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무형문화제 제59호로 지정된 군자봉성황제를 다녀오다

군자봉성황제가 2015년 시흥시에서 첫 번째로 경기도무형문화제로 지정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7/03/17 [06:39]

경기도무형문화제 제59호로 지정된 군자봉성황제를 다녀오다

군자봉성황제가 2015년 시흥시에서 첫 번째로 경기도무형문화제로 지정되다

최영숙 | 입력 : 2017/03/17 [06:39]
▲ 2016년 군자봉성황제 유가행렬을 삼미시장에서 하다     ©최영숙

 

2015년 군자봉성황제가 시흥시에서 첫 번째로 경기도 무형문화제 59호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제로 지정되고 첫번째로 2016111일 삼미시장에서의 유가행렬에 이어 2일에는 군자봉 정상에서 성황제가 열렸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m의 산이다. 군자봉이란 이름은 조선조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안산 능안(陵內, 당시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봉오리가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과 같다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산에서 성황제를 지냈다는 것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나와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자성황제가 조선 초기 국가의 공식 기록물에 언급될 정도로 당시 널리 알려졌다.

 

군자봉 성황제는 군자봉 인근의 구지정 마을 주민들이 지낸다. 구지정 마을의 이름은 아홉 개의 우물에서 비롯됐다. 구지정 주민들은 군자봉 정상에 있는 성황당에 경순대왕을 모셔놓고 매년 섣달(음력12) 당주와 마을주민들이 올라가 제를 지낸다. 이어 경순대왕을 마을로 모시고 내려와 집집마다 유가를 돌고 삼월삼짇날(음력33)이 되면 다시 군자봉 성황당에 모셨다.

 

유가행렬 순서는 당제인사-대왕님 모셔 나오기- 유가행렬이다.

  

2016111일 유가행렬을 했다. 예전에는 시흥은 물론 영등포와 평택까지 유가가 돌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3개월이 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조사를 하다보면 시흥시의 각 지역에서 군자동 유가를 맞아들이고 곡식과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한마당 놀았던 기억을 구술했다. 유서 깊은 군자봉의 유가행렬은 시대가 변하면서 약해졌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고 첫 유가행렬을 삼미시장에서 했다. 고현희 당주는 유가행렬을 맞이하는 상인들에게 장사가 잘 되고 가정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덕담을 했다. 상인들과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유가행렬을 구경하고 풍물패와 보면서 함께 즐기고 기원했다.

 

▲ 군자봉성황제에서 산신맞이를 하는 고현희 당주     ©최영숙

 

 

2016112일 군자봉정상에서 군자봉성황제를 했다.

 

군자봉성황제 순서는 대왕님모시기- 부정거리-도당불사-산신맞이-별상거리-산신장거리-산대감거리-진쇠춤-앉은풍물-창부선왕뒤풀이 순이었다.

 

출연자는 연행에 고현희 당주 외 6, 악사는 이한복 외 4,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는 회장 한정현 외 17명으로 총 30명이었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군자봉성황제가 대한민국의 유수한 우형문화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통문화를 아시아권역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알려야 합니다. 오늘의 성황제가 대동제로서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래를 꿈꾸는 성황제가 되기를 빈다.”고 했다.

 

한정현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장은 구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봐온 군자봉성황제가 지속적으로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속에 계승되어지고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군자봉성황제가 우리의 전통예술로서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했다.

 

▲ 2013년 성황제에서 신장거리를 하는 승경숙 무녀     ©최영숙

 

군자봉성황제가 천 년을 넘게 이어온 것은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와 당주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강재모(1960년생)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원은 이곳이 고향이다. 8년 전에 자월도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에서 연습하는 목요일과 군자봉성황제가 열리면 자월도에서 온다. 무형문화제가 되고 책임감도 커졌다. 어젠 삼미시장을 돌 때 주민들이 호응도 많이 해주고 반겨줘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표용환(64년생)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 사무국장은 옛 선배님들은 시흥 전역을 돌았지만 우리는 처음이었다. 많이 추웠지만 보람있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시민들과 기관장들도 더 관심을 가지는 느낌이다. 보존회 회원은 20여명이고 시흥시 전체에서 회원을 받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2016년 군자봉성황제를 하다     © 최영숙


