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와 화장지 그리고 잃어버린 등산양말과 등산스틱
소유가 아닌 접근으로
이상애 | 입력 : 2013/09/14 [05:00]
물티슈와 화장지
17시간 산행의 종착지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반갑게 맞아 주시는 일행을 보며 찰라였지만 그분들의 눈빛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으로 걱정하며 미리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신 그 차림 앞에서 사실 너무 지쳐 먹고 싶지 않았으나 김치가 들어간 라면 국물에 밥을 조금 말아서 몇 숟가락을 먹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화장실과 식수대에서 간단하게 물을 적셔 수건으로 하루 종일 흐른 땀을 옷 속으로 대충 넣어 닦고 나서 대피소에 들어가 눕자마자 잠이 든 거 같다. 새벽녘에 속이 너무 불편하고 토할 거 같아 숙소 2층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참고 뛰었다. 숙소 1층으로 현관으로 신발장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아래 계단으로 내려갈 사이도 없이 토하고 말았다. 안경을 안 써서 잘 모르겠다. 환영인지 아닌지 토하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계단아래 다섯 명의 사람이 너무도 놀라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창피한 건 없었다. 그저 토하고 나니 시원하다는 거였고 순간 또 다른 생각은 '어떻게 치우지?' 내겐 비닐봉지는 있는데 화장지가 없다는 거였다. 연화대피소에서 화장지를 다른 분에게 드렸는데……. 후회가 무지 많이 들었다. 너무 황당한 상황이어서 빨리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일행이 자는 대피소로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한 선생님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더니 한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니 물티슈 몇 장과 남아있는 화장지를 주셨다. 배낭에서 비닐 백을 꺼내 신발장 건너가 살을 에는 듯 한 바람을 맞으며 토사물을 치웠다. 그 순간 물티슈와 화장지 몇 장을 준 그 선생님이 눈물 나게 너무 고마웠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았다. 돌아가면 일상으로 돌아가면 조금은 다른 일상의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잃어버린 등산양말과 등산스틱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다. 그 상태로 라면 마음만으로는 충분히 천왕봉에 갈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아마 아이도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 아픈 다리를 이끌고 여기 저기 걸었나 보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종주를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욕심을 부리다 짐이 되면 어쩌나? 등등 생각으로 짧은 아침시간동안 생각을 굴리고 굴리고 또 굴렸다.
그런데 몸뿐만이 아니라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는 지리산 간다고 새 등산 양말을 지인이 주셨는데 그 양말과 등산스틱이 없어졌다고 했다. 다 사연이 있는 물건들인데……. 괜찮다고 아이를 다독였지만 물건 간수 잘못했다며 얼굴색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여기저기 혹시나 하여 스틱을 찾았으나 없었다. 세석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길 한쪽에 기대놓은 휘어진 스틱을 발견했다. 사람이 사는 방식은 다양한 것이다.
소유가 아닌 접근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물건들이 있다.
▲ 지리산 하산길 학생들 배낭에 매달린 비닐백 모습 ⓒ 이상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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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중에 하나는 화장지와 물티슈 몇 장이지만 그것만큼이나 벽소령에서 마셨던 캔커피도 인상적이었다. 캔커피 가격은 출발전 슈퍼에서 보았던 가격보다 훨씬 비싸고 또 먹고 난 후 캔도 가져가야 했다. 말 그대로 산에선 '소유가 아닌 접근'이었다. 산에 오를 때 가져간 것은 모두 가져와야 한다. 우리 주변엔 편의시설이 너무 많아서 그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이용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석에서 천왕봉으로 향하기 전 우리 일행들의 배낭엔 비닐백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그 속엔 우리가 먹었던 전투식량과 햇반 등 전날부터 우리가 생존을 위해 먹고 모아둔 쓰레기가 있었다.
아이 말처럼 어쩜 악으로라도 갔으면 천왕봉에 오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론은 남에게 '짐'은 안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려오는 길에 나름 재미있는 추억을 쌓았어도 너무 허전하고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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