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지리산 Ⅴ

김광수 | 기사입력 2018/08/08 [17:33]

홀로 지리산 Ⅴ

김광수 | 입력 : 2018/08/08 [17:33]

 홀로 지리산 Ⅴ

 

연일 최고기온 36~8도를 넘나들고 아침·밤에도 최저 30도가 넘어서는 폭염이다 보니 탈출구가 필요했다. 몇 해 전 8월15일에 지리산에 갔더니 15도가 되어 추웠던 기억이 있었다. 요즘과 같은 더위에 그것이 유효할까? 반신반의 했지만 크게 성공한 산행이었다.
 휴가철이다 보니 이래저래 동행을 찾을 수가 없어 홀로 가야만 했으며, 역시 버스표도 어렵게 구하게 되었다.


자주 느끼는 바이지만 심야 지리산행 고속버스 기사는 베테랑이다. 내가 승용차로 그렇게 했다면 당장 난폭운전이라고 비난 받을 테이지만, 고속버스가 대개 그러하듯이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분명 운전 실력이 수준 이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프로가 그렇지 못하면 어찌 프로라 할 수 있으랴!


온도 차이를 알기위해 디지털 온도계를 배낭에 매달고 갔다. 서울에서 출발 때와 달리 산으로 갈수록 차내가 시원하기도 했지만 목적지인 중산리에 도착하니 온도가 20도이니 더위에 적응된 몸이 다소 썰렁한 느낌이다.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헤드랜턴을 켜고 천왕봉을 향해 오르니 산행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 재미를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 새벽에 찍은 사진이라 불분명 하지만 온도 20도를 표시한다.     © 김광수

 

문제는 체력이다. 열흘 이상 된 폭염에 먹는 것도 부실했고, 잠도 숙면이 못되었고 근래 대포에 젖어 있었으니 종주가 가능할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역시나 천왕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중간에 준비해간 김밥 몇 알에 쉴 새 없이 물만 들이키면서 쉬지 않고 걸었건만 족히 4시간이 넘게 걸려 천왕봉에 도착했으니 쉬지 않았어도 워낙 천천히 갔음이다.

 

▲ 중산리 계곡의 첩첩산중 - 정상을 오르기 전 어느새 등 뒤에서 날이 밝았다     © 김광수

 

그래도 일단은 성공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올라가면서 수도 없이 생각한 바이지만 정말 종주가 가능할까. 천왕봉에서 중봉을 거쳐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하여 예의 그 갑을식당에서 선배와 푹 한잔 하고 다음날 올라갈까. 아니면 장터목으로 가서 백무동 계곡으로 하산하여 함양의 후배와 푹 한잔하고 올라갈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산행 3시간이 넘어서니 땀도 푹 흘려 술독도 빠지고 몸이 풀리니 이제는 더 갈 수 있을 것 같다. 기운을 차리고 더 가기로 했다.   

 

▲ 지금은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이 얼마 없지만 10~12시 정도가 되면 좁은 정상에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이 많아진다.     © 김광수

 

올라가는 동안 준비해간 500mm 생수 세병을 다 마셨다. 그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는 애기다. 마음 놓고 다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천왕봉 300m 아래에 천왕샘이 마르지 않고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80년도에는 국립공원에서도 야영이 가능했으며, 87년도에 친구들과 천왕봉일출을 보기위해 천왕봉 10m 아래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이곳으로 식수를 구하러 다닌 경험이 있었다.


3년 전 천왕봉 바위틈에 500m 소주 한 병을 고이 간직해 두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갔었지만 잘 있는가 확인만 했을 뿐 건드리지 않았다. 지리산 정기를 받은 술을 의미가 있을 때 정상에서 기품있게 마시기 위함 이었는데 금년 3월부터 국립공원 정상에서 술 마시는 신성한 행위가 금지되어 더 이상 놔둘 이유가 없어졌다. 대신 정기가 깃든 이것을 이번에 가져와 고급 양주 이상 가는 가치로 해치울 것을 기약해 두었다.

 

▲ 정상 바위틈에 돌로 잘 막아 이곳에서 3년을 살아 있었다.     © 김광수

 

 장터목 방향으로 하산하니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장터목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진행하였다. 물을 많이 마셔서 인지 배고픔도 없고 간혹 쉴 때마다  행동식으로 배를 채웠다. 장터목대피소애서 세석대피소 코스는 경관도 아름답고 길도 험하지 않아 트래킹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갈 수가 있다. 중간에 세석에서 거림으로 하산한다는 사람을 만나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중간에 바위틈에 한 송이 피어있는 구절초를 보았다. 올 봄에 우리 사무실 화단에 심었기에 잎을 잘 알 수 있었다. 들국화의 일종으로 비슷한 꽃모양이 많이 있다. 9~11월에 피는데 뭐가 급해 벌써 꽃을 피웠는가! 

 

▲ 연하봉 인근에 피어있는 구절초     © 김광수

 

고산에서는 맑은 날씨였다가 순식간에 흐려지고, 갑자기 비가 오다가 맑아지기도 하는 등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따라서 비옷은 필수이고 여름에도 긴팔 바람막이가 필요하고 봄·가을에는 두꺼운 겨울옷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역시 만약을 대비해 불과 칼도 필요하다.

