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Ⅳ - 겨울 지리산

김광수 | 기사입력 2018/03/15 [14:34]

지리산 Ⅳ - 겨울 지리산

김광수 | 입력 : 2018/03/15 [14:34]

 

세 가지가 처음이었다. 올해에 지리산에 간 것이 그 하나요, 청명한 날씨로 시계가 좋아 삼도봉에서 천왕봉 조망이 가능한 것이 또 하나요, 바람이 거세어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을 만난 것이 마지막 하나다.

첫 날,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날씨가 아주 좋았다. 새벽 네 시가 좀 못되어 산행을 시작했는데 하늘의 무수한 별은 수도권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임걸령을 지나 삼도봉에 도착하니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끼어 장관은 못 되었지만 날이 밝으면서 시계가 좋아지니 우리가 가야할 목표인 멀리 천왕봉과 중봉이 보인다. 셀 수도 없이 이곳에 왔지만 천왕봉을 조망했던 기억이 없다.

 

▲ 삼도봉에서     © 김광수

 

▲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보이는 능선이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김광수

 

▲   중앙에 천왕봉과 중봉이 보인다. 겨울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김광수

 

▲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김광수

 

▲   첩첩산중- 왕시루봉 방향  ©김광수

 

삼도봉을 출발하여 토끼봉과 명선봉을 향하면서 뒤로 보이는 반야봉의 모습이 역시 장관이다. 나뭇가지에 걸려 사진 작품은 나올 수 없지만 그나마 나뭇잎이 없기에 반야봉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마음먹고 이 위치에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면 걸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열 시경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라면과 밥을 먹었기에 물을 끓여 전투식량으로 대체했다. 이때까지는 기온도 영하 2도여서 봄날인 듯 산행을 하기에는 땀이 많이 나는 날씨였다.(방한복을 입고 있기에 덥게 느껴진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준비하는데 아래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바람과 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잠시 후 기온도 떨어지고 진눈깨비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해 시계가 흐려졌지만 폭설만 아니라면 걱정할 일이 없다. 아니 폭설이라도 많이 다녀 익숙한 길이기에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전진한다면 충분히 길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벽소령까지 가는 길엔 길이 다소 가파르다. 발이 힘이 있어 아이젠을 안 하고 가다 한번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면서 팔이 나뭇가지에 걸려 새로 입은 옷이 좀 찢어졌다. 오리털이 날리기에 손수건으로 묶어 조치를 하고 세석까지는 아이젠 없이 잘 갈 수 있었다. 날씨도 안 좋았지만 평일이고 보니 우리를 앞지르는 사람들은 없고 간혹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몇 사람만 만났을 뿐이다. 벽소령 지나 한 부부가 헤매는 일이 있었지만 두세 시간만 더 가면 되고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아 격려를 하고 지나쳤다.

 

세석 못 미쳐서는 경사가 심한 긴 계단도 있고 약간 가파르다. 등에 흥건히 젖은 땀을 참으며 열심히 가니 4시경에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두 번의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꼬박 열두시간이 걸린 셈이다. 눈에 돌이 파묻혀 길이 나쁘지는 않지만 눈길을 걷는 것이 평길 보다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보아야 한다.

 

역시 저녁식사는 즐겁다. 찌개와 밥을 준비해 먹으면서 훈제 오리구이에 대포를 한잔 안할 수 없다. 산행할 때와는 달리 아침까지는 휴식이기에 원 없이 대포를 마실 수 있어 한없이 즐거운 것이다. 술과 안주가 충분하기에 동네 사람들 다 불러다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그래봐야 다섯 팀 정도 온 것 같다. 자기들도 찌개 가져오고 맛있는 것 조금씩 가져와 나누어 먹으면서 고마워한다. 모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와 그 기자도 한잔 나누어 주었더니 인터뷰와 촬영을 한다. 언제 방영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왜 지리산에 왔느냐고 묻는다. 우문인 것 같아 우문으로 답했다. ‘오고 싶어 왔을 뿐이라고.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데다 하루 종일 걸었으니 피곤하기도 하다. 일찍 잠들어 정신없이 잤다. 잠을 많이 잔건지 볼일이 있어서인지 새벽 한시에 잠이 깼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많이는 아니어도 눈발이 계속 날리고 있다. 바람에 날려 쌓인 곳을 잘못 밟으니 무릎 반까지 발이 빠진다. 다시 눈을 붙이고 한참을 자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일어났다고 옆에서 깨운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좀 넘었다. 나는 서두르지 말자고 하고 다시 눈을 붙이지만 잠이 올 리가 없다. 빨리 갈 필요는 없다. 또한 시간도 여유가 많다. 눈 내린 길을 처음 걷는 일은 즐거울지는 모르지만 힘든 일이다. 미끄럽고, 발빠지고, 양말도 젖을 수 있으니 앞서간 사람들이 밟아 다녀 놓은 길을 걷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느긋이 아침 먹고 출발하면서 시간을 보니 840분이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의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휴식도 취했기에 힘들지도 않으며 경치가 좋아 힘들지 않은 코스이다. 그에 더하여 눈까지 내린 설경과 눈꽃이 환상적이다. 촛대봉에서의 사방 전경은 아름다움을 품은 고산준봉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다. 촛대봉을 올라 천왕봉을 향하는 길에서는 거센 바람을 맞아야 했다. 세 개의 발 중에 하나가 버티고 있을때는 발이 열두시 방향으로 전진이 아니라 두시 방향으로 짚어야 했다. 중간 중간 골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8시와 2시를 향하는 발걸음이 되어야 했다.

 

1시간 40분 걸려 장터목에 도착한 후 추위와 바람을 피해 잠시 쉰 후에 드디어 천왕봉에 안착. 매번 느끼는 기분이지만 존재감과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해준다. 살아있다는 것과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중산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정상 돌 앞에서 인증샷 경쟁이 치열하다. 그나마 지금은 줄을 서서 자기 차례 기다릴 줄 아는 것은 산꾼들 만의 미덕은 아닐 것이다. 정부쪽 고위인들과 정치인들만 빼면 시민들의 수준은 이미 많이 성숙되어 있다.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1시가 되었다. 때가 되었으니 식사를 하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15:30분이 되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로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출발이 가능했다. 진주행 버스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다. 단성IC가 가까운 원지에서 내려 하루 묵어갈 생각이다. 우선 터미널에서 내일 인천행 첫차를 예매하고 남강이라고도 하는 경호강 인근에 있는 경호탕에서 목욕을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는 풀리지만 졸음만 밀려온다. 주인 아저씨께 맛있는 식당을 추천받아 우두머리 식당을 가 석쇠 삼겹살을 먹었지만 영 아니었다. 무지하게 짜기만 할뿐 맛이 기대 이하이다. 대포만 맛있게 마시고 숙소에 들어와 자니 이틀째 꿀잠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사진 좌측에 중산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조금 보인다  ©

 

 

 

▲   중산리 계곡  © 김광수

 

▲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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