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봄눈, 그 눈부신 덧없음

최영숙 | 기사입력 2010/03/11 [21:47]

삼월의 봄눈, 그 눈부신 덧없음

최영숙 | 입력 : 2010/03/11 [21:47]

 

▲ 2010년 3월 10일 봄눈 내리다     © 최영숙

 
    2010년 3월 10일 창문을 여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3월에 눈을 만났다.  와, 환호성이 터졌다. 세상 풍경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갯골,  포동벌판, 동구릉, 시흥의 마을들까지 사진을 담고 싶은 장소들이 떠올랐다. 어느 곳으로 출발해야할지 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럴 때는 머털도사처럼 머리카락 서너 개쯤 뽑아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가고 싶었다.

     동선거리가 짧은 마을사진들을 담기로 방향을 정했다. 서둘렀다. 봄눈은 말 그대로 봄눈처럼 스르르 한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 삼월 눈 내리다     © 최영숙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버리고 있는 듯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 나무와 까치     © 최영숙


    까치 한 마리 나무 끝에 앉아 있었다. 새해, 연하장의 설경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봄눈은 느낌이 남달랐다. 눈들이 나무 위에 깃털처럼 가볍게 얹어진 느낌이 들었다. 

 

▲ 과림리 교회     © 최영숙


    단순한 흑백 대비의 배경은 교회와 나무들을 더욱 정갈하게 보이게 했다.

▲ 건널목에 서다     ©최영숙

 
    철길과 건널목을 만났다. 기차는 지나지 않았다. 시흥에서 오래된 풍경을 만났다.  시간을 1950~1960년대로 되돌린 듯했다.  오래된 풍경은 눈길을 편하게 하는 힘이 있다. 

 

▲ 철길과 개     © 최영숙

 
    기찻길에서 개 한 마리를 만났다. 낮선 사람을 무심히 건너다 보았다. 반가워서 오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면서 저 멀리 사라졌다. 

    순간, 언제 다시 내가 너를, 너는 나를 보겠는가 싶었다. 잠시 한 점으로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싶었다. 
 

▲ 마을의 집들과 무덤     © 최영숙


    산자와 세상 떠난 이의 집 위에도 눈이 내렸다.  삶과 죽음이 한 선상에 있었다. 한 선상에 있다는 것, 종종 잊는다.


▲ 나무 서다     © 최영숙

 
    나이가 들수록 번잡스럽지 않은 나무가 좋아졌다. 특히 겨울나무가 좋다.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그 단호함이 부러웠다. 겨울나무는 또한 겉치장을 거부한다. 본의아니게치장할 때는 눈이 왔을 때뿐이었다. 그 또한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다.

 

▲ 마을로 들어서다     © 최영숙

 
    마을은 조용했다. 차량들의 바퀴자국만이 남겨졌다. 우뚝 선 전신주와 집집으로 연결된 전깃줄들이 긴장감으로 다가섰다. 

 

▲ 박두일 모습     © 최영숙


    장현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이주가 시작된 박두일로 왔다. 멀리 능곡지구가 보였다. 크레인이 세워졌던 풍경이 익숙했었다. 이제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안두일 마을     © 최영숙

 
    안두일로 왔다. 마을 풍경이 수묵화가 되었다.


▲ 을미길     © 최영숙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던 을미길로 들어섰다. 나무들이 생의  마지막 봄눈을 이고 서있었다.   올 겨울이 오기 전에 이곳은 택지개발로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나는 대상의 마지막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힘들 때가 많다. 
 

▲ 도리재 마을의 느티나무     © 최영숙


    사진을 담다보면 유독 눈길이 머무는 풍경들이 있다.  나무들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금이동 도리재 마을회관 옆에 있는 느티나무들이 보고 싶었다. 이곳의 느티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모습들이 빼어났다. 

    느티나무는 이 마을이 처음 정착할 때부터 있었던 나무라고 한다. 500년을 이 마을과 함께했다. 균형이 완벽하게 잡힌 느티나무는 마치 거대한 분재가 서 있는 듯했다.

 

▲ 춤추는 듯한 도리재 나무     ©최영숙


     햇살이 슬쩍 나왔다. 순간, 나뭇가지들이 움직이는 듯했다. 나무의 가지들이 너울너울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마을을 보고 보고 있는 느티나무들     © 최영숙

 
   500년 동안  마을 아래 사람들은 얼마나 다양한 삶들이 살았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죽고,. 주택들이 시대에 맞게 변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느티나무들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한 나무들     © 최영숙

 
    느티나무들이 서로 손을 뻗어 교감을 나누는 듯했다. 이곳의 느티나무들은 500년을 이웃해서 살았다. 이 나무들의 인연과 연륜을 생각하니, 100년도 못 사는 인간사는 그저 경이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과수원     © 최영숙


    과수원도 눈 꽃밭이 되었다. 4월이 되면 이 언덕은 꽃동산이 될 것이다. 한 시절이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수지에서 만난 봄눈     © 최영숙


    봄눈을 사진에 담는 동안  쓸쓸했고, 행복했다. 봄눈을 만나는 시간은 짧았다. 종착역이 봄눈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찬란하고  찰라 같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 봄눈 녹다     © 최영숙

 
     하루가 지났다. 봄눈이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제의 하루가 신기루 같았다. 

 

▲ 철길     © 최영숙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우리를 더욱 더  먼 곳으로  데려다 준다.  
 
    삼월의 눈은,
그 눈부신 덧없음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삶의 편린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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