군자봉성황제 고현희 당주는선조들은 일 년 사계절 악한 일을 예방하고자 했습니다. 천지만물의 조화를 살피고 하늘과 땅. 물과 나무 등 모든 것에 인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며 소박하면서도 예를 다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자봉성황제가 경기도무형문화재 제 59호로 지정되어 전승 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주민 황인종(1955년생) 씨는 당집이 바로 앞집이다. 돌아가신 당주가 우리 할머니 시영 딸이었다. 우리한테 고모였다. 고모의 딸 고현희 씨가 당주가 되어 인정받았다. 마을 분들과 함께 무형문화재를 만드는데 기여해서 뿌듯하고 든든하다. 군자봉이 영험한 것은 걷기도 힘든 어르신도 돼지 한 마리를 지게에 지고 올라갔다. 또 마을 분들이 무거운 서낭대를 지고 올라갔다. 80년도 까지도 군자면 전체에서 와서 했다. 군자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미어졌다. 20~30명의 악사와 무녀들이 와서 번갈아 하면서 한 제일 큰 잔치였다. 지금은 10분의 1도 안 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예전에 군자봉 신목 아래 당집이 있었다. 1960년대에 나무로 지은 집이었다. 누군가 불을 냈다. 다시 벽돌로 지었다. 1970 년경에 다시 파괴되었다. 그 뒤에는 당집을 짓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 당주집에서 자손을 위해 기원하는 단골     © 최영숙

 

군자봉성황제를 하는 날, 목욕재개를 해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당주 집으로 가는 주민을 만났다. 정태원(1933년생) 씨는 우리 시어머니도 지성이었다. 나는 21살 시집와서부터 다닌다. 예전만 해도 군자봉성황제 같은 대동치성은 대단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날 신점도 보고 했다. 대왕님을 배신 못한다. 이제 정성을 잘 드렸던 어르신들은 세상 떠나고 신참들이 오는데 옛날만은 못해도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고 했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시흥군과 근처 고을까지 유가를 돌고 돌아와서 온 동네가 잔치를 벌였던 추억을 가진 주민들은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를 만들어 군자봉성황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끈끈한 유대감은 군자동에서 이사를 떠난 사람도 보존회 회원으로 동참 했다. 변함없는 마을 분들의 힘과 대를 이어 군자봉성황제를 지켜낸 당주 일가의 힘, 시흥문화원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자료수집 등을 통한 타당성 확보노력이 모여 시흥시 최초로 경기도 무형문화제 제 59호에 지정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10년 가까이 군자봉성황제를 지켜보았다. 경기도무형문화제 59호로 지정되고 처음으로 치러진 군자봉성황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 군자봉성황제를 마치고 서낭대 내려오다     © 최영숙


첫 번째는 바뀐 위상이었다. 군자봉성황제를 취재하는 신문. 방송사가 많았고 주민들의 참여도 많았다. 또한 유가행렬이 군자동을 벗어나 삼미시장을 돌았고, 성황제의 순서도 바뀌었다. 군자봉성황제보존회원들의 남성들이 대왕님 오신 자리에 지신을 흥겹게 놀아주고 놀려주는 춤놀이 진쇠춤과 풍작을 기원하고 하는 일 잘 되게 주민들이 대왕님께 인사 들이는 놀이인 앉은 풍물이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굿을 모두 마치기 전에 진쇠춤과 앉은 풍물 하는 것을 봐서 의아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이 또한 함께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국의 굿을 기록하는 김용(1963년생) 씨는 작년과 다른 점은 관객들의 호응도가 좋아졌다. 전국의 굿들을 보면 굿 만하면 일반사람들이 흥미를 잃기 때문에 중간에 지역의 다른 장르의 음악과 함께 다양하게 한다. 산신제를 하면서 클라리렛 연주를 하기도 한다. 전승해서 오는 과정에 수박 겉하고 안의 붉은 수박과 하얀 중간부분이 있다. 어느 한쪽으로 가면 문제가 있어 같이해야 것이다. 유서 깊은 무형문화재가 보존회가 없어서 단절되는 것을 보았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예 단절된다. 모두 잃는 것보다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잘 보존해온 군자봉성황제보존회와 고현희 당주의 숙제이다.”라고 했다.

 

▲ 2015년 군자봉성황제를 마치고 단체사진을 담다     ©최영숙

 

경기도무형문화제 59호로 지정된 군자봉성황제를 이끌어온 것은 사람이다. 또한 이를 계승 발전시켜야하는 것도 또한 사람이다.

 

군자봉성황제는 천 년을 이어 전승된 우리 고유문화이다. 이를 종교적인 색채로 보면 안 된다. 황정현 군자봉성황제연구보존회 회장은 2016년 군자봉성황제에서 두 번에 걸쳐 화재와 파괴로 사라진 군자봉에 있던 당집 복원을 부탁했다. 개인적으로 10년 가까이 군자봉성황제를 기록했지만 종교적으로 부딪는 부분은 없었다. 없었던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파괴된 당집은 복원돼야 한다. 경기도무형문화제 59호로 지정된 것의 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것이 천 년 넘게 군자봉성황제가 이어온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예술시흥'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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