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제일 더운 여름날 하루 23km 산을 오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이상애 | 입력 : 2013/09/14 [04:15]
8월 13일, 지리산 23km를 오르다
지리산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었다. 13일 저녁 세석대피소에 도착하기 전 벌써 내 머릿속엔 기행문이 모두 다 써져 있었다. 성삼재서부터 잠시 쉬었던 어느 한 곳도 내 심장에서 일분일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 길은 고비가 많았고 처음 종주 길에 한계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도 마치 세석대피소가 배수진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시험하는 길이었다.
13일 일정 : 성삼재 휴게소 → 노고단(2.2km 1시간) → 임걸령(3.2km 1:30분) → 화개재(3.1km 1:20분) → 토끼봉(1.3km 40분) → 연하천대피소(2.5km 1:35분)(점심 12.3km 6:05분) → 벽소령(3.6km 1:30분) → 선비샘(2.3km 1시간) → 세석대피소(3.5km 2시간)(저녁 9.4km 4:30)
지난 8월 12일 저녁부터 1박 3일 동안 진행된 지리산 종주에 참여했었다. 이 행사는 시흥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가 주관하고 시흥의제21이 주최하고 시흥시가 후원하는 청소년역사문화활동이었다.
개인적으로 2013년은 마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 변화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여러 변수가 왔을 때 지금까지는 나 자신보다는 다른 것을 더 많이 고려했었다. 그러나 이번 지리산 종주는 나 자신과 대화하며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어디에 기준을 두고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숙고하는 시간을 보내리라는 설레는 기대가 있었다. 한편으론 뭔가 육체적인 한계 속에서 어쩜 나약할 수도 있는 내 정신력의 바닥을 보고 싶기도 했다.
또 다른 바램은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그것을 나누고도 싶었다. 2011년 8월, 시흥 100km를 걸은 경험도 있고 또 내겐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깡'이란 것이 있어서 설마 내가 지리산 종주를 못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로 지리산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또 그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찾은 거 같다. 천왕봉엔 못 갔지만 산을 오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속에서 나름의 결론도 냈다.
배낭과 짐
사실 이 일정에 참가하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은 예비 등반훈련도 여러 번 한 것으로 안다. 그 훈련은 늘 근무시간에 이루어졌고 내겐 특별히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몇 주 사이에 어머니 상도 치뤘고 이런 저런 계획과 일정도 많았다. 일이란 순차적으로 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신념과 가치관과 충돌할땐 다르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념이나 가치관이 흔들리는 사건들로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기에 지리산종주를 하면서 나름대로는 한계에 도전하며 버전 업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출발하는 날 낮 동안 늦게까지 학생들과 진로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다 퇴근하면서도 얼마나 몇 시간 후 나와 부딪힐 상황에 들떴는지 모른다.
그런데 새벽 2시가 넘어 뱀사골에서 아침을 먹고 차로 이동하여 준비운동 후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계단을 오르면서 그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나의 몸은 내 정신력과는 달랐다. 새벽에 렌턴을 켜고 돌계단을 오르다보니 너무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몸은 숨이 차고 배낭은 무겁고 나중엔 호흡을 못할 지경이었다. 그때 한계에 부딪히며 얻는 게 있을 거라 설득해 함께 걷던 녀석이 나의 배낭을 들어주었다. 그 순간 머릿속엔 내가 저 아이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시작점으로 내려가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내려가겠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간다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계속 불편하였다. 다행히 아이덕분에 한고비를 넘겼다. 그렇지만 노고단까지 가는 길에 또 다시 그 고비가 왔다. 그때 김광수 선생님이 잠시 배낭을 들어주셨다. 다행히 노고단부터는 렌턴없이 걸을 수 있었다. 사물을 알아 볼 수 있으니 걷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하천으로 향하던 고갯길에서 고1 한 여학생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조는 선두에 있었기에 제일 앞에서 빠르게 산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하고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하고 그 쉬는 시간은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발 끈을 다시 매고 나면 조는 정렬하고 있었고 출발해야 했다. 흙바닥에 앉아 그늘에서 잠시 쉴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땀이 아니라 모자 아래로 흐르던 눈물이었다. 결국 그 여학생은 연하천으로 향하던 오르막에서 나무에 기대 가만히 서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는 그 학생 곁을 지키고 있는데 “선생님! 저는 그냥 보통사람으로 살아야겠어요. 지리산을 종주한 사람들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이렇게 죽을 정도로 힘들다면 행복한 보통 사람이 나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누나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조는 다르지만 누나의 배낭을 가지고 오르막을 먼저 올라갔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그 여학생에게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바위를 많이 타다보니 다리가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그때 장한나 선생님이 여학생들에게 스틱을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제대로 선생님께 배우고 나서는 조금씩 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르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다. 순간 두 학생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 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끔 웃기도 하고 힘들지만 종주를 즐기는 느낌도 받았다. 어느 바위에 걸터앉아 쉴 때 그 학생은 “선생님! 힘도 다 빠지고 너무 힘들어서 사실은 중간에 차라리 바위에서 떨어져 헬기가 구조하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그만큼 그 길은 ‘편하고 싶은 나’ 자신과 싸우면서 끊임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길이었다.
