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홀로이고 싶은 겨울

은빛 세상으로의 산책

이정우 기자 | 기사입력 2012/01/14 [09:48]

때론 홀로이고 싶은 겨울

은빛 세상으로의 산책

이정우 기자 | 입력 : 2012/01/14 [09:48]

 

▲     © 이정우

 
눈은 내렸고, 막상 나서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어느 날. 생각 같아서는 대관령으로, 혹은 덕유산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은 주변 환경만 탓하고 있을 수도 없기에 홀로 나섰다. 겨울 풍경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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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겨울풍경, 특히 눈이 쌓인 모습은 사 년 만에 다시 보는 풍경이어서 감회가 더욱 깊다. 발밑의 눈들이 한 발 짝씩 떼어 놓을 적마다 뽀드득 거리며 꽈리 소리를 냈고, 운동화 자국을 눈 위에 선명하게 남겨 놓기도 한다. 보행에 리듬을 타며 걸었다. 사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조금씩 다가왔다 뒤로 밀려나는 풍경들에 눈길을 주었고, 눈에 익은 장소가 나타 날 때면, 그 때, 그 자리에서 함께 했었던 지인들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혼자이면서 결코 혼자가 아닌 겨울나들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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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이 눈길산책을 하다 보니, 나무들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난 가을 무성하던 잎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적적하던 초겨울의 쓸쓸함을 잠시나마 위로하려는 듯 눈이 내려 나뭇가지마다 쌓여서는 메마른 수피를 촉촉이 감싸 안아 줄 땐, 나뭇가지 자신도 모르는 새 가슴이 뜨끈해 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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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가 자기감정을 표현한다. 화가 났다거나 무지 행복하다거나 할 때면 얼굴표정으로, 억양으로 혹은 몸동작으로 그 때 그 때의 자기감정에 충실하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더울 땐 잎을 키워 그늘을 만들 줄 알고, 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내고 추위와 맞설 준비를 하기도 한다. 꽃필 시기가 되면 꽃망울을 터뜨리고, 열매를 맺을 줄도 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모르는 자연이지만, 개화시기에 맞춰 꽃을 피워내는 그 지혜는 문맹이지만, 결코 문맹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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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11월 하순인데도 철없이 꽃을 피워내는 개나리나, 진달래를 볼 경우가 있다. 그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시절이 수상해서 라는, 혹은 변괴가 일어날 징조라는 설을 읊어대긴 하지만, 철이 없기로 치자면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역량을 초과해 목소리만 클 뿐 실제는 빈털터리인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웃지 못 할 일들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자연도 이젠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꽃이 없는 계절이라고 지칭하는 초겨울에도 개나리가 방긋 웃기도 하고, 진달래가 활짝 피기도 한다. 자연의 센스에 놀라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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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날인데 이상하리만큼 눈을 즐기는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야트막한 비탈길에 눈썰매를 끌어주는 멋진 가장을 만났다. 아이들은 눈썰매위에 올라 앉아 미끄럼을 즐기고,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눈썰매를 끌어 주는 모습. 썰매를 끌어주는 아빠는 어린시절, 곱은 손 호호 불어가면서 썰매를 타 봤고, 얼음위에서 팽이치기 하고, 얼음지치지를 하다 엉덩방아를 찧어 봤던 그래서 손이 다 트고, 발에 동상이 걸려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얼음판위에서 하루 종일 노는 게 행복했던 아빠였을 거다. 훗날 썰매위에 앉았던 아이들이 아빠가 되었을 때 역시, 그의 아이들에게 썰매를 끌어 줄 거다. 내 짐작대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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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하면서 외롭지 않고, 한산하면서 쓸쓸하지 않은 겨울산책을 마무리 할 즘, 보폭이 좁아지면서 한결 느려진 걸음으로 다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나를 달래 집으로 향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한다는 건 작은 설렘이고 긴장이다. 세상을 온통 덮어버린 순백의 눈이 녹으면 길도 나오고, 돌도 나오고, 쓰레기도 그 모습을 나타낸다. 얼어 있는 호수위로 살짝 덮인 눈이 햇살에 반짝인다. 그 반짝거림의 빛을 온 몸으로 빨아들였다. 조금씩 내 몸은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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