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조용하고 느리게
스토리가 있는 이정우 사진전
이연옥 | 입력 : 2017/10/03 [08:37]
막장. 조용하고 느리게.
전시회장에 들어서서 하나하나의 사진을 음미하는 동안 내 마음 한 쪽엔 낮은 음으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아버지 엄마 오빠를 위한 진혼곡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 수없는 아다지오가 관람하는 내내 내 맘에 흐르고 나를 흔든다.ㅡ '막장, 조용하고 느리게'
이정우 사진전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 첫번째 사진전 '스침, 그 순간' 에서 다중 찰영 기법으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많은 이목을 끌었었다. 이번 두 번째 사진전에서는 시아노 타입이라는 특수기법을 이용해서 사진을 제작하였다. 시아노 타입은 청색 이미지가 나오는 특수기법이다. 손이 많이 가고 섬세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한 특수기법 이용을 한 부분도 특별하지만 '막장'이라는 그녀의 실제의 스토리가 있어서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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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전시장 어수선한 상황에서 첫눈에 잘 읽히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작품을 훑어 본 후에 잔잔한 슬픔이 가슴을 진동하였다. 어떤 스토리가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지난 일요일, 개관 첫날 그 느낌을 정리하러 시흥시 농업기술센터 겔러리 전시장을 다시 찾았다. 몇 시간 후면 전시 마감을 한다고 하는데 꾸준히 관람객이 드나들었다. 특히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특별한 기법으로 보기드문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우 사진작가와 마주앉아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작업은 옛일.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어서 작업 내내 가슴이 아픈 시간이었다고 한다. 탄광촌을 떠나지 못하셨던 그 분들, 아버지. 어머니. 오빠. 가신 그 분들게 뭔가를 꼭 해드리고 지나야했다. 그것이 그분들께 도리이고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 전시 작품마다에 양귀비가 보이게 혹은 보일 듯 비쳐졌는데 양귀비는 막장을 향하는 아버지의 힘이었다. 마당에는 여름내 지천으로 양귀비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양귀비를 씹으며 힘든 고통을 잊으셨다. 시인이 되고 싶다. 는 오빠는 늘 광부가 싫다고 외치셨다. 그러면서도 막장을 향하거나 막장에서 나오면 양귀비를 씹으셨다. 겨울이면 처마 밑에 마른 양귀비가 씨방째 매달려있었고 그 아래 어머니는 막장을 향하는 아버지께 손을 흔드셨다. 그래서 양귀비는 그분들과 뗄 수없는 식물. 꽃이기 전에 위로이고 진통제이기도 했다.
'막장. 조용하고 느리게'는 어린 날 기억 속의 이미지 하나하나에 양귀비를 넣어서 연출했다. 갱로. 탄차. 검은 장화. 탄광촌, 탄부, 어린 이정우가 놀던 조약돌. 소꿉놀이, 기다림. 기침. 엄마의 젖은 손. 그리고 양귀비. 젖은. 마른. 천정에 매단 양귀비씨방, 가족, 그리고 막장. 그 모든 것에 양귀비가 바쳐졌다.
스물일곱 개의 사진을 다 읽고 나면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하나의 스토리가 나름대로 완성된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녀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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