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야 진짜 필요한 것들을 알 수 있어요"

민정례 | 기사입력 2019/06/07 [17:49]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야 진짜 필요한 것들을 알 수 있어요"

민정례 | 입력 : 2019/06/07 [17:49]
정왕마을교육자치회 마을대표 더불어함께 백재은 사무국장
마을교육자치는 학교의 고민을 마을과 함께 논의해 풀어나가는 과정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프로그램이 필요한게 아니에요"
정왕 마을학교 ‘여기’의 꿈의학교 프로그램은 알차기로 유명하다. 요리반, 미디어반 등 청소년들이 관심가질만한 주제와 훌륭한 강사가 준비되어 있다. 어느날 마을학교 관계자가 시화공고 교사를 만나 꿈의학교 프로그램들을 소개했다. 그랬더니 되돌아 왔던 말.
 
“선생님. 제가 고민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주말에 세 시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 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애들이라 이런 거 필요없어요.”
 
오히려 잦은 지각과 결석으로 사회봉사를 받은 아이들이 갈 데가 없다며 아이들이 사회봉사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림의 떡인 프로그램들을 가져가봤자 서로 안맞는 거였어요. 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알 수 없는 대상들을 생각하면서 나 혼자 생각한 것이잖아요. 막상 교사들을 만나보면 학교에서 고민하는 것은 다른 건데.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진짜 학교에서 필요한 일,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할 수 있겠더라고요.”
 
백재은 사단법인 더불어함께 사무국장이 지난해 정왕마을교육자치회 활동 중 겪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렇다고 정왕 2,3,4동 학교들도 사회봉사할 곳이 많이 필요할까요? 학교가 갖는 문제나 어려움이 학교마다 다 달라요. 이런 사정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알 수 있는 거였어요."
 
이후 마을에서는 학생들이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소만 시키는 사회봉사에서 벗어나 징계의 의미도 담되, 좀더 의미있는 활동으로 고민했다. 
 

▲     © 민정례

마을과 학교가 만나니 거대한 물결이 일었다
정왕동은 사단법인 더불어함께가 마을대표로, 군서중학교가 학교대표로 하여 정왕동 지역의 학교들과 마을기관들이 마을교육자치회를 구성해 지난해부터 활동해 왔다. 중심은 ‘만남’이었다. 학교 구성원과 마을 구성원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학교에서 어려워하는 것을 마을이 도와줄 수 있었고, 마을은 좀더 활동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더불어함께는 20년 전인 1998년 유아교육부터 출발해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공부방, 지역아동센터까지 활동이 확장돼 왔다. 취학 전부터 아이와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고 돌봄 활동을 해왔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 끝일 줄 알았더니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학교 적응을 힘들어했다. 초등공부방을 만들어 공부도 하고 돌봄도 하다 푸른지역아동센터를 만들었다. 
 
더불어함께 정경 대표와 백재은 사무국장은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복지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마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를 넘어 마을 활동을 시작했다. 평생학습, 희망마을만들기에도 참여했다.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골목축제를 열어 아이들이 공연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백재은 사무국장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무리 따뜻하게 돌봐도 학교 안에서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교사의 따뜻한 눈빛 한 번 받는 것에는 미칠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그 과정에서 인근의 군서초등학교와 관계가 형성됐다. 당시 권영섭 교장이 학교문을 개방해 지역아동센터에서 학교 도서관이나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었고,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골목축제를 열기도 하고, 학교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군서초등학교와 작지만 일상적인 교류가 이뤄지고 있던 도중 군서중학교 정종윤 교장을 만났다. 학교와 마을의 담장을 허무는 마을교육공동체, 혁신교육지구 시즌2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사람이 만나고 제도가 뒷받침해주면서 마을과 학교는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를 띠었다. 학교는 마을의 활동가들이 뛰고 헤엄칠 수 있는 물이 되어주었고, 마을은 학교가 숨 쉴 공간이 되어 주었다. 
 
