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후(然後)의 마음
동우 | 입력 : 2017/09/08 [14:53]
靜坐然後 知平日之氣浮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守默然後 知平日之言燥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省事然後 知平日之費閒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閉戶然後 知平日之交濫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寡慾然後 知平日之病多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近情然後 知平日之念刻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중국 명나라 말의 문인 진계유의 ‘연후(然後)’라는 시다. 벌써 마당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새벽 밤하늘에는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또렷하다. 가을인게다. 무더위가 지나간 자리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한여름 밤의 열기를 떠나보내고 난 연후라, 이 시의 정취가 더하는 듯 하다. 한바탕 일을 겪고 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지나고 나서야 상황판단이 될 때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너무 멀리 가 버리기 전에 돌아올 줄 알아야 후회가 적다.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마음이 촘촘할수록 도에 가까운 것이다.
마지막 구절이 눈에 와 박힌다. 마음을 쏟아부은 뒤에야 평소 각박했던 마음씀을 돌아보게 된다. 온갖 헛것에 정신을 팔다가 정작 소중한 것들은 홀대하고 있던 평소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순간순간 정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그 한 순간이 그저 우리 삶의 전부인 것처럼... 작은 일, 하찮은 인연은 없다.
이 시를 쓴 진계유는 어려서 총명함을 인정받았으나, 30세가 되기 전에 유자(儒者)의 의관을 불태워 버리고 기존의 삶을 포기한 사람이다. 출세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한 그는, 그런 연후자신의 선택을 돌아보며 어떠했을까. 우리가 삶의 연후(然後)를 생각해 보면, 지금 서 있는 이 순간의 성찰이 가끔 비수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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