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공양구

동우 | 기사입력 2017/04/20 [20:00]

참다운 공양구

동우 | 입력 : 2017/04/20 [20:00]

 

▲     © 동우


 
面上無瞋供養具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口裏無瞋吐妙香

부드러운 말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心裏無瞋是珍寶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無染無垢是眞常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원문과 무관하게 우리말로 너무나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게송이다. 어스름 새벽에 종을 치며 염불 곡조를 넣어서 길게 읊조리노라면 단순한 이 말이 가슴 저며오며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모른다.

 

당나라 무착 문희 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에 갔다가 균제동자로부터 받은 게송이라 전해진다. 무착은 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을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균제동자 또한 문수 보살의 화현일 것이다. 노인과 동자가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나서야 무착은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문수보살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나라 자장 스님에게도 이와 유사한 일화가 전한다.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남루한 옷차림에 가사를 걸친 스님이 죽은 개를 삼태기를 매달고 와서 자장을 찾았다. 천연스럽게 자장에게 내가 왔다고 전하라. 어서 가서 전하기만 하라.”고 큰소리 치는 남루한 스님이 마뜩잖았으나, 시자는 스승에게 사실을 전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자장스님은 이상한 객승이 절을 찾아온 것으로 무심히 생각하고 만나주지를 않았다.

 

거절 당한 거지 차림의 스님은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나를 어찌 알아볼 수 있겠는가!” 하면서 삼태기를 뒤집어 죽은 강아지를 푸른 사자로 변화시켜 그 사자를 타고 방광하며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 버렸다. 자장은 놀라 뛰어나와 뒤따라갔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성내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할 수 있는 한결같은 마음의 바탕은 청정함과 평등함이다.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편견과 그리고 소신이라는 교묘한 가죽을 뒤집어 쓴 아집들, 안목이라는 이름의 오만들. 어찌 다 털어버리고 저 깨끗하고 티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을 닮을 것인가.

 

한두 번은 할 수 있다. 내가 기분 좋고 여유가 있을 때는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항상 그렇지 못하고, 공간적으로 누구에게나 그렇지 못한 것이 성인과 다른 점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과 열정적인 봉사를 원하지만, 정작 옆 사람의 단 하나의 단점조차 참아내지 못한다.

 

내가 늘 달고 다니는 공양도구인 이 얼굴로 다른 이들에게 정성스러운 공양을 쉼없이 올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문수보살을 눈 앞에서 놓쳐버린 무착과 자장의 낭패를 우린 일상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닌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주간베스트 TOP10