마을과 학교의 일상적인 소통, 마을교육자치회
지난해 정왕마을교육자치회를 구성하고 학교 관계자와 마을 사람들이 만나 터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는 정규과정만으로 한계를 느꼈던 부분을 마을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교육과정이다.
 
초등학교 3학년 과정에 내고장 알기 수업을 그동안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했지만 아이들이 마을을 몰랐다. 아이들이 실제 마을을 탐방하며 배우고 느끼는 것이 의미있을 거라는 판단에 마을교육과정 연구 모임이 만들어졌다. 마을교육과정이 왜 필요한지, 마을이 왜 필요한지, 마을교육은 무엇인지 기본부터 토론했다. 정왕동이 바다였고, 간척을 해서 소금밭이 되었다가 산업단지와 주택이 들어섰다는 역사를 정리하고 이와 연계해 탐방할 수 있는 곳을 연구하고 있다. 
 
마을교육자치회에서 시작한 것이 ‘달맞이 학교’이다. 정왕1동 주민자치회에서 초등, 중등 검정고시를 희망하는 주민들을 모아 학습을 돕던 사업이었다. 수강생 모집도 잘 안되고 흐지부지되던 때 정왕마을교육자치회에서 받아 진행했다. 현직 교사 10명이 한 과목씩 맡아 야간에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르신들과 소통이 힘들었다. 그래서 학생교사가 투입됐다. 정왕고, 시화공고, 서해고, 함현고 등 교대나 사범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어르신 옆에 앉아 1대1로 보충을 해준다. 현직교사의 설명을 못알아들으면 과외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알려준다.
 
지난해 60을 넘은 어르신 2명이 중등 검정고시 과정을 마쳤다. 올해에는 한글부터 시작하는 문해과정 수준의 어르신을 포함해 12명이 들어왔다. 지역주민이나 일과 외 활동을 하는 교사나 학생 모두 만족하는 수업이다.
지난해 43명이었던 정왕마을교육자치회는 올해 62명이 참여한다. 참여하는 학교수도 늘었고, 마을활동가도 늘었다. 올해의 목표는 마을교육자치회의 운영주체를 확대하는 것이다. 
 
청소년학교도 준비 중이다. 학교 바깥에서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학교이다. 정왕본동이나 정왕1동의 경우 다문화 가정이나 저소득 가정이 많은데 이 아이들의 학교 적응을 원활하게 돕기 위해서다. 
 
지역아동센터를 오랫동안 운영해본 결과 초등학생까지는 무난히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을 할 수 있지만 이 아이들이 중학교를 들어갔을 때 적응을 어려워하고 또 지역아동센터에도 잘 나오지 않거나 길어야 6개월 정도 나오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을 살펴보니 센터에 중학생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고, 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예비중학생인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중학교 적응과정을 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지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
 
또한 학생신문 발간도 준비 중이다. 동 주민센터나 기관의 동정을 담은 재미없는 신문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신문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교육자치는 마을교육자치회를 통해 학교와 마을이 만나고, 학교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마을이 함께 논의해 마을의 자원을 활용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이 교육부에서 교육과정을 내리면 학교에서 그대로 수행해 내는 것이었다면,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봉사 프로그램, 마을교육과정 연구, 달맞이 학교 등으로 실현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학교의 문턱은 낮아지고 학생들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진다.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학교에 제안서를 내도 잡상인 취급을 받거나 학교에서 풀어낼 수 없었던 마을의 다양한 기관들은 좀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혁신학교 지정 이후 혁신교육이 시작된지 10년째.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과정이 다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에는 마을에서도 역량이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재은 사무국장은 “시흥에서 평생학습을 시작으로 희망마을만들기, 평생학습마을 등 마을에서 활동을 통해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지역 안에서 네트워킹이 이뤄지면서 주민자치의 영역에서 마을활동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마을과 학교가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하게 활동해 오다 어느 순간 마을교육공동체, 마을교육자치 이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각자 영역의 활동가들의 만남의 고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도 잘해왔고 지역사회의 마을 사람들도 잘해왔다. 그런 시점에 이런 정책이 만들어지면서 그동안의 활동이 기반이 되어 파도가 이뤄진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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