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온통 착한 벗들
동우 | 입력 : 2018/03/17 [08:17]
無窮山下泉
마르지 않는 산중의 맑은 샘물을
普供山中侶
산중에 사는 벗들에게 널리 공양 올리노니
各持一瓢來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總得全月去
모두 다 온전한 둥근 달 건져들 가시게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이 완도 고금도에서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자신의 아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초의스님을 일지암으로 찾아가 만나고 지은 시라고 전해진다. 일지암 유천(乳泉)의 물로 우려낸 초의의 차맛과 그의 인품에 대한 찬사였을 것이다. 부친이 궁금해 할 정도로 추사와 초의는 매우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들 사이에서 오간 편지와 시편들은 옛 사람들의 질박하고 멋들어진 풍취가 넘쳐난다.
“큰눈이 내리고 차를 마침 받게 되어 눈을 끓여 차맛을 품평해 보는데 스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더욱 한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송나라때 만든 소룡단(小龍團)이라는 차 한 개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보물입니다. 이렇게 볼 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한번 도모해 보십시오. 너무 추워 길게 쓰지 못합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소동파의 생일날 과천 사람이’라는 편지다.
초의스님은 추사가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자 ‘완당김공제문’(阮堂金公祭文)이라는 글로 슬픔을 적는다.
“오호라 그대와 나의 42년 동안의 아름답던 우정이여. 그 우정일랑 다음에 저 세상에서도 오래 오래 이어나가십시다. 나는 그대의 글을 받을 때마다 마치 그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그대와 만났을 때는 진정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대와 나는 손수 뇌협과 설유를 달여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 슬픈 소문이 귀에 닿으면 적삼 옷이 함께 젖기도 했습니다. 슬프다. 그대를 먼저 떠나보내는 나의 애끓는 심사여. 황국이 다시들고 흰눈이 내리는데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늦게 그대의 영전에 당도했을꼬. 원망일세 원망이로세.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해도 오직 그대는 나의 심사를 알것입니다.”
둘 사이의 막역하고 애틋한 우정이 부러울만큼 마음 따뜻하다. 불교에서도 함께 수행하면서 탁마하는 친구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이 친구를 지칭하는 말로 도반(道伴)과 선지식(善知識) 또는 선우(善友)가 있다. 도반은 ‘함께 구도의 길을 가는 동무’라는 뜻이고 선지식은 ‘좋은 스승이 되는 벗’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이렇게 친구를 멋진 표현으로 부르면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역사가 자못 길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어느 골짜기 작은 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아난다도 이 골짜기의 어느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는 데 그는 문득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나에게 좋은 친구가 있고 또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은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마도 내 수행의 절반은 좋은 친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아난다는 명상에서 일어나 부처님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며 부처님의 의견은 어떠한지를 여쭈었다.
“아난다야, 네 생각은 틀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좋은 친구와 함께 있으면 수행의 절반을 이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아난다야, 너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너에게 좋은 친구가 있고, 그 친구와 함께 있게 되면 수행의 절반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전부를 이룩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생각이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원만하고 깨끗하고 바른 행동은 언제나 좋은 벗을 따라 다니지만 나쁜 벗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나 좋은 벗과 사귀고 좋은 벗과 함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곁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자기자신의 전부다. ‘나’가 아닌 ‘우리’라는 세상이 곧 나를 둘러싼 ‘곁’이 되고, 다시 ‘나’가 된다. 그래서 우리 곁의 좋은 벗은 행복한 삶의 전부일 수 있다. 우리 곁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곁이 바로 나니까...
이제 산중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난 밤 쏟아진 비로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겨우내 얼었던 어느 옹달샘의 물도 이제 물꼬를 열고 흘러흘러 내려오고 있겠다. 마르지 않는 샘물을 나누고픈 세상의 온통 착한 벗들은 자신들의 보름달을 건져 벌써 마시고 있는 것일까? 자연의 선한 벗들과 도를 함께하는 나의 도반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공양 한번 올려야겠다.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1 |
18/03/18 [22:13] |
|
|
|
운문사에 봄이 움트고 있네요. 공양 잘 하겠습니다..^^ |
|
|
|
최영숙 |
18/03/19 [21:55] |
|
|
|
은은한 매화향이 스미는 듯합니다. 편안하시지요? 늘 고맙습니다~~~ |
|
|
|
|
|
|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