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밭 갈고 씨 뿌린 후에 드십시요

동우 | 기사입력 2017/11/09 [05:15]

당신도 밭 갈고 씨 뿌린 후에 드십시요

동우 | 입력 : 2017/11/09 [05:15]

 

▲ 운문의 가을 풍경     © 동우

 

어느 때 부처님께서 탁발을 하기위해 발우를 들고 바라드바자라는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그는 마침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다가, 음식을 받기 위해 한쪽에 서 있는 부처님을 향해 말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소."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의 멍에나 호미 그리고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고 하십니까?"

 

 "믿음이 나의 씨앗이며 고행은 빗줄기이고,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요 부끄러움은 괭이자루이며, 의지는 잡아매는 줄이고 깨어있는 알아차림은 나의 호미날과 작대기라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으니 나는 진실로써 김을 매며, 온화한 마음으로써 나의 멍에를 벗겨내오. 노력은 나의 황소이니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주오 물러남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오 내 밭갈이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감로(甘露)의 과보를 가져오는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오."

  

오래된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부처님 당시 소위 걸식(乞食)이라 할 수 있는 탁발을 다니는 수행자들을 곱지 않게 보는 바라문의 질타이다. 생산 노동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생존을 유지하는 출가수행자의 삶은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 이유가 있을까.

  

이 일화에 연유하여 불가에는 심전(心田)이라는 말이 있다마음이라는 밭이 어떻게 경작되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삶의 고뇌의 양이 달라진다. 끝간 데 없이 눈 앞의 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심전의 경작이라는 말은 설득력 없는 한갓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저 일화 속의 주인공인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하며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의 사고와 행위의 출발지점을 잘 살펴 들어가보면, 자신의 마음의 땅과 마주하게 된다. 뿌려 놓은 씨앗과 가꾸어 온 노력이 각각 천차만별인 심전들이다 지금 일어나는 마음은 그 이전에 뿌려놓은 씨앗이 싹튼 것이며, 현재 일어난 그 마음을 따라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씨앗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또다시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삶의 쳇바퀴란 소위 이러한 업력(業力)의 궤적을 벗어나기 어렵다.

  

불교 수행의 시작은 이러한 심전의 종자를 개량하고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개간사업이다. 잘못된 습관이나 탐욕과 분노로부터 근원한 심전의 씨앗들을 싹 트지 못하게 최대한 노력하여 좋은 종자가 자랄 수 있는 비옥한 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업력을 거스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조금이라도 수행의 문고리를 잡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의 심전에는 우리 스스로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염치없고 무례한 잡초들이 무수히 많이 자라고 있다.

 

심전의 경작은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므로 더 어려울 수 있다. 당장 알아봐 줄 사람도 없고, 손에 잡히는 보상도 없으니 말이다. 외형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허덕이는 극단적인 물신주의가 정신적인 가치와 사유를 뒤덮어 버린 현대에 와서는 무엇이 잡초이고 곡식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거리를 돌며 탁발로 공양을 해결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불교는 사원의 독립적인 취사와 노동으로 공양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변화 하였다 마음 밭만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여 먹거리를 장만한다. 내가 졸업한 운문사 강원은 당시 농과대학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전적으로 학인들의 경작에 의해 농사가 이루어졌다. 승가 공동체 안에서 대중 전체가 참여하는 운력에는 죽은 송장도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동 노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해왔다.

 

선종가풍의 대표적인 백장 청규에는 심지어 일일 부작이면 일일 불식을 말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청규의 주인공인 백장 스님이 노구의 몸으로 매일 노동을 하는 것이 염려되어, 스님을 쉬시게 하려고 호미를 숨겨버리자 그 날부터 공양을 드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2500년 전 부처님 당시의 일화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지금 현재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전의 경작이 중요한 이슈가 될 때라는 것이다. 메말라 피폐해진 마음의 땅에 물을 대고 영양분을 돋우는 한 사람의 손길이 소중한 때가 되었다. 사막화에 맞서 모래밭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무모한 시도가 기적을 이루듯, 마음 밭을 살뜰하게 일구려는 덧없는 결의가 세상을 좀 더 촉촉하고 보드라운 땅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과연 나도 밭 갈고 씨 뿌린 후에 먹는다는 말을 현대 출가 수행자를 비롯한 종교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서 실천할 것인가. 실재 종교인이 어떤 노동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특정신분의 이러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2500년 전 부처님의 대답이 과연 현 시대에도 온전한 납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명쾌한 해답을 찾아낼 새로운 씨앗을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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