성삼재 휴게소 → 노고단(2.2km 1시간) → 임걸령(3.2km 1:30분) → 화개재(3.1km 1:20분) → 토끼봉(1.3km 40분) → 연하천대피소(2.5km 1:35분)(점심 12.3km 6:05분) → 벽소령(3.6km 1:30분) → 선비샘(2.3km 1시간) → 세석대피소(3.5km 2시간)(저녁 9.4km 4:30)
그래도 성삼재에서 노고단, 임걸령, 화개재, 토끼봉, 연하천대피소까지는 일정보다 빨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벽소령으로 가던 길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중간 중간 아름다운 풍광을 느꼈고 사진에 담기도 했다. 지금 기억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이 벽소령이다. 물을 받으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 오솔길을 지나서도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가 벽소령대피소에서 사 마셨던 캔커피는 정말 꿀맛이었다. 마음 같아선 하나 더 먹고 싶었다. 그 대피소 옆의 시원한 바람과 커피. 그곳에 누워 자고 싶었다. 그런데 벽소령대피소에 계신 공원관리를 하시는 분이 한해 276명의 사람이 지리산에서 죽는데 그중 11명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리산을 잘 모르고 또 체력을 과신해서 왔다가 힘이 빠져 중간에 잠을 자게 되어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곳에서 더 쉴 수가 없었다. 세석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어느 정도 걸었을 때 자꾸 숨이 차올랐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그런 증상 때문에 더 이상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단지 체력이 다해 힘이 빠져 그럴 것이라 여겼는데 선비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연하천에서 점심으로 먹은 라면 두 젓가락을 토하고 나니 숨쉴만 해졌다. 오로지 한모금의 물을 의지해 무작정 걸을 수밖에 없었다. 선비샘에 도착하여 손을 따고 나서도 한참을 걸었다. 너무도 고마운 것은 뒤쳐진 일행을 위해 선비샘까지 오신 후발대의 이건섭 산악대장님과 신광표 선생님이었다. 그분들에게 아이가 그래도 혼자서 일찍 세석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와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선비샘까지 오면서 바위를 타고 산 오르기를 여러 번 하면서 그때마다 아이는 잘하고 있을까? 발을 헛디뎌서 사고는 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곳부터 지원군인 두 분이 등산배낭을 들어주셨는데 워낙 체력이 바닥이 나서인지 배낭을 메지 않았어도 가는 길의 발걸음은 별 차이가 없었다.
부지런히 뒤에 오는 분들보다는 서둘러 길을 걸었는데도 어느새 세석으로 가는 길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새벽에 어둠속을 걸으며 어지러워 고생했는데 또 어둠이 내린다 생각하니 체력소진보다는 정신력으로 그 어둠을 극복하고자 발을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돌계단과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정상의 바위를 보며 ‘이 바위를 넘으면 세석이겠지…….’ 그래서 그 바위를 넘어 올라서면 또 다른 왼쪽 길이 보이고 또 한참을 오르막에 올라서 그 끝지점을 보며 ‘저 위에 올라서면 세석이겠지…….’ 숨 쉴 수 없이 힘든 숨을 참으며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그곳이 세석의 표지라도 나올까 했으나 그도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 나무계단을 세 번이나 지나고 한참을 걸어서야 세석대피소의 불빛과 표지를 보고 나서 안심이 되었다. 그 어둠속에서 드디어 일행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알았다. 저녁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신 분들에게 너무 죄송스럽고 도와주신 분들에게 고맙고 수많은 마음속의 생각들이 교차했다.
아마 그 길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갈 수 있었던 길이었다. 연하천으로 향하던 오르막길에서 언젠가 맹자시간에 문희석 원장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었다. 힘에 겨워서, 체력이 다해서, 지쳐 있을 때 고비 때마다 잠시 배낭을 들어 주셨던 분들 덕분에 지리산을 하루 동안 23km를 갈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혼자가 아닌 함께 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번 종주에 참여하면서 지난겨울 삼천 배를 혼자 하듯이 뭔가 내겐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 지리산종주가 아니더라도 다른 뭔가를 했었을 것이다. 마음속으론 그날 17시간의 산행만으로도 처음 얻고자 했던 것은 다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했던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모든 것이 다 생생하게 아쉬움과 함께 남아있다. 천왕봉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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