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을 하며 마을을 돌 때 이 집 마당에서 한바탕 놀아야겠다 싶으면 길가락을 치고 딱딱 끊다가 거기서 가락을 돌려요. 그러다가 자진가락으로 돌아서면 벌써 마을사람들이 멀리서 들으면서 지금 어디쯤 진행되고 있는지 어디에서 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채편 소리가 북편 소리보다 사뭇 작습니다. 하지만 동구 밖에서는 채편 소리가 더 커요. 뒷쟁이가 잘 맞아야 소리가 좋거든요. 그러면 도깨비 장단이라고 하지요. 북과 장구가 잘 맞지 않으면 ‘도깨비 논다’라고 합니다.” 2003년 물왕동에 사는 안장국(1931년생) 씨는 풍물놀이패의 가락을 이렇게 구술했다.
2003년 발간한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 「고증조사보고서」(시흥문화원)에 실린 글을 읽는데 가슴이 뛰었다. 「고증조사보고서」라는 담백하고 딱딱한 보고서 표면과는 달리 그 안에는 신천동, 물왕동, 매화동, 월곶동, 광석동 등 일제강점기에 우리 조상들이 풍물의 금지령 속에서도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도 근근하게 이어온 시흥의 두레풍물놀이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의 구술에 따르면 시흥지역의 풍물놀이는 19세기 말이 전성기로 대원군의 경복궁 증축 때 마전과, 월동, 산곡, 벼슬고지의 두레패들이 서울에 가서 공연하고 두레기를 하사 받았다고 했다. 또한 손발이 잘 맞는 도깨비 장단으로 이승만대통령 탄생일에 불려갔었다는 시흥두레풍물놀이가 더욱 궁금해졌다.
월미두레풍물놀이는 세초(歲初)정월 대보름 에는 벽사진경(壁邪進慶) 및 기풍(祈豊)을 행사 목적으로 하며, 5월 파종 때와 6월 김맬 때는 농번기이므로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하며, 7월에는 일손을 놓고 허리를 펴는 때이므로 호미씻이, 백종놀이라고 해서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이날 하루는 머슴을 쉬게 한 전통에 따라서 하며, 8월에는 농민들의 경사스러운 명절(한가위)이어서, 10월에는 추수를 끝내고 농공(農功)을 축하하고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동제(洞祭)’를 지낼 때에 하던 풍물놀이로,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형성하여 주고 마을의 화목을 촉진시켜 주는 민속축제이다.
이 놀이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쓴 농기(農旗)와 ‘令’(영)이라고 쓴 영기(令旗)를 앞세우고 태평소, 상쇠, 징, 북, 장고, 벅고, 잡색(雜色), 무동(舞童), 대포수, 각시, 양반으로 편제를 갖춘 다음 먼저 인사굿을 시작으로 돌림법고, 당산, 칠채, 멍석말이, 비조리놀림, 법고놀림 등을 거쳐 사통백이, 원형 좌우치기, 네줄박이 좌우치기, 가세진, 무동, 열두발 상모 등의 다양한 굿판이 벌어진다.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는 1994년에 제9회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 시흥 대표민속놀이로 출전하여 발굴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4년 ‘제3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농악부문 차하 수상, 2004년 ‘바우덕이 전국 풍물경연대회’에서 풍물 일반부 대상 ‘바우덕이상’ 수상, 2009년 ‘김제지평선축제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하며 시흥시의 전통풍물을 보존 계승하고 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2003년 시흥 월미두레풍물놀이 고증조사보고서(시흥문화원)에 참여했던 김원민(1968년생) 시흥시립전통예술단 예술감독을 만났다.
김원민(1968년생) 시립 예술감독은 “월미두레풍물놀이를 최초로 발굴한 것은 고인이 된 이한기 전 향토위원이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1994년 제9회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 시흥 대표민속놀이로 출전하여 발굴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이름이 월미풍물놀이였다. 그러나 2003년 본격적인 고증을 통해 시흥의 전역에서 두레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또한 “월미마을에 건립패를 하던 전문인 김맹식 씨가 이사를 왔다. 당시 전문건립패는 사찰에서 증표를 준다. 어느 사찰의 건립패라고 만장의 낭대에 증표를 걸고 마을공동자금, 다리를 만들 때 기금 등을 건립하러 다니면 주민들은 돈과 쌀 등을 내놓았다. 전문적인 공연자였던 것이다. 김맹식 씨가 이사 온 후로 월미가 잘하게 되었다. 물왕동 박상용 씨는 5살 때 무동을 탔던 기억을 이야기 했다. 기싸움은 마을 간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두레기를 들고 가다 상대편 마을기와 만나면 기를 숙이는 것인 데 어느 마을이 동생이라고 하겠나요. 그래서 시흥놀이의 특징은 기싸움으로 시작해서 풍물놀이로 끝났다. 전문연예인들이 하는 것이 혼합되었다. 고증을 통해서 이름도 월미두레풍물놀이로 바뀌었다.”고 했다.
