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途中)의 사람

동우 | 기사입력 2017/06/17 [08:18]

도중(途中)의 사람

동우 | 입력 : 2017/06/17 [08:18]

 

▲ 솔 바람길     © 동우

 

나는 다른 어떤 사람이다라는 랭보의 시구에 격렬하게 고무되어 갑자기 아무 짓이나 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라는 사람의 틀을 벗어버리고 다른 무언가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온건하고 완만한 그간의 내 삶이 매우 지루하고 시시하게 여겨졌다.

 

게르첸 소설의 주인공을 표현하는 냉철한 몽상가는 교정 불가능한 인간이다.’라는 말이 바로 나를 말하는 것 같다고 친한 동기는 연민 반 냉소 반의 염려를 하곤 했다. 심지어 한 선배는 내가 관념에 간생해서 살고 있다는 극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내 주변에는 유물론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나는 내가 왜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왜 저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는 일을 나는 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끈질기게 잡고 고민하는지. 왜 이런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지...

 

남들이 재미있어하는 그 어떤 것도 재미없는데 언제까지 이 재미있는 척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정말 인생이 시시하고 지루하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이 머리끝까지 꽉 찼던 어느 날, 시험 삼아 나를 어떤 다른 곳에 던져두는 셈 치고, 이번 생에 맡은 무대의 배역을 한번 바꾸어 살아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으로 출가를 했다.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 출가를 알리고 작별을 고하며, ‘우리 십 년 후에 보자!’라고 객기 어린 말을 남겼다. 그 후 정말 십 년 후에 만난 후배가 그땐 꼭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고 우스개로 말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가 석 달 정도면 돌아오리라 생각했다고 하니 늘 도망 다니던 나의 습성을 잘 아는 이들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되는 것이 싫었다. 무언가가 되어버릴까 봐 늘 도망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삭발하고 처음으로 서울 거리를 활보하던 날, 갑자기 쿡쿡헛웃음이 나왔다.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있는 대로 엄살을 부리던 내가 누가 보아도 당장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만한 스타일의 외모를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니 문득이 드는 의문 하나. 외형은 너무나도 분명한 신분인데 그런데 과연,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석 달로 끝나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십년 후 보자는 약속도 거뜬하게 지킨 채, 삭발한 지 벌써 이십 년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정말 더 놀라운 일은, ‘이 길이 아닌데라는 마음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었다는 사실이다. 그걸 통틀고 뭉뚱그려서 절집에서는 그저 인연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들썩임이 있었다면, 약간의 정신적인 결벽증이 있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아마도 당장 보따리를 쌌을 테니 분명 인연의 힘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 경전은 나의 기대 이상이었고, 인생을 걸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 앞에서라도 내 인생의 가장 탁월한 선택이 출가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자니 다시 돌아와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어쩌면 이 분명한 차림새와 달리 출가 수행자의 길은 무엇이 되어버린 삶이 아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향해가는 늘상 도중(途中)의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끝나지 않는 이 '길 위의 길'을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것 아닐까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의 심정이 되어, 지극히 사변적이던 시절을 지긋이 보듬어 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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