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됨을 좋아하는데 있다

맹자야! 놀자!

이상애 | 기사입력 2013/10/07 [15:03]

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됨을 좋아하는데 있다

맹자야! 놀자!

이상애 | 입력 : 2013/10/07 [15:03]


어느 날 선생님이 강의에 빠지신 날이 있었다. 그날 맹자학우들은 맹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선생님이 맹자를 그냥 펼치면서 하시는 말 "이것보세요. 맹자는 그냥 생각 없이 펼쳐도 되새길 수 있는 문구가 보입니다! 人之患在好爲人師! 맹자님 참 대단하지 않나요? 가르치려고 해서 문제라네요."

 


 孟子曰 人之患在好爲人師。

王勉曰 學問有餘, 人資於己, 以不得已而應之可也。 若好爲人師, 則自足而不復有進矣, 此人之大患也。

孟子曰(맹자왈) 人之患在好爲人師(인지환재호위인사)이니라

王勉曰(왕면왈) 學問有餘(학문유여)하야 人資於己(인자어기)면 不得已而應之(부득이이응지)는 可也(가야)어니와 若好爲人師(약호위인사)면 則自足而不復有進矣(즉자족이불부유진의)리니 此(차)는 人之大患也(인지대환야)이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됨을 좋아하는데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병폐는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에 있다.”

왕면은 “학문에 남음이 있어 남들이 자기에게 의뢰하면 마지못해 응하는 것은 옳다. 만약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다면 스스로 만족하여 다시 나아감이 없을 것이니 이는 사람의 큰 근심이다.” 라고 말했다.



이 글은 맹자의 글보다 왕면의 주가 더 흥미를 끈다.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왕면은 自足而不復有進矣라고 하였으니 스스로 나아감이 있다면 스승됨이 아니라 제자됨이다. 이는 자신이 아는 진리를 확실하다 불변이다 여기고 남에게 권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결론을 새로운 의문으로 바꾸고 매진하는 것을 말함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스스로 모자람을 드러내게 된다. 따라서 남에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태도에서 스승됨 보다 제자 되기를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 맹자원전 강의 모습     ©이상애

 


ㄱ : 사람의 병폐는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 위 구절은 혼자서 너무 잘난 체 하지 말라는 선각자의 경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好爲人師'(남 가르치기를 좋아함) 이것을 어쩌죠. 아아. 찔리는데요!

ㄴ : 그런가요? 모든 면에서 알 수는 없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기는 하나, 모든 면에서 알지 못하는데 가르치려 해서 병이라고 말이죠. 사람은 각기 다른 면에서 자신의 장점이 있고 또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풍부하여 이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남다른 재주나 기술이 있어 이를 남들에게 전수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ㄷ : 요즘은 하도 모든 분야가 전문화 되다 보니 여러 분야를 다 잘 할 수는 없죠. 그래서 적성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거 같습니다. 지금 당장 기능과 지식이 좀 뒤진다하여 그 사람이 사람됨이나 소양마저 남보다 뒤지란 법은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여행하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 3자의 잣대로 보아 늘 부족하던 사람이 자신도 힘든 상황에서 남의 짐을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기도 하지요. 세상에서 이뤄지는 평가가 다는 아닌 거죠.

ㄹ : 사람을 대할 때나 심성(心性)을 펼치는 데 있어서 가르치고 배워야할 주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력, 경력 혹은 신분을 구분하여 함부로 타인을 평가할 수 없듯이, 배움과 가르침에는 너나 구분 없이 얼마든지 서로 그 입장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늘 가르치는 사람은 아닌 거죠. 때에 따라 상황이 바뀝니다. 요즘처럼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엔 말이죠.

ㅁ :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인간은 자신의 모자람을 반성하고 남을 통해 기꺼이 가르침을 청할 때 병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단점을 지적하면 화를 냅니다. 그래서 관계를 위해 모르는 척 지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단점을 주변 사람이 알려줘 고치게 된다면 좋겠죠.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 허물을 이야기해 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척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ㅂ : 그러나 이 문제는 자기 잘못이나 결점은 생각지 않고 남의 허물과 오류를 습관적으로 지적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똑똑한 사람들 많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다들 한마디씩 하죠. 사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을 돌아보기 전에 남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이기도 합니다.

ㅇ : [청년 교사에게 말한다]에서 함석헌 선생은 ‘혼의 키움, 교사라는 말은 사람 되기를 가르치는 일이라 합니다. 교육이란 혼의 싹을 틔우는 일이요, 인격의 틀거리를 잡아 주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ㅈ : 요즘 선생님들에게는 과제겠네요.

ㅊ : 요즘은 임용고사 보고 합격하면 모두 교사죠.