 

▲ 세석에서 벽소령 구간 - 가스가 가득 끼인 모습     © 김광수


세석데피소를 통과하여 선비샘에 도착했더니 그다지 가뭄은 아닌데 건천 이어서인지 물이 졸졸 나오고 있다. 땀을 좀 닦을 요량이었는데 사람은 많으니 얼른 물 한통 받아 갈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은 설악산이나 덕유산 등에 비해 중간 중간에 샘이 있어 계획을 잘 세우면 종주 중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물을 많이 지고 가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벽소령에 도착하니 대피소가 대공사 중이다. 좋은 시설로 확장공사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 무박 종주를 하려다 시간은 충분한데 폭우가 내려 통과를 안 시켜 주고 대피소 예약이 안 된 사람은 하산을 강요해 임도가 나있는 재미없는 길 음정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있다.
 

 

▲ 벽소령에서 연하천대피소 방향의 남부능선     © 김광수

 

처음에 올 때의 마음은 갈 때까지 가자였는데 천왕봉을 오를 때에는 어디서 하산 할까만을 생각하다가 오다보니 연하천 대피소까지 오게 되었다. 가다가다 못가면 이곳에서 1박 하기로 대비는 해 두었던 터이다. 국립공원은 구간구간 별 통과 시간이 지정되어 있는데 통과시간을 조금 넘어 버렸다. 무리해서 마지막 한 시간 정도 랜턴 켜고 가면 갈수도 있지만 몸이 쉬자고 한다. 연하천 대피소에서는 물이 콸콸 나오고 있어 땀도 닦고 발도 씻고 편히 쉴 수가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편한 마음으로 홀로 라면 하나 끓여 잔반하나 남기지 않고 꿀맛의 라면을 즐길 수 있었다

 

▲ 주변에 쉬는 사람이 많아 사진을 인 찍으려다가 글씨체가 예뻐서 담아 보았다     © 김광수

 

아직 어두워지려면 멀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 숙소에 들어가 눕자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 쉬는 시간 합쳐 12시간가량 산행을 헸으니 피곤하기도 하지만 서울서 오는 3시간 30분 동안 차에서 잔 것이 전부이니 잠이 부족한 것이다. 집은 30도가 되는 찜통이지만 이곳은 해발이 1,440m이니 낮에는 25도 정도이지만 밤에는 복사열이 없어 20도 안팎이니 잠자기 딱 좋은 기온이다. 새벽 중간 중간에 다른 사람들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지만 숙면을 취하고 일찍 잤기에 더 잘 수도 없어 5시에 일어나 물로 눈곱만 떼고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랜턴을 켰지만 어느새 날이 밝아 왔는데 이 구간은 나무가 울창해 일출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 토끼봉에서 내려가면서 보는 반야봉 모습     © 김광수

 

예전에 토끼봉에서 내려가면서 겨울에 이 인근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반야봉이 장관이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장소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산 전체가 눈 덮인 모습이며 중간에 폭포가 얼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인데 며칠을 이곳에서 빙빙돌며 작품하나 건질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여기보다는 반야봉과 더 가까운 거리였을 것이다.

 

▲ 일출 후 화개재에서 보는 남부능선     © 김광수

 

 화개재를 지나면서 노고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많이 교우하게 된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사람이 내 뒤에는 있겠지만 앞에 가는 사람은 만날 수 없다. 일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며 서로 격려한다.

 

▲ 화개재에서 보는 남부능선- 왕시루봉 방향     © 김광수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개도가 만나는 삼도봉에는 무척 많은 사람이 휴식하고 있다. 대개 여기가 시원하기도 하고 코스상 쉬기에 알맞은 지역이다. 나는 산행을 거의 마무리 하는 중이기도 하고 시간도 널널하기에 경관 좋은 곳마다  한참을 쉬면서 풍광을 즐기면서 가곤했다.

 
멀리 노고단에서 이어지는 왕시루봉이 보인다. 정상이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왕시루봉이라 하는데 아직 못 가본 곳이어서 한번 가기로 마음먹고 있는 산이다. 노고단과 피아골 삼거리 중간인 돼지령 인근에서 접근하는 길이 있다. 

 

삼도봉을 지나 반야봉 시작점인 삼거리에 왔지만 여러 번 가 보았고 전경은  천왕봉보다 더 아름답지만 신록인 봄과, 단풍철인 가을이 아니어서 통과 하기로 했다. 노루목 지나 임걸령 샘에서 휴식을 취한 후 물을 길어 배낭에 넣고 돼지령 노고단 고개를 지나 노고단 대피소 성삼재를 거쳐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폭염을 피해 피서를 한 산행 치고는 대단히 성공한 피서산행이었다. 



  • choiyoung 18/08/08 [21:09] 수정 | 삭제
  • 날은 뜨겁지만 구절초를 보니 가을은 어느덧 가까이 온듯합니다. 땀 흘리며 산행하는 피서산행 즐겁게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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