 것을 보니 엄마를 간호하면서 많이 약해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집에도 엄마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30분 넘게 이어졌던 날이 있었다. 내가 엄마 루즈로 눈썹을 그렸던 날이었다. 엄마는 60세에 찍어 둔 영정사진이 마음이 안 드셨던 모양이다. 손자 돌에 찍은 가족사진으로 영정사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었다. 그래서 그 사진이 왜 마음이 안 드냐고 여쭸었다. 칙칙한 저고리 색이 마음에 안 드시냐고 했더니 웃기만 하셨다.
“엄마, 눈썹이 일자네. 눈썹 반달로 그리는 거 숟가락만 있으면 되는데...”
난 주방에 가서 숟가락을 가져와 엄마의 루즈로 한쪽 눈에 숟가락을 대고 그대로 그리고 숟가락을 떼었다.
“엄마, 엄마 눈썹 그려준 분이 숟가락만 있었으면 이렇게 잘 그렸을 텐데....”
그랬더니 엄마가 막 웃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슨 좋은 일인지 방문을 여셨고 난 다른 쪽 눈에 숟가락을 대고 눈썹을 또 그렸다. 그랬더니 아버지도 웃음보가 빵 터지셨다. 그 모습이 그렇게 웃겼을까? 아버지와 엄마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시면 30분 넘게 웃으셨다.
그날이 병원에서 퇴원한 후 처음 우리 집에 웃음꽃이 핀 날이었다. 엄마가 웃으니 아버지는 더 좋아하셨다. 그래서 난 숟가락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숟가락 하나로 엄마가 잠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다음엔 무엇으로 엄마를 웃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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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young |
18/04/29 [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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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고통이 가장 심하셨을 때, 어머니 숟가락 하나 만으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딸의 마음을 아셨기에, 서로 감싸안은 가족분들의 깊은 사랑을 봅니다. 어머님이 떠나시고 슬픔이 깊겠지만, 생전에 온 정성을 다한 샘의 마음을 어머님은 온전히 받고 가셔서 "고맙다. 사랑한다"고 하실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어머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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