ㅋ : 함석헌 선생은 정말 교사는 스스로 교사 되는 줄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덕이 있어야 교사인데 덕은 스스로는 있는 줄 모르는 것이다. 덕을 득(得)이라(속에 얻은 속알) 하지만, 속에 정신적으로 얻은 것은 참 자아가 된 것인데, 그것은 이른바 득은 아니다. 내가 교사다 하면 교사는 아니다. 교사되기 위하여는 교사 아니 돼야 할 것이다.'고 하셨죠.

ㅎ : 얼마 전에 한 학생이 일요일에 전화를 해서 오랫동안 무엇을 물었습니다. 사실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통화였습니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를 해주고 나중에 통화하자고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그러더군요.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전화하기 전에 무지 많이 생각해서 망설이다 전화를 한다며 별일 아닌 일로 전화 몇 번하다 마음을 터놓게 되는데 그러려면 선생님은 학생들이 말하는 '봉'이 돼야 하는데 선생님은 '봉'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진정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어느 때나 다가갈 수 있는 '봉'인 선생님이라고 말이죠. 그 순간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ㅏ : 사실 그 학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봉'이 되는 선생님은 지금 학교 현실에서는 그 만큼의 희생을 감수할 선생님은 드물 거 같습니다.

ㅑ : 그런 거 같습니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학교의 환경이 더 그렇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 : 또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직 더 자라야 하는 내가 남의 교사가 되면 자라기를 그친다고 하시는데 공감이 많이 갑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지만 아직 더 성숙해야 하는 교사에겐 그것이 큰 불행인거 같습니다.

ㅓ: 지난번에 선생님이 수도승처럼 살아야 해서 굴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점도 이해가 갑니다. 예전에 저도 보는 눈이 두려워 호프집도 노래방도 영화도 찜질방도 안가고 살았었거든요.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속에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진짜인데 어쩜 보이지 않는 삶이 있다는 건 포장된 진정한 모습은 아니라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ㅋ : 그래서 [청년 교사에게 말한다]에서 남의 사표(師表)와 모범이 돼야 한다 하기 때문에 심의(心意)의 발발(潑發)한 자유로운 자연, 솔직한 성장을 못 하고 일찍부터 틀에 박힌 살림을 하게 되어 인간성이 위축이 되고 기형적으로 형식적으로 되어 위선에 빠진다는 부분에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인지환재호위인사(人之患 在好爲人師)"라, 사람이 남의 스승 되기 좋아하는 것, 그것이 큰 병이라 하셨나 봅니다.

ㅕ: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사람의 본질은 올라가자는 것과 '젊어서 남의 교사가 되면 자기가 작은 위 노릇 하기에 바빠서, 또 그것에 만족하고 뽐내느라고 그만 그 지상을 향해 무한히 오르자는 본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진 적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기에만 급급하게 된다'는 말씀도 공감이 많이 갑니다.

ㅗ : 그 말은 마치 어린아이가 감투를 쓴 거와 같은 상황이네요. 사주에서 관은 칼과 같은데 어린아이가 칼자루를 들고 있으니 다칠 수도 있다는 거죠.

ㅛ : 요즘은 한사람의 '인격'으로 일깨워지는 교사가 아니라 방법론을 암기하는 '직업인'으로 배출되는 현실이라서…….


사랑하면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항상 새롭게 하고 싶고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은 상대방도 특별해 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죽었던 식물이 살아날 것이라 참고 믿으며 기다리니 새순이 돋아난다. 그게 사랑이다.

지난해 로즈마리와 함께 4개의 허브를 사서 30명에게 분양을 했었다. 봄에 산 로즈마리는 분양을 하고 나서도 4개의 화분으로 늘어났고 겨울을 나게 되었다. 로즈마리를 위해 겨울이었지만 바람을 쏘여주기 위해 잠시 밖에 두었다가 화분이 얼었다. 그 화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버리고 다시 다른 허브로 채울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죽었던 로즈마리에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얼었던 가지는 더욱 튼실해 졌고 향기도 그렇게 진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한 화분은 식물을 심으면 얼마 안 되어 시들시들해 졌다. 그 화분을 볼 때마다 무엇이 부족했나 더 마음을 썼는데 어느 날 그 화분에 3층인데도 바람에 날라 온 씨앗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뽑아 버릴까? 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들시들하던 식물이 함께 잘 자라기 시작했다.

톨스토이의 [인생의 書] '교육'에서 인용한 글 중에서 '자신이 자신을 교육한다.'고 했다. 또한 '참다운 교사에게서 가르치는 일은 기술이 아니고 그의 생활 방식이다.'에 공감한다.

올해 한 지인이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첫 명절을 맞은 이야기를 했다. 시어머니로서 가르치려니 본을 보여야 하고 가풍을 설명하고 하려니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시어머니도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사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자유를 향해 교육하려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도록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선 혼자만의 시간도 어른들이 보기엔 노는 시간도, 궁금한 것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시간도, 어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알아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시간들을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쓸데없는 시간이라 여기며 나중에 그런 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어른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시간 관리자가 되어가고 있다. 어른들이 가르치는 것,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숫자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건 아닌지 조금은 두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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