2003년 월미두레풍물놀이 고증작업에 참여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원민 시립 예술감독은 “일제강점기에 풍물은 많이 사라졌어요. 소소하게 이어오다 70년 대에 단절됐죠. 어르신들 기억에 의존하는데 굿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많이 늦었구나 싶었죠. 그래도 구석구석 다니면서 기억의 파편들을 모자이크 하듯이 했죠.”라고 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기억의 파편을 모자이크화 된 것들은 춤이 되고 음악이 되었다. “2003년 안장국(1931년생) 씨가 가락을 쳐준 것을 가락채본을 해 놨다.”고 했다.
월미두레풍물놀이의 가락보는 점고 - 난타 - 인사가락 - 지즌가락(휘모리) - 무등패가락(지즌모리) - 도드래가락(육채) - 도드래넘기는 가락 - 무등패가락(기본가락) - 길가락(걸어다닐 때) -지즌길가락(멍석을 말 때) -찐지패가락(굿가락) -버꾸촤우치기가락 - 원형좌우치기가락, 네줄배기좌우치기가락- 쩍쩍이(내는 가락) - 쩍쩍이(맺는 가락) - 타령가락1 - 타령가락2로 되어있었다. 고증을 한다는 것은 늦었다고 느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김원민 시립 예술감독은 “현재는 월미두레풍물놀이보존회에서 1년에 한 번 공연을 한다. 공연을 하려면 많은 인원과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결정적으로 풍물을 할 판이 없어졌다. 실내에서 할 수 없고 마당에서 넓게 해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 요구가 많아야 하는데 안타깝다. 복원을 마치면 상설화 하려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올 해 다시 고증조사를 시작했다. 2003년도에 미진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하고 있다. 고증을 하는 것도 문화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향후에 경기도문화재로 신청하려고 한다. 충분한 가치가 있고 흔적도 많다. 이번 조사가 올해 말에 끝나면 재공연을 할 것이다.”고 했다.
또한 “월미두레풍물놀이는 논농사에 대표적으로 남은 공동체문화이다. 현재는 공동체가 힘든 사회이다. 이것이 가장 큰 과제다. 도시화의 관계는 계약적 관계이다. 때문에 계약이 안 맞으면 언제든지 떠난다. 과거의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현대에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농악풍물은 유흥거리만이 아니고 마을사람들이 함께 의논하고 의지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오락적 성격으로 어떻게 대중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고민이 많다.”고 했다. 또한 한계가 있다. 단순히 옛날 것을 만들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문화적인 흐름을 봐야한다. 문화적 회복으로 가야 계승 전승될 수 있다. 그런 맥락으로 많은 사람과 함께 소통하고 당위성만이 아니고 고민하고 창조 쪽으로 계승하려고 한다.”고 했다.
2003년에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보존회가 만들어졌다. 1대 회장은 안장국 씨가 맡았다. 현재는 이수경 씨가 2대 회장을 맡고 있다. 이수경 보존회 회장은 “보존회 회원들이 풍물을 배우고 있다. 정기적인 공연을 할 때 보존회 회원들도 참여한다. 회원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를 지도한다,”고 했다.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흥이 났다. 마을장정들이 기를 앞세우고 깃발을 흔들고 기싸움을 하면서 운동장을 휩쓸고 다녔다. 기싸움이 끝나면 흥겨운 풍물놀이를 했다.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의 특징대로 기싸움으로 시작해서 풍물놀이로 끝났다. 현대에 맞게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재연이었다.
문화경쟁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그 시대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회 각계 각층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 새롭게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옛 것을 발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5년 시흥시에서 최초로 경기도지정문화재59호로 지정된 군자봉성황제를 보았다. 우리 시흥의 각 마을에서 공동체 놀이를 했던 시흥월미두레풍물놀이가 시흥에서 두 번째로 경기도지정문화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2016년 '예술시흥'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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